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깡통에 불을 지피던 - '정월대보름' 회고기
달이 안 보인다.
하늘 어디고 스쳐 지나가는 구름 한 점도 없다.
하루 종일 답답하게 하늘이 잔뜩 흐려있더니, 오늘 떠올라야 할 둥근달은 기어이 모습을 감추었다.
올해 유독 빌고 싶은 소원도 많았는데, 아쉽다.
정월 대보름달은 다른 보름달보다 왠지 소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달이다.
차가운 겨울 끝자락,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휘영청 환하게 하늘에 떠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대보름 둥근달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늘 마음속에 품은 소원들을 정리해, 두 눈으로 하염없이 노오란 대보름 둥근달과 눈맞춤을 하며 소원을 빌어왔다.
그래 오늘도 변함없이 달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렸건만, 모습을 감춘 달이 마냥 아쉽고 그립다.
어쨌건 오늘 빌고 싶었던, 머릿속에 정리해 둔 소원들은 갑작 흩날리는 눈비에 함께 날려야 하는 정월 대보름 밤이다.
어릴 적 정월 대보름날이면, 으레 우리 동네는 잔치 분위기였다.
오빠와 동네 남자아이들은 쥐불놀이를 위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깡통들을 챙겨 그 안에 짚불을 태울 채비로 부산했다. 해질 무렵이 되면, 한 곳에 다들 둘러앉아 깡통에 구멍을 뚫고 불을 잘 지피기 위한 온갖 전략들을 구사했다. 깡통에 긴 줄을 달아 빙빙 돌릴 수 있도록 최적의 손잡이 길이를 측정하여 고치고 고치고 뚝딱뚝딱, 머리를 맞대고 완벽하게 쥐불놀이 준비물을 만드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 자, 가자. 다 만들었어. "
누군가가 외치면, 우루루루 오빠와 남자아이들이 강가 옆 들판으로 뛰어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안타깝게도 오빠에겐 나 같은 여동생쯤이야, 나를 좀 챙겨 데려가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세심한 배려 따위는 아예 없었다. 나는 뛰어나가는 오빠와 남자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엉거주춤 궁금증에 뒤따라가 그 불놀이를 멀리서 보아야만 했었다.
드디어 해가 지면, 넓은 들판 한쪽에서 깡통에 불을 지피는 모습들이 보이고, 서로서로 불씨들을 받아 자신의 깡통에 채워 넣던 모습. 채워 넣은 불씨들이 꺼질 새라 빙빙 힘껏 돌리며 즐거움에 들떠 웃던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이야~" 하고 누군가가 크게 외치던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깡통의 불이 빙빙 돌아갈 때마다 크게 원을 그렸고, 어둠 속에서 노랗고 둥글게 빛을 발하던 모습은 어린 내 눈에는 마냥 신기하고, '눈부신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때, 동네 어른들은 누구라 할 거 없이 쥐불놀이 삼매경인 아이들 옆에서 웃으시며, 혹시나 그 불놀이가 잘못되어 들판에 번져 큰 불이 날까 봐 놀이가 끝날 때까지 함께 지켜봐 주시던 기억도 난다.
"그만해라. 이제. 그러다 오줌 싼다."
한껏 신이나 쥐불놀이에 빠져 정신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그만 둘 것을 이렇게 말씀하실 때면, 아니나 다를까 어느 덧 시간은 흘러 달은 휘영청, 하늘 한 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월 대보름 둥근달은 어김없이 하늘에 떠서 우리들을 지켜봐주고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는 대도시에 살다 보니, 모두 아련한 내 마음속 추억이 되어버렸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 마냥 뛰어놀면서 느꼈던 소소한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내 몸 어딘가에 구석구석 쌓여서 '오늘의 나'가 만들어진 것 같다. 잊혀진 지난 추억들이 무심코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온 나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자양분이 되어 그 누구보다 건강한 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나를 키워준 것 같다.
이제는 나도 아이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물려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때로는 책을 한 장이라도 더 읽혀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문제집 한 문제라도 더 풀려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마냥 흔들리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 필요한 것은 <내면의 감성 근육>이 아닌가 한다.
슬픈 것을 보고 슬퍼할 줄 알고, 기쁜 것을 보고 기뻐할 줄 알고, 아픈 것을 보고 같이 아파할 줄 아는 그런 따뜻함이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분명 "자연 속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정월 대보름날이다.
정월 대보름 달빛 아래 펼쳐지는 쥐불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와 같이 하늘의 둥근 달을 보고 일 년에 한 번쯤은 소원을 빌어보는 소박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소박함에서부터 인생의 따뜻함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비록 소원이 이뤄지지는 않는다하더라도 내면의 감성 근육은 쑥쑥 자랄 것이며, 소원이 이뤄지리라는 희망은 가슴에 보름달빛 한 줄기 꽃으로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하늘에 달은 안 보이지만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하늘 속 숨어 있을 달님에게 소원을 빌고 볼 일이다.
"하나, 둘, 셋, ……. 아셨죠? 꼭, 제 소원을 이루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