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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Aug 05. 2023

퇴사작정기#6 갓생살기의 어려움

결국은, 퇴사(의원면직)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쳐 맞기 전에는.

타이슨이 그렇게 말했던가.

우리도 계획을 세웠다. 나름 그러싸한 계획을 말이다. 퇴사를 진심으로 작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던 만큼 정말 진심으로,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그리면서. 오랜만에 굳어졌던 마음에서 여리고 설레는 마음의 결을 느꼈다. 마음이 살아있구나, 아직 죽은 건 아니구나 하는 순간을 누리면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원대한 계획과 동화적인 상상력이 발휘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부푸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우리 수많은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기만 했던 ‘프로 계획 실패러’답게 경험을 살려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웠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도 어려운 취직인데, 퇴사를 작정했다고 쉽게 사표를 던질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일해온 시간은 어떤 경력란에 쓸만한 일의 세계에 있지 않았다. 임용이 되고 퇴직하면 끝이었다. 0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러려면 다음 일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주당 30시간 공부하기.


어차피 빼곡하게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면 못 지킬 가능성이 컸다. 일주일 이라는 시간의 테두리의 유동성에 기대면서, 어제의 나를 반성하며 오늘의 내가 더 열심히 하리라고 착각하면서.

거기다 이런 규칙을 세웠다.

-평일에는 퇴근을 하고 적어도 2시간은 공부한다.

-나머지 공부 시간은 주말에 채운다. (만일, 평일에 못하면 주말을 꼬박 공부에 쏟는다. 대신 평일에 열심히 하면 주말에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적고 보니 좀 허전해보였다. 아, 이럴 순 없지. 프로 실패러의 경력만큼 프로 계획러의 성향이 꿈틀거렸다. 인생의 방향을 틀기 위한 계획인데 이렇게 나태할 순 없었다. 또 하루를 빼곡이 공부와 운동으로 채우던 어린 시절의 호기로움이 발동해서 이런 목표도 추가했다.

-금주하기(우리는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부터 칠 거다)

-일주일에 2~3번은 가볍게라도 운동하기

갓생을 한 번 살아보자고, 호기롭게 외치며 맥주를 마셨다!(원래 내일부터 하는 거니까.) 보란듯이 우리는 그 종이를 냉장고 위에 붙여두었다. 냉장고 위에서 펄럭이는 종잇장은 마치 어떤 깃발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들에 부딪혔다.

공부할 시간을 30시간을 채우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평일에 두 시간 공부하기부터가 난항이었다. 우선, 정시 퇴근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근을 해도 저녁을 먹고 고양이들을 챙기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면 공부할 시간도 에너지도 남지 않았다. 뜬금없는 회식과 예상치 못한 약속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다보면 일주일에 2~3일을 날아가는 건 예삿일이었다. 주말이나 유난히 힘든 날 저녁이며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사나, 싶은 철학적인 고민과 함께 보상심리가 발동했다. 그래도 하루 즈음 쉬어야, 놀아야 하지 않냐고. 결국 그러다보니 주당 30시간은커녕 20시간도 채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시간이 날때마다 우리는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픈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하루종일 쓴 머리로 다시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그 즈음 내내 우리는 몸도, 마음도 늘 소진 상태였다. 원래의 일상에서 추가된 공부를 어쨌든 해내느라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계획을 다 수행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실망감과 열패감이었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그만할까 하고 고개를 드는 그 안주하고 싶은 마음, 모든 이들이 이렇게 퇴사와 이직에 실패했겠거니 하는 공감되는 마음, 결국 이렇게 계속 회사를 다니게 되리라는 암담함 말이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는 계획을 수정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공부 시간대를 바꿨다.
새벽 네 시로.


저녁 시간은 아무래도 퇴근을 하고나면 종일 일을 한 머리와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가볍게 운동을 하거나 쉬고 일찍 자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공부하자. 그 때부터 우리는 새벽 세시 오십분부터 수차례 울리는 알람을 들으며 겨우 일어났다. 대개 열시 이전에 잠들었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물론 전에보다 더 피로와 잠이 누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습관부터 일단 들이자고 네 시에 일어나 빈속에 커피를 마시며 잠이 덜 가신 눈으로 멍하니 책을 읽었다. 두 달 가까이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졸기 일쑤였고 피로에 절은 몸에 쉽게 우울이나 짜증이 가시돋히는 날들도 있었지만 또 한 편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자부가 은은하게 내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은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았고 나의 글은 쌓여갔다. 방향성은 조금씩 굳혀졌다.


하지만 인생이 쉬울리가!


하지만 미라클 모닝이 지속되는 것도 잠시, 우리의 업무는 더 무거워졌다. 이제 연차가 되었으니, 열심히 하니까 큰 업무는 주어졌다. 업무를 좇느라...다시 공부 루틴은 흐트러졌다. 아니 출근퇴근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상은 다시 흐트러졌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지치고 있었다. 게다가...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어디에 도달하고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성실하게 쌓이는 연차에 비례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업무는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퇴사는 요원해보였다. 결국 우리는 결심했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이대로라면 아마 또 깔짝거리다가 지치고 결국 회사를 다니고 말거라고.

결국 퇴사는 작정에 그치고 말거라고.


그리고 한 가지. 만 시간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새로운 분야에 취업하기까지 능력을 쌓기까지는 절대 시간량이 필요했다.

결국 우리는 한 명이 조금 이르게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한 퇴사작정인데 이대로 흐지부지 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둘 중 누가 해야할까. 가위바위보로 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다음 단계로의 취업이 확실해보이는 사람. 늦게 든 바람이 무섭다더니 이렇게 공부가 재미있었던 적이 없다는 사람, 남편이 먼저 퇴사하기로 했다. 나는 어차피 두 가지 일 모두 진행하고 있었고 성과가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나의다음 일이란 충분히 성과를 쌓아야만 이직이란 게 가능했으므로.


결국 남편은 퇴사했다. 그리고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또 계획대로 되지 않을 퇴사 이후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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