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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Jan 12. 2019

서울은 나 없어도

- 고추씨는 언제 사려나

며칠째 눈이 내렸다 바람 불었다 해가 쨍쨍 어라 비 오네 저 눈발 좀 보라지 난리굿이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고추씨를 안사고 방바닥에 누워 버티는 중. 내가 버티는 만큼 농한기는 계속 늘어나 기다리다 못한 고추는 저 혼자 꽃피우고 사과는 저 홀로 열매 맺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오늘은 나가볼까 하고보니 아차차 대보름일세. 도시에서야 땅콩 몇 개 까먹으면 지나가지만 이곳의 대보름은 해마다의 림팩훈련이라 동리별, 농민회, 청년회, 작목반 각 모임별로 벌어지는 윷놀이에 불참했다가는 고추 딸 때 품도 못 얻으리. 하여 고추씨는 다음 주에나 사는 걸로. 

 
고추씨 사는 일을 미루고 서울을 다녀왔다. 서울엔 눈이 내렸다. 가로등 아래 눈 내리는 서울은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듯 보여 택시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모처럼 서울 왔는데 이렇게 보는 서울은 또 이쁘네요.
-안 사시니까 이쁘죠. 
 
눈은 오고 도로는 미끄럽고 차는 막히고 구정물 뒤집어쓴 차는 또 언제 세차하나 싶었을 터. 하회마을 구경 온 관광객더러 초가집에 사는 불편함을 알아달라는 꼴인데, 기사 아저씨, 저두 서울생활 삼십년 끝에 귀농을 했거든요.  
 
누구나 자기의 생이 가장 고되다. 세상은 늘 나만 빼고 지들끼리 쑥덕거리며 돌아가고 나는야 불운의 아이콘. 짜장 시키면 단무지를 빼먹고 단무지를 가져오면 젓가락이 없는 참 아름다운 인생. 내가 진 쌀 한가마니만 무겁고 저 놈 진 가마니 속엔 솜이 들었을텐데..... 싶다가도 이렇게 날이 궂고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찬밥덩이 같은 젖은 무언가가 저렇게 풀풀 날리면 또 생각하는 거지.  
 
-물 먹은 솜이야 오죽하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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