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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Oct 20. 2023

퇴사작정기#9비로소 마주한 진실과 퇴사작정 슬럼프

사랑으로 다 된다는 착각이 만든 세상에서 선생님을 한다는 것.

이제 막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겠다고 생각하던 7월은 퇴사를 작정한지 거의 3년차가 되던 무렵이었다.(그렇다, 글에는 축약되어 있으나 꽤 긴 시간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쓰고 있다.) 작정이 단단해질수록 일상이 버거웠다. 아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불쑥 자꾸만 뭔가 열심히 하고 싶은 내 마음과 무기력이 뒤엉켜 마음이 다 소진되어버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므로.

그런 날들 중 어느 하루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던 저녁,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혹시 그 얘기 들었어?"

왜였을까. 비슷한 일들은 바로 옆 학교에서, 주변에서 들려왔었는데도 그 날 그렇게 마음이 내려앉는 건. 견디고 있던 마음이 그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한참을 잠을 설쳤고 그러고도 이른 새벽에 혼자 깨어나 관련 뉴스들을 죄다 훑어보았다. 그런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화환들이 줄지어 그 학교 앞에 서고 사람들이 울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모래알 집단이라 사람들이 비웃던 우리가 여름 내내 모였고 울었고 소리쳤다. 언제나 나의 ‘사랑 부족’으로, 내 ‘능력 부족’으로 스스로 눙쳐 억지로 삼켰던 것들을 뜨거운 여름볕 아래에 내어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안심을 했다. 잠깐 착각을 했다. 한 번도 모인적 없던 우리가, 다른 것도 아니고 ‘제대로 가르치게 해달라’고 외쳤으니 뭔가 바뀔거라고.

하지만 가을이 되어도 연일 들려오는 건, 슬프고 참담한 소식들과 여전히 적대적인 마음들, 이해인 척 하는 몰이해와 결국엔 ‘사랑으로’ 감싸고 어루면 나아질거라는 강요였다.     


‘사랑으로’라고?   


나는 도무지 그들이 말하는 그 사랑이 무언지 알수가 없다. 그 놈의 ‘사랑만능론’을 이해할 수 없다. 구체적인 방법도, 현실적인 해법도 없이 불러대는 그놈의 사랑노래를, 현장에서 아이들을 눈을 맞추는 나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의 시선에선 여전히 교사는 최소한 신이어야 하는 듯 했다. 아이들 앞에 서는 어른인 이상은 ‘사랑’을 책무로 지녀야한다고. 두 명의 부모가 한 아이를 볼 때도 채 다 살피지 못하는데도. 선생님이란 한 명이어도 스물 몇 명의 아이들의 모든 속사정을 헤아려야 했다. 아이라면 그 누구도 아주 작은 마음의 상처도 나면 안되니까. 아이들이 말하지 않더래도 어떻게든 다 그 모든 마음들을 다 살펴야 했다. 설령 그게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학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아무리 고함을 치고 욕을 하고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범위를 넘어 객관적으로는 ‘나쁜’행동을 하더라도 그 저편의 그럴만한 모든 이유를 헤아려 그 아이를 ‘혼내지는 않고 사랑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동시에 그 아이에게 당한 아이의 마음이 티끌도 남지 않을만큼 (잘못을 한 아이를 혼내지는 않지만) 그 마음을 다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그 ‘사랑으로..’

사실, 어쩌면 교사인 나조차도 잠깐은 신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걸 강요하는 세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신의 반의 반의 반도 되지 못한 채, 어쩌면 왠지 인간도 다 되지 못한 채로 허우적거리다 결국 나는 퇴사를 작정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엉망인 채로.


떠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내게는 없으니까.
사랑이란 걸 도대체가 알 수가 없으니까.      


우습게도 선생님은 오랜 내 꿈이었다. 처음엔 모르는 걸 차근차근 알려줬을 때 밝아지던 얼굴이 좋아서였고, 나중엔 좋은 선생님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좀 몰입해 봤던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말 그대로 선생, 先生 미리 삶을 산 사람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주고 싶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대단한 사람이 못되도 적어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자기 삶을 소중하게 살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싶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티끌만한 나의 사랑을 얹고 싶었다. 말랑한 볼과 딱 그마만치의 말랑한 마음을 가져서 내 사랑이 콕, 박힐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내 티끌만한 작은 사랑이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발령을 받고 정말 고군분투했었다.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므로. 그래서 겨우 우리반이 된지 이틀 째가 된 그 날도 친구에게 욕을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선생님은 정말 너를 사랑한다고, 선생님을 믿고 조금씩 노력해보자’고, 믿기지 않겠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금세 나의 꿈은, 마음은 깨어졌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아픈 아이의 멱살을 잡고 운동장에 끌고다녔다. 주변을 맴돌아 눈에 거슬린다는 게 이유였다. 아이와 상담을 하고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 가르치고, 아이는 그러지 않겠다고 나와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그날 밤, 자정이 넘어 전화가 걸려왔다. ‘애니까 그럴수도 있는데 왜 뭐라고 했냐고,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어찌할거냐고’ 그 아이의 엄마를 나를 몰아세웠다. ‘우리 아이는 그저 잘 달래주고 칭찬하면 잘 알아듣는데, 선생님의 사랑이 부족한 거 같다고’. 자다말고 전화를 받고서야 내 ‘사랑’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미 세상은 빠르게 변해있었다. 변한 세상에서 요구하는‘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이랑은 달랐다. 내가 그 간극 앞에서 벙찔 때마다, 여전히 그 모두들은 그저 ‘사랑’하면 된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진심으로 사랑을 주면 된다고. 그러면 아이들은 180도로 변할 거라고. 영화처럼 혹은 동화처럼.

