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ong Oct 09. 2023

퇴사작정기#7 계획과 예상의 실패

퇴사 이후, 계획과 예상이 방향을 벗어날 때

아직 여름이 다 가시지 않은 9월, 여름이라 하기도 애매하고 가을이라기도 애매하던 그 시기에 m은 의원면직했다.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의원면직서를 제출하고 모든 게 끝나는 데는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보다 1년이 당겨지고, 또 3개월이 당겨진 퇴사였다.

때 이른 소식에 어른들은 걱정했고 지인들 중 일부는 혹시나 너무 힘들어서 더 이르게, 도망치는 건 아니냐는 말을 돌려돌려 건네왔다.

m은 도망친 건 아니었다.

정말 다 못해먹겠다 싶은 그 순간에도 조그맣게 주어지는 월급이나 인정 같은 것들을 퉤,하고 쉽게 뱉어낼 수 없어서 ‘퇴사 작정’이란 걸 일 년 넘게 했으니까. 매달 월급이 있는, 안정이 그래도 좋은 현실적인 생을 쉽게 놓지 못하는 유약한 마음에 지고 싶은 순간들을 어찌어찌 어렵게 이겨냈으니까.

게다가 그 작정기 동안에 다행히 m은 자기 분야를 찾았다. 찾고 보니 마음이 더 급해지는 건 당연했다. 일만 시간의 법칙. 열정. 도전. 결단. 분기점. 언젠가는 흘려들었고 또 언젠가는 모르는 척 눙쳤던 단어들이 떠올랐다. 우린 서른 둘이고 성공한 사람들이야 나이야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의 잣대는 그렇지 않으니까. 결단이 필요했고 결국 실행한 거다. 퇴사를.


결국 m의 퇴사 작정은 성공했다.

m은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것을 0으로 돌려놓고 새로운 분야로 발을 들여놓기 위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되면 그가, 아주 오랜 방황 끝에 찾은 분야가 궁금할 텐데 한때 열기가 쓸고 지나가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it다. 그저 유행에 휩쓸린 게 아니냐, 하겠지만 늘 책을 사서 1장만 파다가 슬쩍 먼지가 쌓이는 사이클을 거짓말을 좀 보태 열 번은 봐온 나로서는 납득할 했다. m을 알고 서로에게 일기를 쓰듯 툭툭 마음을 뱉으며 지내온 지가 8년째였는데 m이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오래도록 집중하는 건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일 배움 카드를 이용해서 온라인 교육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컴퓨터 앞에 붙잡혀 수업을 듣고 회의를 했고, 그 모든 것들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공부와 과제를 해내기 위해서 밤 열한시까지, 새벽 두시까지 공부하는 기염을 토했다. 맥주를 왕창 마시고 (그렇다 여전히.) 난 다음 날도 아직 푸르스름한 어둠이 고여 있는 방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그를 보면 그의 퇴사는 역시나 옳았다고 생각했다.(지금의 나도, 그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그는 다음으로, 아주 잘 건너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여전히 두 가지를 병행했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우리의 생계는 굴러가야했으므로 나는 일단은 지금의 직업을 유지하며 나의 부캐를 키울 계획이었다. 언제까지? 부캐의 수입이 본캐의 수입을 어느 정도 따라잡을 때까지. 또는 m이 다음 일로 잘 건너간 후까지. 그 사이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 책들이 누군가에게 읽혀지는 것을 보면서 그 날이 곧 머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갓생살기는 여전히 어려웠고 자주 실패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결국 말로만 뱉던 퇴사 작정을 한 사람이 이루어냈으니까. 집 안의 ‘퇴사자’가 혼자 아주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그것 나름으로 자극이 되기도 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는 사이 부캐에서는 조금씩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조금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퇴사 작정은 그렇게 부캐를 키워가면서 더 단단해졌다. 아마도 나의 퇴사작정도 곧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퇴사 작정도 완성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획은 역시나 계획일 뿐인걸까. 세상은 우리가 가늠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얼굴을 바꾸었다. m은 6개월 과정의 교육을 수료하고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 6개월 사이, 전도유망해 보이던 it업계는 급속도로 나빠져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경기가 나빠져 있었다. 이대로 m이 다음 일을 찾는다면 과연 우리가 견디듯 살던 이전의 ‘일’의 세계와 뭐가 다를까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다를수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 지금의 상황에선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당장 재직하고 있던 사람들부터 줄줄이 나오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이 현실속에서 새로운 업계로 들어가서는 정말로 뭐하나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낮은 처우와 임금, 결국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한 ‘일’이 나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현실까지. 다시금 m은 방향을 잃었다. 퇴사 작정을 하고 퇴사까지는 성공했지만 '다음'으로 건너가는 일은 요원해보였다.


하지만, 퇴사의 진정한 완성은
다음 일로 완전히 잘 건너가고 나서야 완성되는 게 아닐까.


 m은 다시 여러 가지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다음 일로 잘 건너가기 위해서. 제대로 퇴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혼란스럽고 무엇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안개가 끼인 하루하루였지만 그래도 한가지, 퇴사에 성공했다는 감각만은 선명했다. 그 감각만이 우리의 내부에 뜨겁게 돌며 불안에 들썽이는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결국 삶이란 언제나 도달점이나 마침표가 아니라 언제나 진행형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우리는 다시금 퇴사와 퇴사작정을 완성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게 삶이니 어쩌면 계획과는 다른 또 좋은 일들도 예상치 못하게 있으리라 믿으면서.


#퇴사작정기 #퇴사 #직장생활 #공무원 퇴사

이전 06화 퇴사작정기#6 갓생살기의 어려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