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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l 01. 2024

활자가 주는 생각, 생활이 주는 생각

밑줄을 그은 글들을 옮겨 적는 일은 책을 다시 읽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옮겨 적다가 밑줄을 긋지 않은 다른 문장을 추가로 적는 일도 있고 밑줄을 그었지만 막상 문맥에서 떨어뜨리면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어서, 혹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았지만 생각이 바뀌어서 노트에서는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단순히 밑줄이 있는 페이지를 찾아서 마구 책장을 넘기다가 밑줄이 보이면 그제야 책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노트에 기록하는 단순 작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국은 원래는 책을 서너 번째 읽게 되면 처음 읽을 때보다 내용의 경중이 눈에 보여서 읽는 속도가 약간 빨라지게 되는데 밑줄을 그은 부분을 옮겨 적기 위해서 다시 책을 펼쳤을 때는 책의 마지막까지 읽는데 오히려 조금 더 긴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책을 읽다가 든 생각들을 곁들여 적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었고, 나중에는 생각을 적는 별도의 수첩도 만들게 되었다. 수첩에 생각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서 밑줄을 옮겨 적는 데 들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속도가 빨라진 것이 아니라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정 필요하면 블로그에 비공개 글로 옮겨 적어 보기도 했지만 사실 책을 옮겨 적는다는 작업이 생각을 풀어내어 쓰는 작업의 즐거움만 못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문제가 다시 생겼다. 어떤 책을 읽다가 그 내용으로 인해 든 생각을 수첩에 적고 나면, 그 책을 다시 읽을 때 '지난번에 이러이러한 생각을 했었는데?' 하는 기억이 나더라도 다시 찾기가 힘들었다. 또, 그럴 일은 별로 없기는 했지만 수첩을 다시 읽다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책에서 이러이러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 수준이지 무슨 책의 몇 페이지인지까지 쓰는 일은 드물어서 다시 그 책을, 혹은 정확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어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이왕 밑줄을 그으면서 읽을 거면 비슷한 위치에 생각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밑줄을 옮겨 적는 노트에 생각을 함께 적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 결론을 냈다. 중요하지 않은 문장이지만 생각만 기록할 필요가 있을 경우, 그 생각 때문에 문단을 통째로 옮겨 적어야 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에서 비슷한 위치에 그냥 직접 적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결론을 놓고 보면 간단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 결론을 내는 데는 나름 긴 고민이 있었다. 무엇보다 전에는 책에 밑줄 외에 어떤 표시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밑줄도 빌린 책에는 그을 수 없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 밑줄을 그을 곳을 옮겨 적는 것이었는데 책에 뭔가를 쓴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그 책들을 구입한다는 전제 하에만 성립되는 이야기이고, 빌린 책은 생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몇 번이고 읽을 책은 결국 구입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었다. 서너 번 읽어 가면서 같은 생각이 들어 무언가를 적어 두면 그다음에 읽을 때까지는 당연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두 달 후, 그 책의 내용이 다시 약간 낯설어졌을 때 읽으면 그런 생각을 적어둔 게 재미있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오자를 수정하고 가장자리에 '역시나 또 오자가 나왔다.'라는 메모만 남겨도 '내가 참 열심히 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것을 적은 기억을 까맣게 잊은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적혀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빼도 박도 할 수 없이 내 글씨체에 내 글씨의 굵기에 내 말투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쓴 것이고 말이다.

