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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스넷 Mar 25. 2024

돈의 크기를 알게 하는 법

같은 배속에서 태어났지만 이렇게 달라.

내 유년시절은 유복한 편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해야 할 정도로 가세가 기운적도 있었다. 그 모든 걸 보고 자란 나는, 근검절약을 넘어서서, 나도 모르게 짠순이 근성까지 갖게 했다.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친구가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우리 집에서 하고 싶다는 것.

그 친구네 집도 몇 번 가본 터라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다음 날,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난 네가 되게 못 사는 줄 알았어.


"무슨 말이야`."라며 대꾸하니

하도 '돈 없다, 돈 없다.'라고 입에 달고 살아서 엄청 못 사는 줄 알았다는 것.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달고 산 멘트였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 한테도 이런 소리를 종종 하곤 했다.  둘째와 셋째의 대화 속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나왔다.

4살 된 셋째가 CF에서 나오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6살 먹은 둘째 왈,

"야, 엄마 돈 없어."

'아차!'

나는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엔 절약정신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의도로 이것저것 가르쳤지만, 무의식이 내 의도를 고스란히 희석시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돈 없어'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요즘 시대에서는 내  아이들 기죽이게 만드는  같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도를 찾아보았다.

 '돈의 크기를 쉽게 가늠하는 법'

나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줘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행할 만한 일이 생겼.




주말마다 아이들과 <플로깅>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친정엄마는,

오실 때마다 쓰레기 줍고, 간식 사 먹으라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셨다.

간간히 받은 용돈은 내가 회수?! 하지 않고 아이들 각자 지갑에 모으라고 이야기를 했다.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자기 지갑에 얼마가 모였는가 크게 신경도 안 쓰는 모양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고깃집이 있다.

먹성 좋은 둘째가, 오랜만에 거기서 저녁을 먹고 싶다고 했다.

한번 가면 12만 원 이상은 족히 나오는 곳.

아들 셋에게 이야기했다.

너희들이 모은 돈으로 가자고.


셋이서 지갑을 터니 9만 원이 나왔다.

내기 1만 원을 보태서 총 10장의 만 원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째부터 막내 순으로 돈이 10장이 맞는지 세어보라고 했다.

열심히 장수를 세는 아들들
그만큼이 10만 원이야.
이걸로 크크크 치킨 5번 사 먹을 수 있고
뽀로로주스는 90개 사 먹을 수 있어.

첫째 생일날 한번 더 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아이들이 신나게 먹는 모습을 보니 참 뿌듯하고 기특했다.


"너희들이 모은 돈으로 사 먹는 고기네!"

" 엄마, 아빠가 아들들이 사주는 고기도 먹고 고마워."


라고 표현을 했다.

신랑도 퇴근길에 맞춰, 실로 오랜만에 평일에 외식을 했다.

다 먹고 난 뒤, 가져온 돈을 꺼내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계산서를 건네주며 직접 밥 값을 내보라고 말했다


셋이서 호기롭게 카운터로 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음이 나는지..

나와 신랑을 속으로 더 웃게 만드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 얼마예요?" 아이들이 물었다.

"십이만 오천 원 나왔네요~" 매니저님이 밝게 답했다.

10장의 만원들이 한순간에 매니저 손으로 넘어가니, 아이들이 당황한 것이 역력했다.

10만 원이 넘게 나온 것도 모질라, 돈을 더 보태야 하는 상황.

매니저님은 웃으며 "2만 5천 원 더 줘야 해요."라고 쐐기를 박는다.

여기서 둘째가 기지를 발휘한다.

"2만 5천 원은 아빠가 카드로 낼 거예요."


집 -> 고깃집 지하철 두정거장


내 의도가 정확히 먹혔다.

밥값 한 번으로 아이들은 10만 원이라는 돈의 크기를 느꼈으리라.

밥값뿐만 아니라  돈의 값어치를 느끼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카운터 앞에서 1만 원권 10장이 한방에 없어지는 걸 본 셋째는 살짝 멘붕이 왔는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 왈, "10만원이 한번에 없어져서 놀랬어요."



이날 이후로, 비용에 대해 이해를 빨리 주기 위해 10만 원이라는 기준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클수록 아파트 관리비의 금액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요즘 체감 중이다.

온수비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겨울철 온수비만 12만 원 돈이 나와서 놀랬다.

물놀이를 하거나 뜨근하게 지지듯 샤워하는 걸 금지시키고 있는데, 이때 나는 써먹는다.


저번달 온수비만 12만 원 나왔다.



에피소드.

아이들의 소비성향이 너무 궁금했다.

주변분 말로는 소비성향은 바뀐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이 돈이 생기면 어떻게 쓸까 가 궁금했다.

그래서 각자 자기 돈 1만 원씩 들고 집 앞 편의점 쇼핑하자고 하니 뽑기를 해도 되냐고 묻는다.

네 돈이니 네가 생각하는 대로 쓰는 거다라고 알려주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결론만 말하면,

첫째는 과자, 음료, 뽑기 1판 딱 정하고 그대로 행했다. 잔돈 3천 원 남음

둘째는 뽑기 2판(2천 원) 예산을 먼저 잡고, 나머지는 먹고픈 거를 탈탈 털어 다 썼다. 잔돈 몇 백 원남음

막내는 과자와 젤리를 고르고는, 음료수는 큰 형을 꼬셔서 1+1을 사게 해서 형을 통해 음료수를 챙긴다.

치즈를 가리키며, 얼마냐고 묻는다. 천 원짜리 5장에 필요하다고 하니, 집었던 치즈를 싸게 내려놓는다. 뽑기도 당연할 줄 알았더니, 꾹 참는 녀석. 참다 참다 결국 1판 했다.



어쩜, 이리 다른지.

1만 원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경험이 되었길 바라본다.

그 뒤로는 1만 원 들고 친구들과 키즈카페 가고, 애견카페(2시간에 9천 원+개밥 1천 원) 가는 등 각자 돈을 어떻게 쓸 건지 예산 잡는 모습에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돈이란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게 하는 시간이 되었길 바라보며, 소소함에도 감사할 줄 아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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