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20 여린 여름
인생은 관성이다. 첫째에겐 첫째 콤플렉스가 있고 둘째에겐 둘째 콤플렉스가 있다. 둘째이자 막내이자 가족 구성원의 꼬리를 담당했던 나는 그 관성을 버리지 못했다. 어느 무리에 속하든 가장 구석 자리의 만만하고 어리숙한 캐릭터를 도맡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뭘 잘 잃어버리고, 백치미까진 아니지만 그냥 백치도 다분했다. 그것이 내가 평화를 수호하는 방식이자 생존 전략이었다. 중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갔는데 처음 친구에게 뼈 아픈 비평을 들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친구의 예상과 달리 그 글로 상을 타게 되었지만 스스로 기쁨을 만끽하는 법을 몰랐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교장 선생님과 독대하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 순간에도 친구들의 미움을 살까 노심초사했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나의 순진무구한 성실함은 누군가의 미움을 샀다. 상대 평가로 능력이 인정되는 집단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노력들은 무시무시한 정을 부르는 주문이 되었다. 젊은 날 뼈를 갈아 넣었던 열정 탓이었을까, 앞뒤 모르고 순수했던 미련함 때문이었을까,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내 안의 소리를 듣지 못해서였을까… 마흔을 2년 남기고 내 몸은 스스로 정지버튼을 눌렀다.
3년 전 병이 찾아왔고 하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강제 정년을 맞이해 온실 속 화초처럼 느슨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꾸리고 좋아하는 작업을 하는 게 나의 일이다.내가 치료를 받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언니는 조카 둘을 씩씩하게 낳고 자격증을 따고 새 직업을 찾는 자랑스러운 K 아줌마가 되었다. 함께 사는 반려인도 작은 회사지만 제법 책임 있는 자리까지 올랐다. 친구들도 저마다의 일상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나름의 밥값을 하고 살고 있다. 나의 일상에도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제 그들 덕을 보고 사는 팔자가 되었다. 그 안에 분명 나의 지분도 있으리라 믿으며 열심히 응원하며 살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었구나 싶다가도 그마저도 자만이고 욕심이지 싶다. 누군가 나의 마음과 정성을 알아봐 준다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분할 일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아닌 괜찮은 사람이다 생각하며 살고 싶다.
어제는 시내에 나가 부모님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셨다. 그래놓고 오늘 아침엔 통화로 괜한 짜증을 내며 쌓아둔 효 마일리지를 야무지게 깎아 먹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병원에 가는 날이다. 부모님께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이 마음속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제와 감히 용기를 낼 수도 없다. 자식의 갑작스러운 태도는 오히려 부모의 걱정을 사니까. 냥이들과 지내는 것처럼 말없이도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믿고 싶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해지는 마음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어른인척 덤덤하게 살다가도 가끔 어릴 때처럼 어리숙하게 부모님께 기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