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베이징을 출발했다. 평양을 출발한 지 3일째이다. 평양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후 대륙횡단열차를 탔는데, 전염병 사태 전에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가 중간에 폐쇄되는 역들이 생기면서 임시로 한반도 종착역이 평양이 되었던 것이다. 처음 부산 국제역이 생기고 나서도 한동안 일본에서 지하터널로 철도를 연장하고자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아는데 아마도 터널을 뚫었다 해도 이제는 언제 그 역을 사용할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역도 역이지만 공항 등 기본적인 보안 태세가 갖추어져 있어야 할 곳들이 전염병 사태 초기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뚫리면서 다른 나라들, 특히 경제력이 급부상한 미얀마나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곳에서 바다와 육로를 활용한 밀입국의 경유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사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열차에 몸을 싣는 일이 내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연명하는 삶이라면 프랑스에서는 이 정도 모은 돈으로도 충분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많은 돈을 번다 해도 그 돈을 가지고 서울에 그대로 있다가는 내일이라도 바로 노래진 나뭇잎처럼 똑 부러져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기차가 시원하게 달린다. 복도에 나와 창밖을 보는데 승무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복도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었다. 객실 안의 블라인드는 자동으로 내려오는데 복도 쪽은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장이 난 건지 직접 손잡이를 걸어서 끌어내렸다. 방송이 나온다.
"식당칸에 계신 손님들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우리 열차는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실내 흡연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5일 후 우리 열차가 라오스 영토에 진입할 때까지는 가장 뒷칸 공간 이외의 구역에서 흡연 시 과태료가 부과되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중국어, 영어로 차례로 같은 말로 추정되는 방송이 이어졌다. 아마 라오스를 끝으로 더 이상 한국어 방송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열차의 모든 블라인드를 내려서 인공 불빛만으로 온 열차를 완전히 채우게 되자 나는 다시 생각에 접어들었다. 승무원 로봇을 불러 하이네켄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꺼내 새로운 뉴스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물론 특별한 것 없이 계속해서 전염병에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으로만 가득 찼다. 선생님이 갑자기 바뀌었다며 우는 아이들, 회사가 통째로 모든 직원들이 사라져 거래처들이 막막해하는 상황 등 제목만 보아도 어제 뉴스와 별반 다를 게 없네,라고 생각하는데 로봇이 마침 맥주를 가져와 테이블에 유리잔을 놓고 따라주고는 스피커로 승무원이 인사하는 소리를 남기고 나갔다. 맥주를 반 모금 마시고 내다볼 수 없게 블라인드가 베를린 장벽처럼 가로막은 창문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지금 열차 전체의 블라인드를 내렸는데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바로 시체들. 평양에서 부산 구간처럼 시체들이 철로까지 침범해서 여기저기서 썩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열차가 지나가는 곳은 한국이 아니니 어쩌면 아직도 서 있는 시체가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