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가 그에게 "아버지가 누구신가?"하고 물었다. 피에로는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방식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니콜로가 말했다. "그런 아버지의 아들로 이렇게 잘 생긴 외모를 가지고서 라틴어를 모른다면 부끄러워해야만 하네. 그것은 자네에게 아주 훌륭한 장식품이 될 것이니 말이야. 자네가 그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자네는 아무것도 자랑삼을 것이 없을 것이며, 게다가 젊음의 꽃이 시들어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네."... 지금까지의 사치스러운 생활 대신에 그는 밤낮으로 공부를 했고 모든 교양인들과 생각이 높은 정치가들의 친구가 되었다.(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p.268)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책들이 발췌나 감상의 기록도 없이 나를 지나쳐 갔다. 그럴 만한 책이 많기는 했지만 대학 시절 이미 발췌가 이루어지지 않은 책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 발췌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와 별개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면서 내 손으로 옮겨 적을 만한 가치가 있는 문장인가를 고민하던 그 때가 나의 정신이 가장 긴장되고 희열을 책에서 느꼈던 유일한 때였던 듯 싶다. 지나간 책 중 다시 소화할 만한 책을 선정해서 발췌할 이유는 충분하리라 본다. 한 때 모든 책을 한 권당 열 번을 읽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이 같은 부분을 읽을 때 반복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의미심장한 구절, 감명깊은 구절,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 명확하지 않은 구절, 의문이 생기는 구절은 옮겨 적는 편이 나 자신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리라 본다.
무언가 쓰기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음에 읽으면 차분해지는 이런 노트가 아니라 똑바로 드러낼 것은 드러내는 출판물 이야기다.
처음의 목적은 그저 순수한 기록에 있었다.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와 같이, 결국 남기면 남기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교훈으로 그저 기록을 한 것이다. 생각을 남기고 경험을 남긴다. 이것은 부끄러운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후에 눈물을 흘릴 기억이 될 수도 있으며, 결과를 모르고 그저 써내려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난한 작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한 장 종이는 현실이다. 머릿속에만 존재할, 재생 불가능한 기억을 물리적으로 종이에 옮기는 것은, 기록되지 않는 몸짓에 불과한 행동들을 이 세상에 진정으로 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 하나 보고 말 수도 있는 기록에 이처럼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또한 세상에 족적 하나 남기고 싶지만 힘이 없는 한 사람의 눈물이다. 다른 여러 사람의 생에, 이 나라에, 이 세상에 부각되지 못한다면 이 한 권에라도 온전히 새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