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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ug 22. 2024

두유요거트빙수

주마등 두요 빙수



새벽 2시, 정전이 되었다는 소리에 잠을 깼다. 화장실 불도 들어오지 않고, 돌아가던 선풍기며 냉장고며 일제히 멈춰버렸다. 기온 30도에 습도 73프로,진돗개 1호에 버금가는 위기였다. 이 와중에 냥이들은 탱고 스텝을 밟으며 갸르릉거렸다. 반려인이 스마트폰 불을 비춰 두꺼비집을 확인하고 베란다로 나가 이웃집 동태를 살폈다. 망연자실한 나는 침대에 누워 언젠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온갖 불행의 시나리오를 창작해 냈다. 무리한 전기 남용으로 가전들이 파업을 선언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떠올렸다. 쟁여서 얼려놓은 고기와 채소, 새로 만든 국과 반찬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반려인과 번갈아가며 관리실에 전화를 했지만 통화는 불가능했다. 아침 일찍 관공서?를 찾아가야 하나 목욕탕을 알아봐야 하나, 나란히 침대에 누운 채 발을 동동 굴리고 있으니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끔벅끔벅 졸고 있는 사이 거짓말처럼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병원에 가는 날이라 아침을 차려 먹고 일찍 집을 나섰다. 태풍이 온다 소식에 우산을 챙겼지만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이번에도 진료 없이 주사실로 가 주사를 맞았다. 좌측 허벅지를 꼬집으며 먼 곳을 응시하는 동안 지난밤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달지 않는 과일 빙수가 먹고 싶어졌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어릴 적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하드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렇게 요거트 빙수를 만들기로 했다. 언젠가 빙수 할머니가 되어야지 생각하며 큰 볼에 요거트와 두유를 붓고 빙빙 섞었다. 걸쭉한 농도를 맞춘 뒤 납작한 팩에 넣어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 다음날 꺼내 사정없이 두들겨 가루로 만든 뒤 그릇에 수북이 담고는 바나나, 복숭아, 샤인머스킷을 보기 좋게 올렸다. 아몬드와 건포도를 한 주먹 올리고 바나나 위에 시나몬도 적당히 뿌리며 뭐라고 이름 짓을까 생각에 잠겼다. ’두요빙수‘가 좋겠군. 기호에 맞게 시럽이나 꿀을 넣어도 좋지만 과일이 가진 당도를 천천히 음미하길 바란다. 다음엔 과일을 넣은 채로 얼려 먹어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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