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러너란 오직 겉 멋으로 러닝을 즐기는 러너를 말한다. 특히 달리기가 목적이 아닌 보여주기가 목적인 러너를 말한다.
아침마다 3km씩 달린다는 스레드 글에 누군가 댓글로 "3km? 풋" 하고 비웃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러너들은 마일리지와 속도를 중시한다. 매번 인증사진에 어떻게든 자신이 길고 빠르게 달렸음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다.
그 표시를 얼마나 힙하고 비주얼 하게 보여주느냐가 그 영상과 사진의 품질을 가르고, 더 중요한 건 모델이 얼마나 힙하냐일지 모른다. 3km가 우습냐고 한다면 누군가에겐 힘들고 누군가에겐 우스울 수 있다.
뛰었다 하면 기본이 10km는 자동으로 뛰어지는 러너들에게 3km는 워밍업도 안 되는 거리니 웃음이 나올 수도 있고, 처음 뛰기 시작한 분들에겐 도전적인 거리일 수 있다. 부상으로 회복 중인 러너에겐 100km처럼 꿈같은 거리일 수도 있다.
아침에 뛰어보니 덥기도 덥지만 글쓰기도 하고 싶어서 달리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많아야 5~6km. 그것도 천천히 뛰어서 평소 제대로 마음먹고 뛰는 것에 비할 바 없다. 하지만 그 거리가 부끄럽진 않다.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페이스가 7분대로 넘어가도 부끄럽지 않다.
평일엔 그냥 나가기 바쁘지만, 주말이면 나도 패션러너가 되고 싶다. 화려한 포슘 목걸이를 차고, 살로몬 헤어밴드로 머리를 동여매고, 파리눈깔 모양의 100% 선글라스를 올려 쓰고 나간다.
난 주로에서 만나는 패션러너들이 좋다. 시원하게 브라탑을 입고 당당하게 달리는 러너, 선글라스를 쓰고 힘든 얼굴을 멋지게 감추고 달려오는 러너, 옷을 깔맞춤 하고 달려오는 소규모 크루들까지.
패션러너가 어때서? 나이가 들었다고, 러닝에 진심이라는 표시가 아무렇게나 입고 운동복을 걸치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빠르고 멀리 뛰는 거라면 거부하고 싶다.
초보러너 때 새벽에 잔뜩 치장(?)하고 대문 밖을 나서는데, 아내가 보고 "동네에서 그렇게 다니면 부끄럽지 않아?"라고 째려봐서 "아니, 안 부끄러워."하고 꿋꿋이 나간 기억이 있다.
그때 기죽고 부끄러워서 싱글렛도 벗고, 목걸이도 빼고, 레깅스도 벗고 차도르를 두르고 다시 뛰러 나갔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 같다. SNS를 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얼굴 없는 풍경사진만 올리며 좋아요만 누르던 나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
패션러너가 되자. 51세인 나도 패션러너가 좋은데, 더 젊고 건강하고 예쁘고 멋진 당신이 패션러너가 안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러닝은 그렇게 잘 차려입고 나와서 즐겁게 제대로 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제대로 뛴다는 게 장거리를 뛰고 일정 페이스 이상을 뛰어야 한다는 기준이 없지 않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1km를 뛰어도 멋지게 차려입고 나와서 멋지고 예쁘게 뛰면 좋으니까. 어차피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뛰는 게 아니라면 굳이 러너가 아닐 때 아무렇게 슬리퍼 끌고 나와 편의점에 과자 사러 나온 모습으로 뛸 이유는 없으니까.
찐 러너들은 패션러너가 미울지 몰라도, 나는 패션러너가 좋다. 부럽고 사랑스럽다.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러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회도 아닌데 왜 요란을 떠냐고? 아니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대회를 위해서 러닝화를 아껴신고, 그때 때 빼고 광내고 잘 차려입고 나간다고?
왜? 난 기다리기 싫다. 그냥 일상을 대회처럼 살면 안 될까? 누군가 밥상을 차려놓아야 잘 차려입고 가서 밥 먹을 필요가 있을까? 아침마다 고작(?) 3km라도 멋지고 예쁘게 차려입고 간지 나게 뛰고 오는 게 뭐 어때서? 패션러너가 어때서? 멋지고 아름답게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1km라도 뛰는 게 뭐가 어때서?
솔직해지자. 사람은 누구나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sns를 하는 이유도 그런 거 아닌가? 나는 패션러너가 되고 싶다. 물론 달리기도 잘하고 싶고 글쓰기도 더 잘하고 싶다.
하지만 빨리 달리고 길게 달려야 패션러너가 될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달리기 실력과 꾸미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미고 나가는 자체로 자존감이 올라가고 기분이 좋으니까 :)
나는 아침마다 3km를 뛰는 당신, 언제나 멋지게 자신을 가꾸는 패션러너인 당신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