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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Dec 09. 2022

퇴사작정기#5 MZ세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론

조용한 사직? 일과 꿈 사이에서: ‘일’과 ‘꿈’은 분리가 필요하다.

됐다, 됐어 너무 애쓸 필요 없어. 그러다 마음만 다치지. 괜히 열심히 하면 다들 호구로만 보지. 알지? 일은 하면할수록 느는 거. 아무것도 안해야 일이 줄어든다. 받은 만큼만 일하자고, 너무 애쓰고 나를 갈아넣어서 일을 해서 얻을 게 뭔데.


요즘 내가, 나의 주변인들이, 아는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많이들 하고 또 듣는 말들이다.

조용한 사직이 하나의 유행이고 현상이 됐다.

조용한 사직, 쉽게 말하면 최소한으로 일하자는 것이다.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지만, 일에 ‘나’를 쏟지 않겠다는 말이고 받은 만큼만 일하고 우리 너무 애쓰지 말자는 결심이다. 직장 일이 나를 대변하지 않으니까. 주말과 잠자리 들기 전의 평안한 마음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넬 에너지들을 다 쏟아 넣는다해서 그것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일은 일일뿐, 나머지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쓰며 거리두기를 좀 하자는 거다.

그래 맞는 말이지.

나는 말과 말의 행간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을 오래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유난히 마음이 서걱거렸다. 그런 말을 뱉은 순간 가끔이 좀 콕콕, 아팠고 괜히 입 안으로 입술을 말아넣곤 했다. 이미 잘 ‘못’사는 어른,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 느껴져서였다.


왜 그럴까. 왜, 일은 일로 생각하자는데 나는 마음이 불편할까.

생각해보니 나는 오래도록 ‘꿈’과 ‘일’을 혼동해왔다.


사실 일을 하기 전까지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꿈이나 장래희망 따위로 미래의 직업을 꿈꿔본 적은 있어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이라고 하면 뭐랄까.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건 어떤 성취나 자아실현과는 동떨어진 다만 생계와 노동, 힘듦과 가까운 단어처럼 보였다. 매일매일 평생을,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늘 ‘일’이 아니라 ‘꿈’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니, 막연한 꿈에 대한 이미지만 꿈꿨던 것 같다. 그 뭐랄까, 딱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고, 자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뭔가 목표한 바를 이뤄내 사람들의 조명을 받는. 마침내 어떤 성취를 이루는 그 '꿈'에 대해 흔히 소비되는 이미지들 말이다.

그리고 목표한 바를 이루어 선생님이 마침내 되었을 때, 선생님이 나의 현실의 ‘일’이 된 순간부터는 꿈을 생각하듯이 ‘일’을 대해왔다.

열정을 다하고 나를 쏟아넣어서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고, 그게 맞다고.

흔히 드라마에서만 본 것처럼 말이다.

회사에 들어간 주인공이 얼떨결에 불가능해보이는 프로젝트를 맡는다. 주인공은 몇 날 며칠 밤을 새고 자신을 갈아 넣어서 성공해낸다. 그런 와중에도 주인공은 피곤에 절은 얼굴로 웃는다. 그래도 좋다고, 행복하다고. 가치롭다고.

그 장면은 분명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웬걸.

생각과는 달리 현실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게 아니라 불가능했다. 내가 막상 직업을 가지고 매일 마주한 건, 성취의 달콤한 열매만 있는 ‘꿈’의 세계도 아니고 자아실현의 현장도 아닌

일상적 ‘일’의 세계였다.


지난 밤 취침 시간에 따라 다른 몸의 상태를 견디면서 매일 출근해야하는 세계, 매일매일 쌓이는 업무와 나의 일처리 속도와 누가누가 더 업무를 더하나 덜하나하는 눈치의 장, 나와는 전혀 상관없어도 집단 내의 알력싸움에 새우등 터지면서 일을 하는 견디는 곳 말이다.


일상적 일을 잘 해나가려면 나를 잘 돌봐야했다. 일과 나를 분리하고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정립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꿈과 일을 혼동하고 다만 일에 대해서 제대로 된 나의 태도를,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지도 않은 채 일해왔다.

그러다보니 결국 나는 소진되었다. 꿈도 오해하고 일에 대해서도 오해한 채로.

비로소 퇴사를 작정하고보니 보였다. 꿈과 일의 간극이. 두 개는 다르다는 것을. 꿈은 직업일 필요도 반드시 일이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나만의 ‘일’ 론을 세워가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퇴사를 작정한만큼, 다음 일의 세계에서는 나는 조용한 사직자도, 번아웃러도 되고 싶지 않으니까. 시간으로 따지면 일생에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쏟는 게 바로 직장이지 않은가. 그 '일'을 하는 시간들에서도 나는 행복하고 싶다.


나의 '일'론의 기본 일에 대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적어도 하는 동안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일 것.

2. 나의 ‘열심’이 성과로 이어질 것.

3. 일을 하면서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4. 동시에 나를 스스로 잘 돌보고 일상적 삶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것일 것.

아직은 이정도다.


그리고 이제,

나의 꿈은 그냥 행복하고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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