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건가요? 알리바이는 있고요?

by rummbl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취소했다. 이래도 저래도 되는 거라지만, 일말의 위약금도 요구받지 않는 초단시간 번복이 스스로 실없게 느껴졌다.


한번 짐을 쌌다 푸른 보따리장수 맘이 어떻겠는가. 글쎄, 환기가 필요한 걸까? 돈은 없고 시간은 있으니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곳, 한국에 돌아가면 못 볼 이국적인 것, 광활한 것, 그런 걸 찾았다. 너무 먼 곳은 제외, 해변은 춥겠지, 그래도 물이 있었음 좋겠고, 계획이나 동선을 짜기엔 지쳤다.


길 잃을 염려 없이 쭉 걸어 들어가 갔던 길로 되돌아 나오면 된다고 해서 글렌달록으로 정했다. 초입의 수도원 유적지를 지나 작은 호수, 큰 호수까지 걸어 들어가면 됐다.


종교인도 아닌데 수도원 유적지는 건너뛸까 싶던 차에, 높다란 원형 탑이 눈에 들어왔다. 저절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수 없게 장대하고 고고했다.


종을 울리는 탑이기도, 임시 대피소이기도 했다는 건물. 원형탑은 입구가 땅에 닿아있지 않고 3m 높이에 나있다. 바이킹이 습격하면 사다리를 타고 탑 안으로 들어간 다음,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버티기 위해서였다고.


묘비들 그리고 글렌달록의 원형탑, 하단에 창문처럼 보이는 것이 입구


순간 날카롭도록 캄캄한 밤, 소란한 바깥을 등지고 누군가 결연한 얼굴로 사다리를 거둬들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외부 세력으로부터 더욱 내부로 도망쳐 스스로 출입구를 봉쇄하고 고립되는 방식의 피난이 고지식하면서도 품위 있게 느껴졌다. 그제야 그렌달록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돌아보니 생활공간이 있었던 좁은 부지에 오솔길처럼 나있는 인도를 빼면 발 디딜 틈 없이 묘지였다. 갖가지 모양의 묘비석이 삐뚤빼뚤 매대에 꽂힌 색 바랜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잔뜩이었다. 아, 여긴 산이나 물이나 보려고 오는 데가 아니구나. 사람들이 살고 기도하고 죽고 묻혔던 곳이구나.


글렌달록은 2개의 호수가 있는 계곡이라는 의미다. 6세기 세인트 케빈이 이곳에 들어와 수련을 시작하면서 수도원 도시가 꾸려졌다. 세인트 케빈이 이 깊은 산골에 들어온 건 은둔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련을 위해서였다. 세상을 등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갈고닦기 위한 고립이었다.


생활공간이 있었던 작은 호수 주변을 지나, 내면을 비추는 광활한 자연이 있는 지점의 큰 호수에 닿고, 둘러서 내가 걸어갔던 길로 고스란히 되돌아 나오면, 추위에 코끝은 시리지만 몸에선 열이 난다. 그리고 이곳에 와 발로 걷고 깨달아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네 스스로 방법을 알 수 없을 때, 고립될 만큼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대단히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길을 돌아 네가 있던 곳으로 오라.


마음이 이미 한 번 꺾인 채 많은 것을 갈무리했다가 어정쩡하게 다시 늘어놓은 지금. 이렇게 얇아진 시기엔 어딜 가도 손에 닿는 것이 절박해 쥐겠지만, 그래서 이 순간 내가 뱃머리를 돌려 닿은 우연한 곳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랫동안 과도기의 시간에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성 케빈의 이름은 영어식이고, 원래 아일랜드식 이름은 Cóemgen으로, '아름답게 태어난 사람, 고귀한 탄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일랜드식 이름은 영어보다 의미를 명확히 드러낸다. 우리나라도 한자를 사용해 이름을 짓기 때문에 곧장 드러나진 않아도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아일랜드식 이름의 독특한 점은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자라길 바란다는 '미래의 요구'가 아니라, 너는 이미 그렇게 태어났다는 의미의 '현재의 인정'이다. 그것이 폭력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아이가 하는 행동을 이름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미 그런 사람인 다음 나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성 케빈의 이름 역시 현대로 치면 '고귀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겠지만, 아일랜드식으로는 '이미 고귀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케빈은 고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수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이미 고귀한 사람으로 태어났고 그 후 그가 한 행동들은 이름 안에 갇히지 않았다.


내 이름은 아름다움을 갈고닦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꽤 오랫동안 그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골목에서 벽 보고 담배를 피우다 별안간 깨달았다. 갈리는 것은 나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돌인데 세상의 풍파에 갈리고 닦이고 있는 거였다. 왜 이름에 '갈고닦는다'는 의미의 한자를 쓸까? 이름이라는 평생 죽도록 불리는 주술 같은 말에 쓰기에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글렌달록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삼십 분 넘게 뼈 시린 추위 속에서 내 이름의 해석을 고친다. 나는 끝없이 아름다움을 갈고닦아야 사람, 노력 끝에 아름다워지길 기대 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미 탐구하는 태도를 가지고 태어나, 연마하고 질문하는 방식 자체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렇게 글렌달록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온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손에 꼽힌다. 걷기를 멈추면 죽을 궁리를 하는 내게 살기 위해 방황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더블린에서의 정착에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 내게 묻는다. 그래서 너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꿈에서도, 언제나, '자유로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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