책에 메모하는 원칙


책에 하는 메모는 정민 교수님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엄밀히 말해 고서에 남아 있는 메모에 관한 책을 읽고 참고한 것이라서 고전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책의 가장자리에 자신 의견을 적거나, 문장이 이상한 경우 자신만의 해석을 주석으로 기록한 이야기들인데, 그 책의 참고 사진들을 보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들은 직접 메모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네댓 번 읽으면서 그 책에서 예로 든 사진들을 몇 번이고 고민하며 살펴본 끝에 정한 것으로, 그 뒤로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잘 지키고 있으니 원칙이라고는 하는 것뿐, 사실 원칙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의 규칙으로 지켜 나가 보니 다음에 그 책을 읽을 때도 딱히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참고하고 싶을 때는 일부러 넘기거나 하면서 책이 읽히는 흐름을 끊지도 않았다는 장점은 확인했다.
내가 책에 메모하는 다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이 위에 직접 쓴다.
책에 메모를 남길 때는 반드시 책의 해당 페이지에 직접 쓴다. 특히 포스트잇으로 작성해서 붙일 경우에는 임시로 표시하는 경우가 아니면 결국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언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다시는 읽지 않아서 포스트잇이 떨어질 일이 없다면 메모를 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책에 직접 쓰거나 정 안되면 써서 풀로 붙이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종이에 울퉁불퉁하게 앞뒤 페이지에 눌린 흔적이 남을 수 있어서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수정 불가능한 메모를 하게 되면 메모를 한 번 하더라도 생각을 더 해보고 쓰게 된다. 그리고 글씨가 틀리면 수정 테이프로 고치더라도 표시가 나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 메모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까다롭게 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라. 내가 볼펜을 대는 순간 그 책은 세상에 한 권 밖에 없는 책이 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책값을 떨어뜨리는 낙인이기도 하고 나에게 특별한 책이 되는 인장이 되기도 한다. 전자라면 그런 일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하고 후자라면 더 신중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페이지에 직접 써야 하기 때문에 나는 0.28mm짜리 볼펜을 선호한다. 굵은 볼펜으로는 같은 공간에 훨씬 적은 양의 내용만 메모할 수 있고 번지기도 쉽다. 샤프도 한때는 선호했지만 종이에 따라 너무 결과물이 달라서 책마다 다른 사람이 메모한 것처럼 들쭉날쭉해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특히 요즘은 비닐코팅된 책이 많아서 조금 굵은 샤프심을 사용할 경우 번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볼펜심을 0.28mm를 선택한 데에도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0.5mm 볼펜을 사용하다가 점차 3.8mm에서 다시 0.28mm로 넘어온 것뿐인데, 단순히 좀 더 가는 심을 찾아다녔기 때문이었다. 간혹 아트박스나 서점의 문구 코너를 방문하게 되면 살펴보는 것은 단 하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볼펜보다 가는 심이 있는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저보다 가는 심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덕분에 한동안 책에 작성한 메모는 웬만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글자가 더 커지거나 작아지기만 해도 아마도 시기를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샤프로 메모했던 책들은 모두 버렸다. 이사를 다니면서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둘째, 손으로 쓴다.

바로 전에 포스트잇은 절대 안 된다고 썼지만 솔직히 작성해서 떨어지지 않게 풀로 붙이는 것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따로 작성해서 붙이게 되면 점점 큰 종이를 일부만 붙이고 나머지는 접어서 보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는데, 절대 안 될 일이다. 몇 번 접고 나면 찢어져 버리기 쉽기도 하지만 그렇게 덕지덕지 붙은 메모는 특히 본문보다 길어 보이는 메모는 다시 읽지 않는다고 보아도 된다. 학술 서적이어서 앞으로 수없이 보아야 할 책이라면 어차피 일반적인 독서의 범주가 아니니 예외이다. 그건 단순히 상념을 적는 게 아니라 필기에 가까운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여백보다 큰 종이에 기록을 해서 붙이게 되면 긴 내용보다 더 치명적인 유혹이 바로 작은 글씨로 인쇄해서 붙이고 싶은 욕구이다. 그런 건 어차피 자기만의 방식일 테니 무슨 부작용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메모의 목적이 뭔가 정보를 가득 담기 위해서라거나 주석을 달기 위해서, 혹은 보기에 공부한 것처럼 보이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이상은 글자를 '때려 넣겠다는' 욕구를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여백에 하는 메모는 완성품으로 인쇄되어 나온 초기 버전의 책과 다른, '내가' 덧붙인 아이디어가 있는 버전이라는 뜻에서 손글씨로 적는 것을 추천한다. 글씨가 이상해서 나중에 알아보기 힘들 것 같으면 글씨 연습을 하라. 이상한 글씨라도 자기만 알아보면 그만 아닌가? 내가 나중에 펼쳤을 때 알아볼 정도만 되도록 연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내 경우에는 한동안 수첩에 글을 쓰면서 각 글자가 사각형 모양으로 틀이 잡혀서 각각의 글씨만 보면 절대 잘 쓴 글씨가 아니지만 다 써 놓고 보면 균형이 잡혀 보이는 그런 글씨였다. 페이지 중간에는 밑줄이 있고 위아래 여백에는 차분한 손글씨가 있는, 그런 책은 사실 보기에도 정갈하다.


