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2 미세먼지 그득
월요일이다. 어제 비가 대차게 내렸는데도 하늘이 뿌옇다. 베란다를 기웃거리다 화분에 물을 주니 룽지가 따라 나와 올려다봤다. 밀싹 한 꼬집을 뜯어 녀석의 입에 가져갔다. 촵촵촵, 저 아이의 조상 중 염소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밀싹의 성장이 녀석이 먹어치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내 지분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는 아이에게 다음엔 더 많이 심겠노라 약속을 했다. 웬만한 추르도 입에 대지 않는 거대한 꾸리와 뭐든 흡입해 버리는 조그만 룽지. 문득 일상의 반전은 지구의 균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패드 키보드가 말썽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접속이 되지 않아 3회에 걸친 재부팅을 시도했다. 8년쯤 썼나…? 여기저기 낡고 해진 흔적들이 창작과 고뇌의 증좌이며 자랑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을 언제나 낭만에 찬물을 뿌리는 법. 아무리 두드려도 새겨지지 않은 글자들을 보며 아무리 떠들어도 듣질 않은 벽 앞에 서 있는 듯, 작은 새 가슴에 불씨가 피어올랐다. 동거생활 8년, 이쯤 되니 관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인내심 시험 단계에 이른 것이다. 오로지 장비 업그레이드에만 혈안이 된 나는 패드가 다시 깨어나는 동안 당근 어플을 켰다. 마성의 검색창에 ‘무선키보드‘를 입력하며 조금 설레었던 거 같다. 끝내 사지도 않을 키보드에 정신이 팔려 30분가량 허송 시간을 흘러 보냈다. 끝내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어플을 닫으며 살 수 없는 마음이 아니라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