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에서 결국 현실의 손을 잡았던, 사람들에게
퇴사 작정 후, m은 새로운 질문을 맞닥뜨렸다면 나는 오래 전 골몰했던 지지부진한 질문을, 겨우 억지로 답을 찾아 눙쳐 의식의 저 너머로 밀어둔 그 질문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를 하고 사는 일, 그게 가능할까.
예전에 찾아둔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나는 이상과 꿈을 버리지는 못해 안절부절하지만 결국 현실주의자였으니까.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으니까. 나라는 사람은 결코 현실과 꿈을 저울에 올려놓고 저울질해 과감히 현실을 버릴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니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밥벌이를 해나가기엔 그만큼의 능력치와 열정,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으니까.
그런 이유들을 붙여 결론을 내고 저만치 밀어두었던 질문이었다. 게다가 사실 저 질문을 칼처럼 마음 안에 품고 살았던 동안은 사는 게 더 어려웠기에 이렇게라도 치워두는 게 한편으로는 편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제대로’ 고민해야 했다. 막상 고민을 시작하자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퇴사를 작정한 나의 직업도 오래 전 나의 꿈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탈이었던 애였다. 그리고 늘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갈까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그게 육개월 후든, 일년 후든, 먼 미래든.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내가 완성해나갈 삶이 궁금했고 이왕이면 정말로 잘, 가치롭게 의미있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도 무척 많았던 것 같다. 글도 쓰고 싶고 선생님도 하고 싶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여행자도 되고 싶었고 참신한 광고문구를 만드는 카피라이터도 되고 싶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사람들과 마주해서 상처를 마주하며 그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심리 상담가도 되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은 진로적성검사에도 해당영역에서 아주 높은 숫자를 보여주면서 나를 부추겼다.
물론 그 모든 게 될 수는 없으니 선택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나는 수많은 ‘하고 싶다’를 여과시키고 여과시켰다. 결국 끝까지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글을 쓰는 일과 선생님, 말그래도 먼저 산 사람이 되어 아이들을 손을 붙잡아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
장래희망이 뭐야? 뭐 하고 싶어?
그 흔한 질문에 나는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싶다 말했고 또 어떤 날은 선생님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대답할 땐 다들 음, 아직도 얘가 세상을 모르는구나,하는 표정을 지었고 두 번째 대답을 할 땐 흐뭇해했다. 선을 넘을 줄 아는 사람들은 ‘여자 직업으론 그만한 게 없다’고 말을 했다.
둘 중 뭘 선택해야 할까. 현실과 꿈, 그 중 현실이 눈에 보였다.
나는 15초 광고영상을 보고도 버스 안에서 괜히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지만 지극히 현실주의자였고, 그래서 현실적인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꿈만 선택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못됐다. 그 때 나는 늘 얼른 내 몫을 해내야할 것만 같은 압박감에 스스로 시달리고 있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늘 자신의 몫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걸 내어주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싶었다. 선생님도 분명한 꿈이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그 일은 좀 미뤄둬도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선생님이 되는 거야. 나중에 글을 쓰자.
그렇게 나는 완전히 하고 싶은 일, 꿈보다는 현실이 적절히 배합된 쪽을 선택했다. 마음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사실 두 가지 꿈을 양팔저울에 올려놓는다면 아마도 글을 쓰는 일로 1g즈음 더 무겁게 기울지 않았을까. 아니, 사실 현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예 글을 쓰는 쪽으로 확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는 대학을 진학하고 임용고시를 치루고 합격했다. 대학교 졸업식을 한 열흘 후 나는 학교에 선생님으로 섰다. 정말 쉼표없이, 가열차게 달려가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선생님이 된다. 그 '이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된다'는 결론에만 눈이 멀어있었던 거다. 얼른 선생님이 되고, 다음으로 글이 쓰고 싶었으니까. 다음 단계를 생각하느라 '선생님'이 된 뒤에 진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선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직업을 단지 갖게되는 것만으로는 삶이 완성형이 되지 않는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공주와 왕자는 결혼했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엔딩을 꿈꾼 셈이다.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장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눙쳐져 있거나 흡사 '사기'에 불과한 문장이라는 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는데도.
제대로 준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으니 결국 하는 현실에 쫓기기 시작했다. 마음의 추도 급격히 현실의 삶으로 기울었다. 업무를 배우느라, 아이들 앞에서 서툴지 않은 척 하느라, 사회 생활의 암묵적인 룰을 배우고 몸에 익혀가느라고 나의 다음 단계의 꿈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의 일이란 막연히 알던 것과는 너무달랐다. 내가 짐작하던 일의 세계란 그저 '환상'에 불과한 드라마와 영화적 이미지일 뿐이었고, 학생의 시각으로 봤던 아주 파편으로 짜맞춘 듬성듬성한 조각에 불과했다. 게다가 '선생님'이라는 직업 뿐 아니라 선생님으로 사는 내 스스로에 대해서도 수많은 몰이해와 오해가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주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해야 했고 내가 직업에 적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간섭하고 끊임없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한다고 말하며 통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었고 우스갯소리로 투명망토가 있다면 쓰고 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누군가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도대체 어째서인지 알 수 없게 매년 더 어려워지는 듯한 학급경영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매년 증식하는 업무에 치이다보니 결국 수많은 오늘들에 그저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고장날 밖에.
그렇게 돌고 돌아 퇴사를 작정한 사람이 되어 다시 그 질문을 마주했다.
생각해보면 현실을 생각해서 진짜 내 마음의 무게를 무시한 그 순간부터, 어떻게 살 지를 생각하지 않고 다만 ‘된다’는 목표만 좇은 그 순간부터 균열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에는 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덕분에 퇴사를 작정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일, 그걸 가능하게 만들자고,
하고 싶은 그 마음의 무게를 절대 무시하지 말자,고.
다 그렇게 산다는 냉소도, 어차피 이제는 너무 늦었다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포기도 사실은 너무 쉽다. 쉽고도 편리하다. 그렇게나마 여기 현실에, 그나마 아는 불행과 힘듦 사이에서 안주할 수 있으니까.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을 잊지 않기로 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차츰 찾아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잘 살아보겠다는 그 마음을, 실패와 실패와 실패 사이에서도 울지만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마음 말이다.
#퇴사작정기 #퇴사 #직장생활 #직장생활 #공무원 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