셋째, 다른 페이지를 보아야 하는 것은 빼먹지 말고 반드시 표시한다.
몇 번 읽고 보니 80페이지에서 본 것 같은 내용이 250페이지에 또 나온다면? 그러면 반드시 앞으로 가서 찾아보아야 한다. 기억이 분명히 맞을 것이다. 80페이지에 가 보니 틀렸다면 70페이지 정도로 가서 읽어 나간다. 아마 90페이지 정도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읽어 본 듯한 기억'은 거의 항상 맞다. 특히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라고 하면서 간단하게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그 내용이 250페이지에 자세히 나온다면 다른 메모는 하지 않더라도 그게 250페이지라는 정보는 반드시 써 주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메모의 시작이다. 색인의 역할. 내 메모 중 대부분 생각들이겠지만 정보가 1% 들어간다면, 그 1%는 다른 페이지를 참고하라는 색인일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다른 책의 몇 페이지인지도 메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건 특정한 주제에 대한 책을 몰아서 읽을 때의 이야기고 단순히 취미로 읽으면서는 그 책에서만 앞뒤로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 이것은 막상 적어둘 때는 모르겠지만, 혹시 써 놓지 않고 그 책을 나중에도 몇 번을 더 읽는다고 하면, 그때마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가 이미 적혀 있으면, 그리고 그 메모를 보고 간 그 페이지에도 '80페이지에서 언급' 같은 메모가 있다면 얼마든지 자세한 설명을 읽고 다시 앞으로 갈 수 있다. 한 마디로 수동 하이퍼링크를 만드는 일이다. 빌린 책이 아니고, 버릴 것도 아니고 팔지도 않을 내 책이라면 이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미래의 나에게만 살짝 말해주는 정보인 셈이다.  


넷째, 페이지의 위아래 여백만 사용한다.
메모를 하다 보면 밑줄 가까운 곳에 메모를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쉽다. 예를 들어 위쪽에 밑줄을 그으면 위쪽 여백에 메모를 하고 아래쪽에 메모를 하면 아래 여백에 메모를 하듯이 중간쯤에 밑줄을 긋고 생각을 적을 때는 양쪽 여백에도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것은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다른 원칙들이 나오기 전, 그러니까 정민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메모의 예시들을 읽으면서 이미 양쪽 여백에 쓴 글들은 가독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원래 인쇄된 글들을 읽는 것도 상당히 방해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눈은 글에 집중해서 읽게 되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순식간에 눈에 담으며 속으로 읽어 나가는데, 줄의 오른쪽 끝에서는 임시 저장을 해서 순식간에 다음 줄 첫 번째 글자와 만나 이어 붙이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오른쪽 끝이나 왼쪽 끝에 다른 글자가 있으면 임시 저장한 글자나 단어에 뭔가를 자꾸 붙이게 된다. 혹은 그것을 헷갈리지 않으려는 필요 없는 노력이 들어가서 임시적인 기억이 아니라 문장을 읽어 나가는 속도마저 저하시키는 하나의 생각 덩어리가 되기 쉽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메모하는 사람 나름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해서 단 한 번도 옆에 메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좋지 않다는 결과는 얻지 못했으니까. 막상 써 놓고 보면 손글씨라는 것을 당연히 알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여백의 메모는 문단이 끝나고 눈이 한숨 돌릴 때, 관심을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가치만 있다고 생각하지, 반드시 그 책을 다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남긴 메모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일어난 내 생각일 뿐이어서, 책을 다 읽고 그 메모만 따로 읽어도 그다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거나 할 일은 없다.


다섯째, 페이지를 나누어 3단 정도로 쓴다.
메모는 본문과 엄연히 다르다. 손글씨이기도 하지만, 빨리빨리 읽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보통은 간단한 메모이겠지만 내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손글씨 특성상 페이지 전체에 꽉 차도록 줄줄이 써서는 오히려 읽히지 않았다. 메모 하나가 페이지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한두 줄은 차지한다고 할 때, 만약 위쪽 여백에 다섯 가지 메모를 남긴다면, 그 다섯 가지가 모두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옛날의 고서에 남아 있었다는 주석에서 이미 예시를 보였다. 그 주석들은 본문과 관계없이 몇 단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었다. 단 구분과 글씨 크기 덕분에 본문과 다른 기록이라는 것이 그 글을 읽을 수 없는 나에게조차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세 단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페이지를 가로로 1/3씩 나누어 메모를 한다. 반드시 종이를 접거나 줄을 그어서 표시할 필요는 없다. 단과 단 사이를 살짝 띄워 주기만 하면 줄을 정확히 지키기 힘든 손글씨 특성상 옆줄과 이어진다고 착각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메모를 하더라도 1/3만 쓰고 줄을 넘겨서 두세 줄이 되도록 써야 한다. 그렇게 두세 줄이 길게 쓴 한 줄보다 읽기도 쉽고 본문과도 헷갈리지 않는다. 본문과 나눈다는 점에서 2단도, 4단도 고민을 해 보았지만, 4단은 문단의 폭이 너무 짧아서 쓰다 보면 단어를 모두 쪼개야 하기 일쑤였고 2단은 너무 어중간해서 2단 정도라고 생각하고 자르려고 해도 3단 정도의 길이밖에 안 쓰게 되었다.