수시로 주변 아이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화가 나면 책상을 던지고 가위로 온갖 것들을 찢어발기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서도 안되지만 내버려둬서도 안된다고. 사랑으로 지도하면 된다고.

겨우 4학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학교에 와서 내리 엎드려 자는 아이를 깨워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둬서도 안된다고. 사랑으로 지도하면 된다고.

‘어떻게’는 내가 사랑하면 다 알게 되리라는 듯이 그들은 그저 사랑 노래만 불러댔다.

미안하지만 그런 ‘사랑’은 내게 없었다.      


나는 아픈 아이를 멱살을 잡는 아이에게 어떤 이유로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나쁜거라고 단단히 일러주고 싶었고, 겨우 열한살밖에 되지 않아서 게임을 한다고 밤을 꼬박 새는 아이에게 게임을 금지하고 수업시간에 흔들어 깨워 뭐라도 가르치고 싶었다. 지루해도 뭔가 배우고 깨우치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수시로 욕설을 하는 아이에게, 화가나면 책상을 던지고 물건을 찢는 아이에게 그건 잘못된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너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고. 그래야 친구들도 널 피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래야 너도 다정하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바르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나에게는 그게 사랑이었다.


하지만 교사들 사이에선 별의별 이유로 아동학대 고소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매일 아침 엄마가 녹음기를 넣어보내고 저녁마다 전화를 걸어 그 모든 한마디한마디를 꼬투리를 잡다는 이야기들이, 도를 넘는 민원에 대한 썰들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를 잠식할만큼. 나 또한 그 모든 것들을 피할 재간은 없어보였다. 그런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렇다고 담대히 나의 생계를 걸고 멋대로 할 용기도 없었다. 신을 믿지 않지만 그저 오늘 하루 평안하게 해주세요, 정도로 외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서 퇴사를 작정한 거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으니까. 내게는 그만한 사랑이 없으니까. 나는 그럴만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더는 버틸 자신이 없으니까. 매일 나의 모든 사소한 행동과 말들을 복기하며 혹시나 고소를 당하지는 않겠지,하고 밤마다 들썽이는 마음을 잠재는 걸 더는 안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 여름과 가을 지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나의 퇴사작정에는 온전한 나의 의지가 담겨있지 않다는 걸.

전화를 끊으며 덜덜 떨리는 손이 내게 나약해서가 아니었고, 아이를 위해서 뭐라 말하려다가도 말을 삼키는 순간들이 그 때 밀려오는 열패감과 허망함이,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싫어지는 건 내가 정말 그럴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한때는 오랜꿈이었고 나의 자랑이었던 나의 일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아주 성실하게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었던 거다. 내가 퇴사를 작정할만큼.

이걸 깨닫고나자 이상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그만두기엔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내가 이토록 힘든 건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해서라는 역설적인 사실도 웃겼다. 나는 내 일을 정말로 사랑했었는데 어쩌면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대로 버틸까.

하지만 버티기엔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실제로 여름부터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내내 그 모든 소식들에, 소식들에 흔들리는 마음에 침잠해 있었다. 베르테르 효과니, 전염된거라느니 하는 건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다. 너무도 잘 알아서 그랬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들이치는 민원들에 숨막히는 그 순간들을, 분명 지금 함께 노력하고 잡아주면 괜찮아질 것만 같은데 아동학대가 무서워서, 자존감을 해친다는 그들의 말이 무서워 아무것도 못하겠는 현실을, 그렇게 자라 자꾸만 주변으로부터 배척되는 아이들을 보는 일을, 그 모든 것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결국 나의 사랑부족, 능력부족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떠난다.  

그대로 남는다.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도대체 뭘 선택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무기력해졌다. 부캐를 키우는 일도 시들해졌고 그저 매일 삶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름으로 가열차게 달려왔던 퇴사 작정도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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