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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연필 Sep 10. 2024

1부, 詩절인연 #1

01

*

 가로등 아래 저 짙은 그림자 영락없는 아빠다. 곁으로 다가가 가만히 서니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문다.

  ― 핵교는, 밸 일 없냐?

  ― 불편한 건?

별 일이 있어도 이제는 주절주절 다정하게 얘기 나눌 사이가 아니었기에 끄덕 끄덕 질문을 대강 건너는 게 맞았다. 그러는 사이 준비한 질문이 다 타버렸는지 아빠는 내 주머니 속으로 지폐 몇 장을 밀어 넣었다.

  ― 또 올 텐게.

 적절하지 않은, 부적절한 작별인사를 흘리고 아빠는 아빠의 집으로 사라졌다. 가로등 아래로 일 년 만에 주고받은 짧은 재회가 떨군 흥건한 독백이 봉긋했다. 깜깜한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툭 던져놓고 이불에 안겼다. 까묵 잠이 들었다.


 ― 왜 눈물이 나고 지랄이야!

 뒤척이는 새벽의 정적을 가르고 깜깜한 방으로 낯선 이의 음성이 꽂혔다. 술 따위에 젖지 않은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정체 모를 갈증을 품은 허스키한 보이스는 공중을 뜯는 새의 음성만 같았다. 솟구쳐 올라온 목소리의 주인공을 엿보려 더디게 창을 열었다. 그 순간 벽에 기댄 쓰레기봉투는 쏠린 무게를 가누지 못해 고꾸라졌고, 놀란 고양이 한 마리만이 골목을 가로질렀다.

간밤, 아빠가 스치듯 머물다 간 가로등. 그 아래 들어찬 새벽 어스름 위로 빛이 기다랗게 매달려 있다. 눈물의 출처를 알고 싶어 창을 연 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을 대신 읊어 준 그림자가 궁금했을 뿐이다.

 오래전 그날도 그랬다. 어떤 소리에 끌렸더랬다. 까까머리 같은 논바닥 위로 한 데 섞인 개구리 떼가 군악대처럼 울음을 연주하고 있었다. 낮에 익힌 눈물이 저물녘에 이르자 울음 되어 쏟아지기라도 하는지, 개구리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밤새 울음을 털다 일순간 멈추기를 반복했다.

밤이 가시자 가신 건지, 해가 뜨자 자리를 뜬 건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던 울음은 한바탕 꿈이 되었다. 내 것 아닌데 내 것을 모두 잃은 기분. 허무 혹은 허망이라는 단어로 부족한 어디쯤 나는 멈춰버렸다.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들여다본 논두렁엔 올챙이뿐이었다. 눈물로 가득 찬 올챙이 배가 유일한 단서였다. 가득 찬 눈물이 더는 디딜 곳 없을 때 울음 되어 터지는 순간을 밤이라 부르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어둠의 무렵이 다가오면 녀석들은 부지런히 파문을 쟁였다.


  ― 왜 눈물이 나고 지랄이야!

  ― 왜 눈물이 나고 지랄이야!

 새의 음성을 닮은 아이의 말이 물수제비마냥 내 안을 통통 건너고 또 건넜다. 덕분에 간밤을 뜬눈으로 꼬박 읽었다.



*

― 야! 너 입 안에 뭐야!

― 이 반에 반장인데요.

 책상을 두드리며 웃는 아이들 곁으로 볼에 벌건 물이든 수학이 삐쭉 섰다. 반장이 껌을 뱉는 사이 흐트러진 그림자의 매무새를 고쳐 세운 수학은 수업 시간에 껌 씹는 불량한 학생의 불량한 태도, 건방진 녀석의 애드리브로 인해 안 그래도 찌질한 자아에, 무안해진 자아를 덧대어 맹렬히 짖었다.

 ― 이 자식들이 군기가 빠져가지고! 니들 교과서 다 집어넣어! 오늘 수행 평가다!

 수학은 끝내 어른으로부터 선생으로부터 자신을 지웠고 아이들은 떼 지어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혐오가 담긴 야유를 왜 꼬박꼬박 받고 마는지, 날 때부터 수학은 수학이지 않았을 텐데 덩그러니 쩔쩔매는 투명한 그의 속은 그지없는 안타까움 이다.

 문제는 그곁의 나다. 그럴 때면, 도무지 어른 아닌 어른을 견뎌야 할 때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만의 발작 버튼이 켜지기 때문이다. 자동 반사처럼 역겨움을 따라 몸이 한 템포로 움직인다. 수학처럼 가여운 이의 억지마저 마주하는 날에는 수학 대신 내 곳곳에 부끄럼 발진이 돋는다.

펼쳐 놓은 책을 사정없이 넘기는 둥 수학으로 인한 발작은 날개를 달고 점점 거칠어졌다. 들키지 말아야하는 사명을 잊은 채 돋친 듯 날아올랐다. 초점이 사라지고 있음을 직감한 나는 엄지와 검지가 합을 맞춰 책의 귀퉁이를 사정없이 비벼댔다. 시나브로 책의 귀퉁이가 가붓해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엄지와 검지 사이로 녹아들어 귀퉁이의 흔적마저 감추었다. 부빌 것들이 사라지는 동안 다른 귀퉁이를 찾아 나섰다.


 첫 만남부터 짠했다. 하필이면 새 학기 첫날 첫 교시 첫 만남이 그였다. 회장도 당번도 정해져 있지 않아 똥 싼 바지처럼 대강 대강 엉거주춤 뭉갤 무렵. 수학은 그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분노의 레벨 올리는 일에 성실하게 몰두했다.

  ― 야, 칠판 누가 닦았어. 이게 닦은 거야?

