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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May 01. 2024

이민 말고 귀촌 (3)

텃세와 이웃 간의 정

텃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권 의식. 또는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이라고 나온다. 귀촌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이 텃세였다. 내가 귀촌을 했던 2010년만 하더라도 아직 귀촌이 흔하지는 않았고, 젊은 사람의 귀촌은 더 희소했다. ~더라 하는 얘기를 가끔 접할 수 있었는데 대개 텃세에 관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가 지냈던 세 곳의 시골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텃세를 느꼈던 적이 없다. 이런 내 경험으로 시골에 텃세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요령을 얘기해 보고자 할 뿐이다.


염려스러운 마음에 덧붙이자면,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세상에 1%의 나쁜 사람이 있다면 각 소도시에는 몇 백, 몇 천의 나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수도권에는 수십 만의 나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소수의 원주민들은 텃세라는 보편적 개념으로 포섭하지 않으려 한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이 나쁜 거고, 피해자는 운이 나쁜 거다.


나는 시골 사람이 텃세를 부린다면, 즉 그 어떤 특권 의식을 갖는다면, 그것은 그 마을에 대한 지식과 기여도, 그리고 그 마을의 주 업종인 농사 등에 관해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에 따라 우선 어촌계처럼 경제적 공동체가 구성된 마을, 또는 도로가 확충되어 근 몇 년 내에 크게 개발된 마을은 이사 들어오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으리라는 게 내 예상이었다. 다음으로 농사든, 목축이든, 마을 사람들이 잘 아는 것을 하려고 하면 참견을 받을 거라 추측했다. 이를 근거로 귀촌지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 요소를 결정하였다.



는 집이 있는 부지와 닿는 도로가 국유지일 것. 시골에는 도로가 사유지인 곳이 많다. 도로화 된 이상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과 분쟁 가능성이 있는 곳에 리스크를 안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는 마을 발전 수준이 필요하다면 내가 부담할 만큼의 기여금으로 타협이 가능할 것. 어촌계처럼 애초에 부담금을 안고 들어가야 할 가능성이 큰 곳은 피했다. 지자체 투자를 받은 마을 사업이 있거나 근자에 개발이 이루어진 마을도 피했다. 그 외의 경우라면 만약 주민회의 측에서 일정 금액을 요구한다 해도 내가 타협을 통해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초기에 거주한 두 곳은 임차계약으로 입주한 것이었기에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그 어떤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 지금 내가 사는 마을도 마찬가지. 이곳에서 나는 불합리한 요구는 물론, 애초에 그 어떤 요구도 받은 적이 없다. (남편이 젊다는 이유로 체육회장직 제안을 받은 적은 있다. 정착 초기라 부담스러워서 조심스레 사양했다)


는 농사를 짓지 않을 것. 농사를 지으면 마을 분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혹은 갑갑한 심정으로 조언을 건네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분들은 지난 수십 년간 농사가 주업이었고, 전문가이니까. 도움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보답해야 해서 부담스럽고, 내 개인적 시간을 침해받을 가능성이 생긴다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난 그 어떤 간섭도 받은 적이 없고, 외려 철마다 제철 좋은 재료를 얻어 먹기만 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애초에 농사를 목적으로 한 귀농의 경우 전혀 해당 사항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귀농이라면 농법이 다르다고 해서 현지인의 조언을 백안시하지 않고, 현지의 토질을 잘 아는 전문가의 배려라 여기는 마음가짐만 가지면 될 듯하다.


, 마을 가장 안쪽에 있을 것. 마을 초입에 있으면 많은 분들이 오가며 안부를 궁금해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마을 안쪽에 위치한 부지를 찾았다.


다섯 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생각을 가질 것. 우리는 이사하기 전 마을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하며 인사를 드렸고, 얼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드렸으며, 지금도 철마다 안부를 묻는 느낌으로 이웃집 서너 곳과 마을회관에 소소한 간식을 사다 드린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고 도울 방도를 찾고, 결혼과 장례 등에 부조도 한다. 이것저것 적었지만 대단한 게 아니다. 직장 동료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정도만을 할 뿐이다. 촌 사람이 다 된 건지, 이제는 도시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 간에 이 정도도 나누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유독 좋으신 분들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시골 마을 어르신들도 대부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믿는다. 어르신들은 마을에 젊은 사람이 보이는 것만으로 기뻐하신다. 도시에 사는 각자의 자식들이 있기에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 문화를 아예 모르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도리만 한다면 어르신들은 그럭저럭 좋게 봐 주실 것이다.


텃세는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직업적으로도 존재하고, 심지어 학교 선후배 간에도, 전학생과 기존 학생 간에도 존재한다. 해외라고 없겠는가. (거기에서는 심지어 인종차별까지 감수해야 한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텃세는 존재한다. 텃세 자체는 좋다고 할 수 없어 지양해야 하겠지만, 시골 텃세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마당에서 키운 애플민트를 띄워 모히토를 만들어 먹는다. 애플민트 같은 허브는 마을 어르신들이 신기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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