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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가슴을 키워야 하는 이유

일본 작가들은 야한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다. 별것 아닌 하얀 손, 하얀 다리란 단어도 그들의 펜을 거쳐 약간의 양념만 더해지면 얼마나 야해지는지 모른다. 얼마 전에는 소설 '침묵'으로 알게 된 엔도 슈사쿠의 단편소설들을 읽다가 생각했다. 이 작가가 정말 침묵을 쓴 그 사람이 맞나. 잠자는 시간 빼고 야한 생각만 하는 변태 아닌가. 아니, 활력이 보통 남자들보다 조금 넘치는 정상인이려나. 


4,5편의 소설을 읽었는데 야한 장면 한, 둘은 꼭 들어가 있었다. 적나라한 표현은 없었지만 딱 야릇함이 느껴질 정도의 상황 묘사를 잘했다. 한편으로는 굳이 이런 장면을 넣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베르사유 궁전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흔히 성적인 분야에 있어서 일본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들 한다. 성진국이란 표현도 그래서 생겨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들부터 이렇게 성적인 상상에 미쳐있으니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도대체 그 내용이 무엇이었냐고? 


옛날 프랑스에는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베르사유 궁전에 사는 이들도 그냥 밖에 나가 수풀이나 나무 밑에서 용변을 봤다고 한다. 여성들의 치마가 펑퍼짐하게 펼쳐져 있었던 것은 서서 소변을 볼 때 옷에 묻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음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소설 속 인물은 베르사유 궁전을 간 적이 있는데 정원 나무 밑 흙들을 조금씩 담아왔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변이 스며든 흙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며. 


미쳤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상상력이 이 정도는 돼야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도저히 범접조차 할 수 없는 경지란 생각이 들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내용을 쓴 이가 '침묵'을 쓴 엔도 슈사쿠란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였으면 충격이 덜했을 텐데. 


일본 작가의 성적인 면에 감탄을 해서 그런 것일까.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데 지나치는 여인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가슴이 좀 있는 이들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는 비율이 높았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가슴을 내미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문득 며칠 전 인터넷에서 본 젖꼭지에서 레이저를 쏘는 상상을 하면 바른 자세가 된다는 글이 떠올랐다. 그 글을 읽고 따라 해보는데 뭔가 낯부끄럽기도 하고 이러다 젖꼭지가 길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굳이 레이저를 쏘거나 누군가가 실을 걸어 잡아당긴다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남녀 불문 가슴을 키우면 된다. 남자들도 운동을 해서 가슴근육이 좀 커지면 자연스레 가슴을 내밀고 걷는다. 양팔을 몸통에서 조금 띄워서 덩치를 더 크게 보이게도 하고. 여성들의 경우 의학적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이제는 꼭 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당당한 자세는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의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단, 욕심을 너무 부리면 무게 때문에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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