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나는 " 글쎄요... 다 좋았는데요? "라고 주로 대답한다. 탁 떨어지는 대답이 아니어서일까. 이내 대화는 상대방의 이번 여름휴가 계획 이야기로 이어진다. 질문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구성하는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이 3박자가 고루 갖추어진 여행지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동문서답을 하는 이유는 사실 ' 여행의 만족도 '를 결정하는 것은 앞서 말한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같은 표면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를 여행 가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여행에 임하느냐가 훨씬 더 여행의 질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행지에 비가 와서 그날 일정을 제대로 소화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동일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 비가 와서 그날 보고 싶은 것도 못 보고, 마지막 날은 아예 망쳤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비가 와서 못 가본 곳은 아쉽지만 대체 관광지로 갔던 박물관도 좋았어. 덕분에 마음에 드는 기념품도 샀거든 "이라고 말한다.
비 오는 것 때문에 하루를 모두 망쳐 버렸다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의 여행 만족도는 이렇게 달라진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논리다.여행지에서만 시간이 별스럽게 흐르는 것도 아니고 낯선 공간에 간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싫은 사람과 여행 가서 극적인 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도 없고, 늘 짜증과 불만을 달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간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여행 전체로 확장되면 동일한 장소 동일한 호텔 동일한 음식도 누구에게는 해 볼 만한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최악의 여행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의 즐거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좋은 사람과 여행 가서 좋은 태도를 유지하면 된다.
나는 여행의 전 과정 중에서 여행을 계획할 때가 가장 신난다. 둘째 날은 뭘로 채울까? 뭘 먹고 뭘 볼까?를 계획하며 자연스럽게 여행을 함께 즐기고 있을 활짝 웃는 가족들의 웃음을 떠올린다. 여행 계획은 내 머릿속에서 ' 아마도 ~ 할 거야 '로 가득한 상상이다. 그야말로 최상의 조합들이 뭉쳐지기 때문에 내 머릿속의 계획대로만 되면 죽을 만큼 싫은 사람과 간다고 해도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계획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엇나간다. 신의 영역인 날씨부터 해서 각자의 컨디션 그리고 사진과 다른 호텔, 맛없는 음식 때문에 글로벌 SNS 마케팅을 원망하기도 한다.
마치 온라인 쇼핑몰에서 모델이 입은 옷을 보고 ' 내가 입어도 비슷하겠지? '라고 주문한 옷이 실제로 입어 봤을 때의 처참함처럼 상상은 실제라는 벽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아쉽지만 얼른 플랜 B를 짜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난관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결한 기억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반짝이는 추억으로 우리에게 남는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인생이라는 계획을 짤 때 내 미래는 한없이 행복할 것 같다. 상상 속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100억 부자도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되고, 세계적인 CEO 도 될 수 있다. 그런데 계획을 아무리 촘촘히 세우고 세워도 계획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어그러진다. 실제 해보니 시간이 모자라고 재미도 없어서 지속할 수도 없다. 어떻게 이런 것을 계획이라고 그렇게 촘촘하게 세워댔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그럴 때마다 원래부터 예상했었다는 듯이 유연하게 플랜 B를 찾자. 자기비난과 자기검열은 접어두고 내 입맛에 맞게 잘 고쳐내자. 고작 4박 5일 짧은 여행에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를 비껴갔던가. 그것보다 몇 천배 긴 인생은 그야말로 플랜 X, Y, Z의 연속일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났을 때,
" 하필, 비가 올게 뭐야. 여행 다 망쳤잖아 " 가 아닌
" 비가 와서 아쉽지만, 다른 여행지도 정말 재밌었어 "가 되도록 삶의 태도를 바꾸자.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뒤돌아볼 때 실패라고 여겼던 굴곡들이 결국은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길. 굴곡과 구덩이가 오히려 순탄한 길보다도 더 값진 추억으로 내게 남길 희망한다.
지금 내 맘처럼 안되고 계획대로 안된다고 서운해하지 말자. 여행길에서 벌어지는 그저 그런 작은 해프닝일 뿐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