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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수 없는 것들

나이

by 구월애

세월이 막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나이가 아닐까…


시드니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퀸즐랜드에서 문자가 왔다.

우리 집 잔디를 깎아주시고

쓰레기 통을 한 번씩 내놔주시는 할아버지가 입원을 했다는 이야기다.


문자를 준 사람은 이웃집 할아버지의 조카이면서 법적 대리인이었다.

그녀는 비행기로 한 시간

차로 12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

장황하고 기나긴 문자를 보내면서 할아버지가 잘 안 드신다고 미트 파이를 사다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디저트로는 커스트타 타트를 사다 주면 잘 먹는다는 말도 곁들여 문자를 보내왔다.


내 가족은 아니지만

우리 집 잔디를 몇 년 동안 깎아주시고 쓰레기통을 나 대신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에 내놓아주시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법적 대리인은 1-2년에 한 번 보는 조카이지만,

난 할아버지와 자주 이야기 한다.

할아버지가 수다를 하고 싶으시면 들어드리니까 할아버지에 대해 도 잘 알고 있고, 아프면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있는지라

할아버지가 무슨 약을 드시는지 왜 아프셨는지

미주알고주알 내게 와서 알려주시니

조카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병력 쪽으로는.


잘 걷고, 말또박 또박, 잘하시고 그리고 우리 집 바깥의 마당잔디를 깎아주시던 분이 내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가 안 났다가 하시면서 병원침대에 자석처럼 붙어서 누워 있으니 안타까웠다.


15년 가까이 이웃이고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기 시작한 지는 5년도 넘었으니

이웃사촌인 셈이다.


한국에서 돌아와 보니

정신을 잃어버리시고 나를 기억을 못 하는 환자로 변해 침상에 누워계시니 원래 사시는 그분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이웃집 할아버지이지만 나와는

같은 street에 산다는 이유로

그리고 할아버지가 할 일이 있으면 조금은 건강할 테니 잔디를 깎아주겠다는 소리를 마다 하지 않았고 할아버지께 잔디깎이 기계도 드렸다.

가끔 시장도 봐드리고 과일도 사드리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이것저것 사가지고 갔다 드리고

가끔 저녁거리도 사다 드리면 좋아하셨다.

잔디 깎는 기계를 큰돈 들여 새것으로 바꾸어 드린 지 겨우 석 달이다.

건강하실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1-2년 정도는 더.


우리 바로 옆집 깍쟁이 인종차별자 할머니는 참 잘도 살아가는데 할아버지는 아파서 한 달 만에 사람을 못 알아보다니 세월은 장사도 못 막는가 보다.


세월이

할아버지도 늙고 병들게 하고

내 아이들도 다 데려가 버렸다.

자꾸 내 주위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내가 사다 드린 미트 파이를

다 드셨다.

매번 사드릴 때마다 잘 드셔서

살 빠지는 불행을 조금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동생이 사다 준 맛난 포도도 조금은 갔다 드렸다. 잘 드신다.


간호사 말로는 조카가 사닌 퀸즐랜드로 데려가겠다고 했단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집으로는 못 오실 것 같다.

어쩌면 병원에 방문해서 보는 며칠이 마지막 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정원일을 맡아해 주신 고마운 호주 할아버지

자주 방문해 드려야겠다. 내가 사는 이도시를 떠나 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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