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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Oct 22. 2023

퇴사작정기#10 퇴사의 완성과 작정의 완성,아니 미완성

결국, 우리가 도착할 곳은 n잡러의 세계.

어째서 방향을 잃기란 이렇게 쉬운지.

반대로 무언가 방향성을 찾거나 길을 찾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m은 m대로 나는 나대로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한여름밤의 열기처럼 열뜨게 방향잃음을 앓았다. 뭔가가 희미하게 보일 듯 보이지 않아서 계속해서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퇴사와 퇴사작정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m은 퇴사를 진정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일로 제대로 건너가야했지만 여전히 그는 어디로 안착해야할지조차 헷갈려했다. 나의 퇴사작정은 이제, 그 ‘작정’조차도 불투명하게 됐다.

도대체 뭐가 맞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나 일을 하고 사는 삶이 어렵기만 한 걸까. 일이란 도대체 뭘까. 일을 하고 산단 건 뭘까. 그렇게 질문과 질문의 꼬리를 물고 생각을 늘어뜨리다보면 결국 우리는 처음처럼 왜 사는가, 하는 답도 없는 진부하고 오래된 질문을 맞닥뜨렸다. 한참 그

질문 앞을 맴돌다보니 적어도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이제 그 질문에서 풀려나는 빙벚을 조금은 안다는 거다. 그래도 퇴사작정을 해온지 3년차. 나름으로 배운 게 있었다.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르지만, 버겁지만, 헷갈리지만 일단 무엇이든 하고 본다. 그러면 무언가로 연결될 것이다.


‘계획된 우연’이라는 말이 있다.

존 크롬볼츠가 말한 개념인데 진로를 결정하는 게 비계획적이고 우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이 단편적인 문장만 보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나하고 누구든 고개를 갸웃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동시에 이제껏 받은 모든 진로교육과 자기개발서에 대해 회의를 품었었으니까. 이게 정말로 가만히 앉아 우연히 오는 어떤 사건에 의해 진로가 결정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결국 접하는 모든 일상의 사건들과 환경들에 영향을 받아 진로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원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해보아야만 그 우연을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결국에 많은 우연들을 겪어봐야 그것들이 진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거고. 정말 쉽게 말하면 늘 누군가들이 이런저런 말들로 변형해 말해왔듯이 많이 도전하고 실패해봐야 한다는 거다. 실패를 위한 실패조차도 자신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고 그게 진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일단 해보자.

그게 우리가 골머리를 앓으며, 한여름해보다 뜨거운 한숨을 길게도 내쉬며 지나와 내린 결론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허우적거리면서도, 조금씩 반짝 기운이 나는 날이면 무엇이든 했다.

m은 자기가 비로소 찾은 자신의 분야인 it부터, 부동산 관련 일과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하게 된 청소 업까지(이것 또한 계획된 우연이다)까지 손을 뻗었다.

나는 나대로 무기력과 슬럼프에 허우적거리다가도 깔딱, 정신이 돌아올 때면 여전히 글을 썼다. 글 안에서도 장르들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일 또한 모색했다. 나름으로 명확했던 나만의 진로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들도 생각했다. 내 일을 다시금 사랑해볼까 하는 노력도 했다.


'자기 개념 복잡성'이 높을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결과가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자기 개념'인데 이 '자기 개념'이 다양하고 복합적일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거다. 말하자면 마음의 힘이 있다는 거다. 하나의 페르소나가 무너져도 다른 페르소나로 극복 가능하므로.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한 가지의 일만 붙잡고 있다면, ‘일의 정체성’이 한 가지라면 그 한 가지의 일이 내게 주는 타격이란 클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 일은 내 삶에, 일상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그 일이란 게 단 하나라면 결국 그 일이 흔들리면 내 세계가 흔들리는 거다.

그러니까 다양한 일의 정체성을 가진다면... 조금은 낫지 않까.

내가 갖게 될 일의 세계가 다양하다면, 복합적이라면 이 곳에서 받은 상처를 다른 세계에서 좀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곳에서 얻지 못하는 것들을 다른 일의 세계에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n잡러가 되기로 했다.

다양한 일의 세계를 갖는 것, 그게 우리가 도착하게 될 지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각자 마음이 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나의 ‘일’로 만들어 가보기로 했다. 물론 그러려면 한참을 좀 부지런해야 될 것이다. 맥주를 좋아하고 누워쉬는 것도, 여행도 좋아하는 우리가 n잡을 하려면 꽤나 힘들 것이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아무리 한참을 이야기해보고 허우적거리며 고민을 해봐도 마음은 그렇게 기울었다. 아주 묵직하게. 갓생살기에 계속 실패하면서도 갓생살기를 결심하는 쪽이 더 행복하므로. 끊임없이 세상을 탐색하고 다음 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쪽이 불안하더라도 더 살아있음을, 일하는 의미를 느끼니까.


결국 삶이란 온점에 완전히 안착할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이렇게 실패하면서, 자꾸만 예상에서 벗어나는 계획을 수정하면서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또 무언가를 작정하고 그 작정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또 실패할 것이다. 삶과 일에 대한 생각과 의지를 썼다지웠다하면서, 쉼표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m은 어디로도 완전히 건너가지 못했다. m의 퇴사는 아직 완전한 의미로는 완성되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방향을 잡고 열심히 나아가는 중이다.

나는 지금은 여전히 글 쓰는 것과 교사 일을 병행중이며 내 퇴사작정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 곧 휴직을 해 쉼표를 가질 생각이다. 정말로 내가 사랑했던, 마음을 쏟는 것을 마지 않던  일을 벗어나 고민해볼 작정이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n잡들을 가질 것인지. 지속할것인지.

결국 우리의 퇴사와 퇴사작정은 완성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완성보다 이 미완의 상태가 완성에 가깝다고 여긴다.


혹시나 다 따라 읽은 사람들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다 때려치우고 이렇게 성공했어요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 따위는 없으므로. 언제나 그래왔듯이 머뭇거리고 고민하고 계획에 실패하는 이야기이므로.

하지만 그래도,

멋지게 단 하루 아침에 퇴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다음 일로 건너가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뽐내지는 못하지만 작정을 해서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에 대해, 일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것들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퇴사를 저지르지 못하고, 오늘과 내일을 위해 꾹꾹 참고 오늘도 출근하는, 퇴사를 마음에 품은 나의 친구들에게, 사람들에게 한 번즈음은 말을 건네고 싶다. 다 그렇게 산다고,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냐며 그렇게 쉽게 냉소하며 살지는 말자고.

무엇이든 작정이란 것부터 한 번 해보자고. 적어도 작정이라도 하고나면 좀 나아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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