  ― 백묵 어딨어? 어? 백묵 어딨냐고? 왜 말이 없어. 회장 누구야? 백묵 백묵!

  ― 임시가 회장이지, 야 임시 니들 똑바로 안 해!

  ― 수업 종을 언제 쳤는데. 교과서 펴고 앉아있는 놈들이 없어!

 누군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아직 임시까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교과서 중 일부는 못 받았다, 했건만. 간을 빼놓고 다니는 토끼처럼 귀라도 떼 놓고 다니는지 연신 제 말만 휘둘렀다. 앞에 앉은 아이 둘이 쭈뼛쭈뼛 일어나 칠판을 지우고서야 올라간 목청이 한 옥타브 가라앉았다.

재바른 아이 하나는 그 틈에, 일주일에 수학을 몇 번이나 만나야 할는지 헤아려렸다. 아이는 바른 손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들었다. 수학이 볼세라 다른 손으로 가린 채 경매사라도 된 듯 ‘일주일 네 번. 주 네 번.’ 앞뒤 옆 아이들에게 악몽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렇게 진상 수학을 향한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조이고 나자, 불편한 1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렸다. 단 한 시간 만에 수학은 개새끼가 되었고, 학기 첫날 급우들이 한층 각별해질 만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수학이 사라진 교실, 예열된 아이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이라면 2교시는 거저 안타다. 누가 들어와도 어지간히 기본 이상일 테니 말이다. 어느새 다른 반으로 튀어 간 리포터들은 ‘기대하시라 개-븅박두’라며 수학의 인성을 퍼 날랐다. ‘누구든 개새끼가 되는 데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면 좋겠다.’는 찬물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흥건하게 오른 교실의 열기를 식힐 용기도, 딱히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여분으로 펼쳐 둔 공책 귀퉁이만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들킬세라 서둘러 두 페이지를 넘기니 새 귀퉁이가 생겨났다, 감쪽같이.



*

 수학은 느닷없이 수행 평가를 치르고도 도무지 성이 풀리지 않는지, 더 곤란하게 할 거리 어디 없나 궁리했다. 그 꼴이 퍽 짠했다. 다 큰 어른을 가여워하는 건 어쩐지 무례한 일처럼 느껴졌지만 절로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저 답답해하는 것 말고는 딱히 그를 달래거나 멈출 다정한 방법을 알 리가 없다. 그때였다. 궁리가 간절했는지 수학 앞으로 떡하니 건수가 떨어졌다. 삼사 분단 사이를 지나던 수학의 슬리퍼 앞으로 비스듬한 주머니 틈에 걸쳐있던 녀석의 담배가 중심을 잃고 툭 흘러내렸다. 어찌하여 빌런의 꿈은 큰 노력 없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마는가.

― 어이쿠, 맨~솔!

담뱃갑을 집어 드는 수학의 몸짓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 나와! 아니지, 교무실로 와!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 이런 놈들이 있는 반인데 아무렴, 그럼 그렇지. 껌에, 담배에 니들 담임은 이런 거 아냐? 알 턱이 있나. 말랑말랑해서 군기 잡을 줄도 모르니 선생이 선생다워야지 이건 이 모양 이 꼴.

― 아, 씨발! 담배를 피운 것도 아니잖아요! 형이나 아빠 옷 입고 온 거면 어쩔 건데. 수학 90점 아래로는 사람 새끼도 아니라면서! 껌을 씹든 담배를 피우든 사람 아닌 건데, 왜 마음대로 다시 사람 취급하는 거냐고! 그렇게 숨도 안 쉬고 미움받으면 좋은가? 씨발, 아이씨!


  비엔나소시지처럼 제자들을 매달고 다니는 담임과 정반대인 수학은 자격지심을 타진할 일타쌍피의 건수를 제대로 포착한 사냥꾼 같았다. 가여움의 한계치를 넘어섰다. 내게 ‘가엾다’는 말은 일반적인 ‘가여움’과는 조금 다르다. 미워하는 일보다 다른 결의 마음 어디쯤으로 정의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렇게 규정하고 나면 조금 힘든 게 덜했다. 그렇지만 담임까지 걸고넘어지는 건 반칙에 반칙 엄연한 곱빼기 반칙이다.

 그 순간 난 내가 아니었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도발이 되었다. 창창한 지뢰를 제대로 밟은 것이다. 욕에 반말에 ‘미움 받으니 좋냐’는 팩폭까지. 이건 그냥 일 년 아니 이 년이 통으로 망한 거다. 퇴장 각이다. 가방에 교과서를 대충 욱여넣으며 퇴장의 컨셉을 잡아야 했다. 공손하게 나서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씨발, 아이씨!’로 마무리 지은 꽁무니 대사에 그만 불이 붙었다. 잔여 포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가열찬 퇴장뿐이다.


 투다다다닥 쿵쿵 쿵쿵쿵 쾅! -     

 ‘드르륵 쾅 드륵’ 던지듯 힘껏 문을 밀었다. 과한 건 아니함만 못하다. 주체할 수 없는 힘에 닫히려던 문은 힘을 얻어 다시 힘차게 열리고 만 것이다. 입을 다물지 못한 아이들, 버퍼링 걸린 수학은 벌러덩 벌어진 문틈으로 튕겨 나가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해지니 등 뒤로 없던 눈도 생겨났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수학이 떨궈진 체면을 움켜쥐러 한걸음에 달려올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도망이 아닌 당당한 퇴장의 포즈만은 지켜야 한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빠져나오는 동안 종종거리는 마음이 튀어 오를수록 발바닥에 더 힘을 빡 쥐고 묵직하게 걸었다. 속절없이 날뛰는 마음이 머리나 엉덩이에 매달려 있지 않고 속 깊이 들어있음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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