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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낙 Jul 24. 2024

이민 말고 귀촌 (14)

물에게서 인간에게

사람은 열량을 내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수일을 버틸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나흘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4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강가였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 여부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얼음)의 존재 여부다. 사람은 전기 안 들어오는 곳에선 살아도, 물 없는 곳에선 못 산다. 처얼썩, 처얼썩, 요게 무어야, 오늘은 시골의 물 이야기다.


귀촌 후 첫 번째 살았던 곳과 두 번째 살았던 곳에는 상수도가 깔려 있지 않았다. 물론 이번 집도 매매 당시에는 상수도가 없었으나 이사 전 공사를 통해 상수도 매설을 했다.


상수도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고? 설마 우물물이나 계곡물을 떠다 먹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길 바란다. 연배가 조금 있다면 다들 아시겠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지하수 사용이 꽤 일반적이었다. 나 역시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에서 지하수를 사용했다.


지하수를 써 본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지하수는 상수도와 달리 꽤 좋은 점이 있다. 보통 십 수 미터 아래에서 끌어올리는 지하수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여름엔 미적지근하고 겨울엔 얼음장 같은 상수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염소 냄새가 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지역에 따라 물의 세기도 다른데, 두 번 다 수질이 훌륭해서 그곳에 사는 동안엔 세수만 해도 피부가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점은 지하수의 본질을 알게 된다는 것이랄까. 비가 많이 오면 수전에서 흙탕물이 나온다. 그 순간 깨닫지 아니할 수 없다. 내가 저 앞에 흐르는 계곡물에서 씻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래도 그건 단점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큰 단점은 시설 노후화와 그에 따른 정비 노동이었다. 지하수는 마을 단위로 파는 경우도 있지만, 면적이 넓은 시골은 가가호호 개별 지하수를 파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각 집의 펌프는 저렴하고, 개인이 보수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가물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근처에 벼락이 치면 펌프 전원이 나가곤 했다. 펌프를 묻어둔 곳을 열면 개구리들이 펄쩍펄쩍 뛰며 달려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물함을 연 맨인 블랙이 된 기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툭하면 물이 끊기고, 수시로 펌프를 확인해야 하는 게 지하수의 진정한 단점이었다.


이제는 웬만한 시골에도 대부분 상수도 정비 사업이 시행되어 상수도가 놓였다. 지하수를 써야 하는 집은 많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시골의 물 사용은 도시에 비해 열악하다. 관을 먼 거리까지 끌어와야 하다 보니 중간중간 가압장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시골에 놓이는 가압장이란 게 설비가 그리 훌륭하지 않다 보니, 일 년에 서너 번 천둥번개 심한 날엔 예고 없이 단수가 된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수 복구 후엔 흙탕물이 흘러나와 집 정수 필터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 자, 이거 봐라. 나는 시골의 열악함을 이토록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다들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수질은 좋잖나. 해외 다녀 봤으면 알 거다. 선진국이고 자시고 수질이 엉망인 거. 석회수는 둘째 치고, 샤워기에서 흙탕물 나오는 선진국도 한둘이 아니다.


그래, 도시보다는 열악하다. 그래도 우리나라 물은 깨끗하고 훌륭하다. 거참, 이런 걸로 시골 영업을 하게 될 준 몰랐다. 그러니까 이리 좀 오나라, 여기를 보아라.(해에게서 소년에게 패러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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