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는 트랙 위 기관차다. 무동력으로 달리는 객차나 화차를 이끄는 기관차처럼, 무념무상으로 달리는 러너들을 목표로 이끈다. 오늘 풀코스 3시간30분 목표조 바나나 런클럽 기차는 8명 정도였다. 바나나는 길다. 구전동요처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오늘 바나나 런클럽 훈련은 여기 가사에 숨어있다.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인터벌”
오늘 열차는 330조가 가장 뜨겁다. 인터벌 훈련이다.
400m를 빠르게(4:25초 페이스) 100m를 회복(8분 페이스)하며 총 12회 운행한다. 스트레칭과 조깅 20분으로 예열을 마친다. 급발진으로 열차가 고장 날까 봐 두 번의 질주로 예열을 마친다. 스트레칭이 끝났다. 우리를 둘러보시던 연진코치님이 묻는다.
“오늘 몸이 불편하신 분 있나요? 나는 오늘 인터벌 훈련이 불가능해서 조깅이 필요하다 하시는 분?” 가만히 나를 돌아보니, 걱정하는 마음 외엔 너무 멀쩡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런 의미다. ‘혹시 오늘 뛰다가 퍼지면 어쩌죠? 불안한 마음 빼고는 몸은 멀쩡합니다. 코치님.’
완전과 불완전. 딱 한 글자 차이가 인터벌의 난이도를 가른다.
오늘은 불완전해도 되는, 아니 불완전해야 하는 날이다. 완전한 내가 될 필요가 없는 감사한 날. 인터벌에서 불완전은 불안하다. 삶에서 불안전은 불안하다.
코치님의 당부를 마음에 새긴다. 빠른 400m는 약간 느려도 되지만, 100m 구간에선 불완전 회복이 포인트다. 오늘 훈련을 불안해야 정상이다. 우리 인생은 불안해야 정상이다. 그래. 마음 편히 불안하게 달리자. 마음 편히 달리자.
매 400m마다 기관차를 바꾸기로 했다. 서로 번갈아서 이끈다. 열차 맨 뒤에서 섰다. 혹시 자기 차례에 속도를 못 맞출까 불안한지 다들 급발진하며 속도를 당긴다. 무심코 던진 돌 하나에 개구리는 휘청인다. 앞에서 조금만 페이스를 당기면 뒤에선 곡소리가 난다.
지금 나는 8차선 주로 맨 뒤에서 달리는 개구리다. 빠른 러너들이 바람을 가르며 스쳐간다. 가끔씩 앞 기관차에서 돌이 날아온다. 처음엔 짱돌처럼 크지만, 조금씩 페이스가 안정되며 작은 돌로 바뀐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내게 속삭인다. ‘나는 황소개구리다. 황소개구리다. 웬만한 돌엔 맞아도 끄떡없다.’
조금씩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긴다. 앞사람이 하나 둘 줄어들더니 어느새 내가 선두에 선다. 마치 토마스 기차처럼. 혹시라도 기차가 늦춰질까 조급해진다. ‘지금 내가 좀 빠른가? 아니 조금 느린가? 그냥 달리자. 달려!’ 어느새 400m를 지나 리딩을 마친다.
뒤를 보니 아우성이다. 이번이 제일 빨랐다고. 이번 돌이 가장 컸다고. 악. 죄인이다. 목표 페이스보다 빠르게 달린 죄. 그 순간은 짜릿하다. 바람을 가르고, 심장은 폭발할 듯 뛰어오른다. 하지만 곧 벌이 찾아온다. 제일 뒤로 밀려나서 다음 주자의 무자비한 스피드에 다시 돌을 피하며 달려간다.
죄와 벌.
다시 뒤에서 벌을 받는다.
또 선두에 나가 죄를 짓고 싶다.
하지만 줄은 길다.
오늘 내 차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인생처럼.
숙명처럼 남은 거리를 묵묵히 달린다.
죄와 벌 사이 어딘가에서, 맛있는 훈련이 끝난다.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인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