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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May 08. 2024

이민 말고 귀촌

(4) 뭘 먹고살까

이쯤에서는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골에서는 어떻게 먹고살까.


사실 난 프리랜서이고, 재택근무를 한다. 경제적으로만 보자면 시골 생활에 최적화되었다고도 하겠다. (실질적으로는 최적화라고 할 수 없는 게, 늘 컴퓨터 붙잡고 있느라 시골의 자연을 만끽하기 어렵다.) 그래도 시골에서의 생계에 대해 언급할 엄두를 낸 것은, 지금에 이르는 과정에서 여러 일을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귀촌했다. 그 말인즉, 경제활동에 관한 구체적 계획 없이 시골 백수가 됐다는 거다. 어떻게든 될 거란 대책 없는 낙관적 태도가 토대였고, 급하면 농사 노동력이라도 제공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패기가 불씨였다.


귀촌 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사서 보조 모집 공고를 보았다. 근무 시간이 길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로 하기에 딱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시골에는 사람이 부족하다. 그래서 법적으로 자격증이 필요한 직종을 제외하면, 스펙 없이도 채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했던 사서 보조 일은 말이 사서 보조지, 실질적으로 독서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는 준사서 정도의 업무를 담당했다. 서울이었다면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지도, 사서 자격증도 없는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업무였다. 일을 하면서 사서 지원자가 없어 자격증이 필요조건이 아닌 사서 보조를 구인한 것이라는 사측의 사정을 들었다. 서울에서 아주 멀지 않은 시골이었는데도 서울과 사정이 판이하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나는 번역을 시작했지만, 수입이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인터넷 모니터링 업무를 병행하기도 했고, 공공기관의 기간제 업무를 보기도 했으며, 학원 강사 일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골에서 생계를 꾸리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 시골은 사람이 부족하다. 그래서 기술, 자격 등을 갖춘 경우라면 도시보다 일을 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기술이 없더라도 공공기관 일자리 역시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카페, 편의점, 식당, 술집 등,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 넘쳐 나는 알바 자리는 드물다. 내가 직접 해 본 적은 없지만 수확철에 밭일을 도울 일용직은 늘 구인 상태라고 들었다.


물론, 귀촌을 하면서 이런 불안정한 임시직을 노리는 경우는 없을 거다. 그러나 시골은 정규직 자리가 많지 않다. 큰 기업이 적으니 당연한 얘기다. 자영업도 만만히 볼 수 없다. 시골에서의 자영업은 도심지보다 리스크가 크다. 인구가 많지 않다는 건 수요가 적다는 뜻이다. 도시처럼 붐비는 식당이나 카페는 거의 없다. 업종을 다각화하거나 인터넷 판매 등 판매 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수입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지가 뭐냐고?


전문 기술이 있다면, 시골 살이 수월하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사업 수완이 있다면, 시골 살이 전망 있다.

기술도 없고, 사업할 생각도 없으며, 큰 욕심 안 부리고 최소한의 돈만 벌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면, 그 정도는 가능하다.


시골은 큰돈 벌기 어려운 대신, 적게 쓰며 살 수 있다.


집값이 싼 건 다들 알 거다. 식당, 유흥시설 등의 물가도 싼 편이다. 필요하지 않고 품질도 낮은데 소비 욕구만 불러일으키는 싸구려 소비재 전시를 길거리에서 마주하지 않을 수 있어 줄이는 비용도 적잖다. 채소, 육류, 곡류, 가공품 등 식재료는 도시보다 싸다고 할 수 없지만, 채소와 육류의 품질만큼은 도시보다 압도적으로 좋다. 비용은 낮추고 삶의 질은 올리는 생활이 가능한 거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연봉 1억 4천 뉴요커의 삶이란 글을 보았다. 저 연봉으로도 월세, 교통비, 식비 제하면 남는 게 없다는 글로, 여러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며 꽤 이슈가 되었는데, 지금 들기에 좋은 예시인 듯하다.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유럽 쪽은 세금, 영미 쪽은 주거비가 상당하다. 그래서 많이 벌어도 많이 나가고 남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GDP가 놓은 국가의 국민에게 급여가 더 낮은 서울에서 취업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벌이는 적지만 동일한 품질의 서비스 등을 훨씬 더 낮은 가격에 구매·이용할 수 있어 상대적인 삶의 질은 서울이 더 좋다는 대답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시골에서의 삶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이민 전이 귀촌을 한 번 고려해 보길 권하는 이유도 이거다. 어차피 해외도 먹고살 일 걱정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해외처럼 여유롭지만 말이 통하는 곳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경쟁 피해 우리 집 근처까지 터를 옮긴 청개구리, 라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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