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Jun 10. 2024

프롤로그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생각을 또렷하게 적는 일조차도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상생활에서 글을 쓸 때처럼 생각을 분명하게 한 다음 표현할 일이 얼마나 있는지요? 단편적인 사실의 열거와 서로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나쁘지 않게 하는 몇 마디 사회생활의 윤활유 정도를 넘어서는, 말 그대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생각을 곱씹는 시간은 의외로 별로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글을 쓰기 힘든 것은 글을 못쓰는 것보다 생각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서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글을 반드시 잘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이 많은 사람은 말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보다는 글을 편하게 쓸 수 있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글보다 말이 쉽다고 해지만 대부분의 대화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다를 떨어도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진전시키기보다 이런저런 사실들을 공유하는 정보 전달의 차원에 머무를 뿐이고, 많이 나가 보았자 내 주장에 동조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정도를 넘지 않습니다.
간혹 보면 혼잣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한 생각은, 이러한 혼잣말과 비슷합니다. 씨앗이 되는 생각이 있어서 글을 쓰는데 그 글이 다시 생각을 정리해 주고 정리된 생각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사람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해서 그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집중하지 않으면 금세 망상으로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결론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올 때쯤이면 이미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게 됩니다. 혹시 차근차근 되짚어간다고 해도 중간에 반드시 비약적인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그런 부분을 글을 쓰면서 따라갑니다. 글을 쓰는 데에는 속도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각도 차근차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연하던 생각이 또렷해지고 글을 쓰면 조용한 곳에서 누군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듯 차분해집니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나 자신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라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나와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대화법에 대한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화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나는 나와의 대화를 '말 더럽게 못하네!'라며 뿌리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답답한 순간이 없을 수는 없지만 남을 상대로 연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나와의 대화가 점점 쉬워진다 하더라도 실제로 남과의 대화에서는 진전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글은 나아지는 것 같아도 실제 대화, 남들과 하는 대화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점진적으로 연습을 하는 것은 바로 결과를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당장 글을 쓰기만 하면 바로 책까지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책들이 많지만 그것은 그저 모든 자기 계발서의 특징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장 글을 써 보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글쓰기 쉬워지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익숙해지는 방법은 있습니다. 글쓰기습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면 일이십 분을 들여 글을 쓰고, 자기 전에 일이십 분을 들여 글을 씁니다. 그러나 글감을 열심히 찾는다고 해서 일상의 모든 것이 글을 쓸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쓰고 싶은 것이 없으면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습관이 되면 쓰지 않을 수 있더라도 쓰지 않고 며칠이 지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게 됩니다. 일상을 짜내는 것의 어려움이 글쓰기의 어려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이지만 저런 불편함은 어쨌든 글을 계속 써나가게 하는 원동력의 한 축이 됩니다.
저는 처음부터 글쓰기를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일상에서 주제를 찾는 일에 더 서툽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는 스스로만이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든 연결이 되면 글이 됩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상을 글의 주제를 찾으려는 눈으로 둘러보는 일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저 같지는 않겠지만 모든 사람이 저와 다를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글을 써 온 과정을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제 글쓰기의 시작은 단순히 책에 긋는 밑줄이었습니다. 글은커녕 생활에서 메모를 습관화한다는 것도 다른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은 다르지만 그 변화는 의도한 것도 아니고 한 번에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30여 년에 걸친 점진적인 변화였습니다. 밑줄을 치는 것부터가 생각을 깊게 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을 건져 내는 것이니까요. 물론 밑줄만 치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히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많습니다. 제가 밑줄 치는 행위에서 저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제가 책에 밑줄을 칠 때는 다음에 다시 읽고 싶어서여서 결국 밑줄 친 부분만 읽기 위해 모두 노트에 옮겨 적었기 때문입니다.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밑줄에서, 브런치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