이런 원칙을 세워서 여백에 글을 썼다. 단지 내 경험일 뿐이지만 지금도 여백에 메모가 있는 책을 읽으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기억뿐 아니라 나만의 책, 정돈된 손글씨들이 있는 페이지들이 마치 내가 온다고 사열이라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메모를 읽으면 메모를 남길 때 내가 했던 생각들이 다시 생각날 때가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그럴 때면 다시 책을 편 채로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책에 대한 생각은 책으로, 나머지는 수첩으로


처음에는 책에 0.5mm짜리 볼펜으로 메모를 했다. 그렇게 3단으로 글을 쓰다 보면 메모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 샤프로 글씨를 쓴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초기 한두 권 외에는 바로 볼펜으로 넘어왔는데, 샤프로 글을 쓰면 종이가 눌려서 글씨가 새겨지듯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개로 지우기 쉽고 지우지 않아도 번지기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수첩에는 샤프로 글을 쓰고는 했다. 그 이후의 수첩을 보면 만년필, 볼펜, 샤프 등이 골고루 나온다. 아직까지 정착을 하지 못하고 이어진 게 오륙 년 된다. 0.5mm 볼펜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계속 그랬다.
책에 대한 생각을 제외한 글들만 쓰게 되면서 다시 밑줄을 베껴 쓰는 일도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밑줄 노트가 비어 있다. 책에 대한 생각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 어떤 부분을 읽다가 '이러이러한 부분을 읽으니 이러이러한 일이 생각난다. 내 생각은...' 같은 글도 더 이상 없다. 대신 간단하게 그런 일도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는 메모만 책에 기록될 뿐이다.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무척 만족스럽다. 무언가를 통해 접한 새로운 지식으로 인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된 것과, 한참 후에, 어쨌든 그런 정보들도 모두 내 안에서 삭고 발효되고 스며든 상태에서 나온 생각들을 구분해서 남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더라도 나는 그것이 그 책을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전에 읽은 다른 책이 내 생각의 방향을 어느 정도 바로잡아 주었을 것이고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타났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두 권으로 설명하면 쉬워 보이지만 살면서 겪 다른 경험들과 수백 권의 책들이 서로 만나 일으키는 화학작용이 어떻게 발현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어쨌거나 생각은 당장 눈앞에서 받아들인 자극 하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그 정보에 대한 생각이라면 그 책에 쓰는 것이 맞고, 그런 게 아니라 변해가는 생각이라거나 내가 그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라면 따로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원점으로


처음에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지만 나중에는 책이 없을 때도 그 문장들을 다시 접하고 싶어 밑줄 노트를 쓰게 되었다. 그렇지만 수첩을 적으면서 내 생각이 많아지고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것도 많아졌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 책의 여백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여백의 메모를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책을 펼쳐야 한다. 그러면 어차피 그 책이 있어야 하니 밑줄도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이 방식의 단점은 밑줄과 메모 모두 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자책이라면 그런 기능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책을 수만 권 읽는 것도 아니고, 읽는다고 해서 전부 메모를 하거나 밑줄을 긋게 되는 게 아니니까 건드린 책은 모두 소장하는 수밖에. 그러니 점점 책꽂이는 커져야 하고, 글을 쓰거나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문득 꺼내서 펼쳐 보고 싶은 책도 많아진다. 그렇게 꺼내서 생각 없이 펼쳤는데 메모가 남아 있으면 본문보다 메모를 먼저 읽어보게 된다. 마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낸 쪽지 같다.
페이지의 여백을 1/3으로 나누어 딱딱 어지는 형식에 가느다란 볼펜을 꼭꼭 세게도 아니고 약하지도 않게 적당히 눌러서 쓴 사각형의 글씨가 마치 간을 건너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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