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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25. 2022

퇴사작정기 #3 작정이후: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꿈을 제대로 고민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퇴사를 작정하고 우리는 각자 한 가지 질문 앞에서 멈춰섰다. 남편 m의 경우에는 이 질문 앞에서였다.

“퇴사까지 나서 도대체 무얼 하고 싶은데? 무얼 해서 먹고 살 건데?”

흔히 하는 농담처럼 많은 백수라거나 건물주말고, 현실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했다. 무작정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처럼 회사 컴퓨터에 그 동안 일하며 쌓아뒀던 파일을 다 지워버리고 시원하게 퇴사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썰처럼 ‘도비 is free’라는 티셔츠를 보여주며 퇴사하며 마냥 자유를 만끽할 수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야 그 장면이 엔딩이라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되니까. 매월, 매해 카드값과 공과금과 내야할 이자가 꼬박꼬박 돌아오고 책임져야할 두 몸과 세 마리의 고양이들을 위한 비용에는 엔딩이 없으니까.

그 때부터 m의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렇게나 사는 게 어렵다. 작정도 어려운데 작정 이후는 더 어렵다.)


나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m은 그 질문 앞에서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질문에는 이런 꼬리가 붙어있었다.

‘그 안정적인 일까지 그만두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두려니 현실적인 고민도 뒤따랐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면 새롭게 시험을 치거나 아예 새로운 분야로 발을 들여야 한다. 점점 인기는 식고 있지만 어른들의 인식에 그만한 게 없다고들 말한다. 공무원 자체가 이직이 쉬운 직종은 아니라는 얘기다.

퇴사 이후의 일.

그것에 대해 m은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조건은 있었다.


 다시 진입하는 일의 세계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좋아하는 것이어야 했다.

결코 돈을 벌기위해서만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퇴사를 작정하며 깨달았다. 그러니 견딜 수 있고 의미가 있는, 나를 닳게 하지 않을만한 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m은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탐정과 만화가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 이후로는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물음에 m은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웬만한 화젯거리에서는 내 말에 공감해보려는 그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그는 한참 나를 낯설게 보더니 말했다.

“내가 알기론 자기보다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을걸?”

m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학교는 다녀야 해서 다녔다. 딱히 공부에 취미도 흥미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을만큼 싫지도 않았다. 어른들은 항상 말했다.

꿈을 가져라. 좋아하는 일을 하렴. 무엇이든 될 수 있단다.

그 말을 믿고 진로란 걸 고민해보려하면 어른들은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을 건네주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공부부터 하라고. 대학부터 가라고. 그러면 뭔가 알 게 될거라면서. 그 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그 말을 따라 그는 열심히, 성실하게 오늘을 살았다. 대학에 갔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가보니 다시 '말'들은 시작되었다. 취업과 토익점수와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안정적인 직장에 대해서, 청년 실업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고 '노오오오력' 하지 않는 요즘 세대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게다가 그 무렵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공부하고 열정페이를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시간을 아끼려 밥도 걸으며 먹는 청춘을 아름답게 그리는 '열정'론이 대세였다.

그렇게 '적당히' 열심히 주어진 것을 해내다보니, m은 무얼 좋아하고 뭐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지 못한 채로 공무원이 되었다. 심지어 한번도 실패하지 않고, 시기에 맞게 아주 잘해냈다는 칭찬까지 받으며


어떻게 보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될 수 있는 게 되어버린거지.


그렇게 도달한 직장인의 삶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게 당연했다. 이제는 그 질문들을 마주할 때였다.

도대체 너는 무얼 좋아하니.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물론 일을 하면서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으니 좀 더 질문을 순화한다면 이럴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일로 가장 많은 하루의 시간을 보낸다면 어느 편이 견딜만할 것 같은가. 일의 기쁨을 좀 느낄 것 같은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m은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일을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오래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까. 사실 취향이든, 적성이든 알려면 수많은 실패가 필요하지 않은가. 직업적 자아정체성이라면 더 수많은 시행착오나 고민이 필요한 게 당연했다.  

"지금부터 찾아봐."

내 말에 m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적성검사라도 해봐야하나”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일단 한 번 찾아보자. 진지하게. 답을 찾기 위한 답말고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보는 거지.“

그렇게 m의 우당퉁탕 직업정체성을 찾는 시간은 시작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하고 싶은가. 뭘 하면 일의 기쁨을 느끼며 잘 견뎌나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든 채 m은 다양한 분야를 건드려보기 시작했다. m의 말에 따르면 설레는 마음으로 매번 복권을 사고 꽝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m의 (진짜로는 처음인) 두 번째 사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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