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책을 주문했다

by 루펠 Rup L Feb 26. 2025

"무슨 책이었지?"
종종 있는 일이다. 책 제목을 내용과 연결시키는 것도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연결시키는 것처럼 유용한 기술이다. 나는 평소에는 그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할 때있다. 그래서 빌렸다가 마음에 들고 앞으로도 종종 읽을 것 같다 싶은 책은 반드시 사다가 책꽂이에 꽂아 넣아야만 한다. 제목과는 매치시키기 힘들다고 해도 그 범위가 내 책장으로 제한되면 모양으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첫 번째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 책이 떠오른 것이다. '그 책'. 표지도 제목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그 책의 생각나는 그 부분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더듬어 가야 한다. 인공물처럼 부자연스러운 인간의 사진에 대한 지루한 설명 두 페이지와 공부에 대한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생각난 건 어딘가에 갇혀 글을 쓴다던 부분이었다.  
그 책에서 그는 글을 던가, 읽었던가, 하얀 방이었나, 그냥 밝은 방이었나, 표지는 검은색이나 밝음인지 하양인지와 대비되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전자책으로 읽고 있지 않았다. '표지'가 검은색으로 기억이 난다면 실물 종이책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하드커버의 감각이 남아 있는, 게다가 하양의 검정의 대비는 내용과 표지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책상과 주변도 새하얬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는데 새하얀 배경이라면 시립도서관밖에 없다. 부천시립도서관에서 원래 책 읽는 곳은 합판으로 만든 옛날 독서실 책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언제인지 마치 카페처럼 인테리어가 바뀌어 있고 새하얀 책상에 환하게 햇빛이 들어 사람에 따라서는 눈부심 때문에 블라인드를 치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는 햇빛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운데 그림자가 페이지를 가위로 오린 것처럼 조각내거나 혹은 그림자를 만드는 나무 같은 것이 계속 움직이 않으면 웬만하면 햇볕 가득한 종이를 보는 것이 좋다. 이제 기억이 난다. 재작년 여름,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아니 사치스럽게 1층 문학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3층으로 걸어 올라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는 토익 공부를 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내가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책과 가방을 그대로 두고 사라졌다가 내가 책을 다 읽고 문을 나설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더 기억나는 건 없나? 갇혀서 글을 쓰는지 책을 읽는지 모르지만 그런 단순한 내용이라는 기억은 어렴풋이 있는데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끝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재미가 없었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았던 것 같은데.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다가 생각이 났으니 일본 작가의 책이 맞나 하고 순간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작가의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를 도서관의 하얀 책상에 올려놓고 읽은 건 공기가 이미 덥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그날 이후의 가을인지 전의 봄인지 몰라도 적어도 그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 뭐가 있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고, 나중에 구입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도서관 안에서 읽을 거라서 따로 대출 신청을 하지 않았을 테니 답답해도 할 수 없다. 그래도 혹시 몰라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로그인했지만 역시나 대출 이력은 잡히지 않는다. 결국 혼자 책을 펴 놓고 허공을 보며 멍하게 있다가 인터넷을 찾아보기로 했다.
구글에 "방에 갇혀서 책을 읽는 내용의 소설"이라고 검색하니 첫 번째 결과에 "<기록실로의 여행>, 폴 오스터"라는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이 떴다. 이건가? 폴 오스터도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긴 하지만 그 사람의 책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일단 클릭을 했다. 아주 울긋불긋한 표지 사진이 나온다. 아마 검은 표지 위에 덧씌운 표지인가 보다. 맞나? 이번에는 이 제목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예스 24의 책 소개. "소설은 한 노인이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나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방에 갇혀 있다는, 스릴러 혹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인 것 같다. 이 책의 서평 중에 <고독의 발명>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었는데 이 책도 읽어본 것 같다. 조금 전에 생각난 그 내용은 아니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권. <기록실로의 여행>과 <고독의 발명>. 이렇게 구입할 책이 또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글은 질문에 대한 답안지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