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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Aug 07. 2024

이민 말고 귀촌 (16)

누구나 아는 이야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걸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욕망이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기준이 사람마다 완전히 같을 순 없겠지마는, 쿵쿵거리는 소리에 신경 곤두서고, 내 한 몸 뉘일 보금자리에서조차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여 가슴 졸이고, 조각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벽만 보고 사는 것을 사람답게 산다고 할 사람은 적을 것이다. 난 28년 간 도시에서 살며 그러한 주거환경을 숱하게 접했다. 그런 곳에서 자취한 적이 있고, 그러한 친구 집을 본 적이 있다.


사람답게 산다는 표현에는 집 외에도 많은 게 포함된다. 나는 자연이 좋았고, 음악이 좋았다. 여유롭게 살고 싶었고 한량이 되고 싶었다. 새소리, 곤충 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과 나뭇가지 몸 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깨끗한 하늘, 짙은 어둠과 반짝이는 별, 친절한 이웃의 인사와 웃음, 느긋한 여유, 바람에 흩날리는 음악 소리와 집안을 활보하는 자유분방한 발소리, 편하게 터뜨리는 웃음과 밤늦게까지 목청껏 떠들어대는 수다, 난 그런 게 좋았고, 그런 게 필요했으며, 그런 걸 누리기 위해 귀촌했다.


한때 해외에서의 삶을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네 시골에 대한 편견 때문이기도 했고, 해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할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있을 거란 생각에 이 글을 썼다. 귀촌에 관한 책과 글은 넘쳐난다. 이민에 대한 건 더 많다. 그런데 귀촌과 이민의 교집합이 의외로 커서 둘을 나란히 두고 고민해 볼 만하다는 생각은 대체로 하지 않는다. 이민을 고민했던 나는 지금 모국어를 쓰고 원하는 때 쉽게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시골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한다. 나와 다르지 않을 사람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이민 생활이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더 적합한 사람도 많을 거다. 도시 밖에서의 삶이 고역인 사람도 있을 거다. 다만 선입견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시골에서의 삶은 분명히 여러 면에서 번거롭지만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고 평화롭다. 장기하의 노래 제목처럼 30년 가까이 도시에서 살았던 내가 시골에서 정말로 <별일 없이 산다>.



얼마 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에릭>을 보았다. 최종회 절정 부분에서 주인공 빈센트가 집 나간 아들 에드거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무섭지 않은 곳이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그러면서 톨스토이의 문장을 인용한다. "누구나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나 자신을 바꾸고 편안한 집에서 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작은 둥지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 나는 어쩌면 속없이, 너무도 순진하게,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모두가 평화와 여유를 누리며 또 하루를 살아내길 기원한다. 그것이 이민 말고 귀촌을 선택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동안 <이민 말고 귀촌>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더 나아진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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