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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스넷 Mar 11. 2024

플로깅

담배에 관하여

플로깅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22년 8월 1일이었다.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그전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시작하진 않았다.

뭘 시작하기 앞서, 일단 나는 아이들에게 관련의 것을 노출시킨다.


먼저, 뉴스를 통해서 대학생들이 걷기나 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내용을 접해서 <플로깅>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추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도 애들이랑 해봐야지' 했던 것은 아파트 단지 단톡방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어느 한 아버지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딸과 단지 내 담배꽁초를 줍는 사진이었다.

동대표가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 속 가족들의 뒷모습은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매일 일요일 아침 7시에 나와 단지를 돌며 꽁초를 줍는다는 카톡 내용을 보며, 나도 아이들과 이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너무 기특하고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나도 너희들이랑 해보고 싶어."라고 의도를 비췄다.



아이들은 크게 반응이 없다.

아들들이라서 그런가,  말수도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아들치고는 순하고 점잖은 편에 속하며, 아직까진 잘 따라와 주는 편이다.





이렇게 의도와 의중을 비춰놓으면,

이번주에 시작하자,라고 말을 꺼냈을 때 꼬시기가 좀 더 수월하다.

첫째는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이진 않는다.

둘째와 셋째는 싫다고 울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는 떡밥을 줘야 한다.



예를 들면, 버거킹을 목적지로 가는 길목을 플로깅을 하면서 가는 것.

엄마의 목적인 '플로깅 하기'와 아이들의 목적인' 버거킹에서 간식 사 먹기'라는 두 가지가 잘 맞아떨어진다.

나중에는 아이들에게 '플로깅 하자.'가 아니라 " 오늘은 어디로 코스 잡을 거야?"라고 묻는다.

아이들이 서로 어디로 가자, 여기로 가자 하며 의견을 낸다. 티격태격도 하면서.

목적지가 결정되면, 리드는 아이들이 하게끔 했다.

그래야 꽁초 줍는 것도 시키지 않게 되고, 빨리 줍고 빨리 목적지에 가려고도 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금요일 하교를 마치고 온 첫째가 집에 오자마자 나를 부른다.


"엄마, 내일 플로깅은 저희 학교  앞으로 가야겠어요."

왜냐고 물었다.

"오는 길에 꽁초랑 캔을 봤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첫째의 리드 하에 플로깅을 시작했다.

"역시, 아직도 있네." 하며, 쓰레기를 줍는다.

어제 하굣길에 본 것들인가 보다.


학교 근처 작은 놀이터에 꽁초와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에게 밤엔 놀이터가 위험한 곳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이날 목적지는 배스킨라빈스 31이었다.

종착지에 도착하자마자 수고했다며, 동생들과 나를 안아주는 첫째.

어렸을 때는 감정선이 여자아이들보다 더 세밀해서 걱정이었는데

크니 이렇게 표현해 주는 게 참 고마웠다.




플로깅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길게 나누게 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담배와 담배꽁초에 관한 이야기다.

자녀교육은 타이밍! 내 모토이기도 하다.

이때 나의 생각을 쏟아내고 아이들의 생각도 마구 듣는 시간으로 만든다.


"담배는 절대 멋이 아니야,

나의 폐와 기관지를 썩게 만들면서 멋을 부린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거든."


종종 버려진 담배껍데기를 줍기도 하는데,

그 겉면에 인쇄된  여러 사진들은 나의 말에 충분한 증거가 되어준다.






"담배는 몸에 해로운 것이지만, 누구나 선택은 할 수 있어.

"나중에 친구나, 친한 누군가, 주변사람이 너에게 펴보라고 권한다면

그것 또한 선택이야."


"전 싫어요." 큰 아들이 즉각 대답한다.


"그 친구는 핀다는 선택을 한 거고

너는 너의 생각대로 안 핀다는 선택을 한 거야.

그리고 그걸 상대방에서 말할 수 있어.

거절한다고 해서 절대 미안한 게 아니야."




대부분 플로깅을 하는 시간이 이르진 않다.

그러다 보니 길거리에서 몇몇 어른들의 피드백을 받곤 한다.

이 경험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목격해 보니 플로깅 쭉 하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모차에 2~3살 남짓 아이를 태우고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부부,

우리 아이들이 플로깅을 하며 지나가니, 유모차 머리를 돌려 자신의 자녀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저 형아들 좀 봐, 길에 쓰레기 줍는다. 정말 멋지다 그렇지?"


목적지가 버거킹이었던 날은 어느 할머님이 오시더니

쌈짓돈 천 원을 꺼내면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신다.

내가 손으로 막고 괜찮다고 하니 버럭 화내시면서

"아이참, 쓰레기 줍고,  예뻐서 주고 싶은데 왜 그래~" 하시면서 기어코 애들 손에 손을 쥐어주고 가셨다.


딱 한번 있었는데,

어느 할아버지께서 손가락으로 앞에 페트병을 가리키며

"저것도 줏어요."라고 말씀하신 것.

5리터짜리 봉투라 꽁초 외 캔이나 페트병을 주어 담으면 꽉 차는 날도 있는데, 딱 그날이 그랬다.

봉투가 꽉 차서 안 들어간다고 하자, 표정이 썩 좋지 않으셨던 할아버지.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담배꽁초이지, 페트병은 아니야.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쓰레기를 안 주운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저걸 못주었다고 해서, 할아버지 말씀을 거역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갖거나 혹은 우리의 행동들이 부정할 필요는 없어."





아이들이 결정한 목적지

대부분이 먹는 장소다.


플로깅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성취와

노동 후 먹는 것들은 아주 꿀맛일 거라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그렇게 느꼈길 바라본다.



하기 싫어하는 날도 있고, 입이 대빨 나와서 하는 둥 마는 동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막상 나와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고

신나게 먹으면서 수다를 떤다.


이런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기억은 할까?

여러 가지 생각과 의문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래서 더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그때그때 생각을 기록하곤 했다.


나는 전문 교육학자도 아닌 평범한 주부이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아이들에게 가치관을 심어줬다고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방향을 알려주고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떠밀리거나, 억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주고 싶다.


엄마가 나이를 먹을수록 추위를 너무 타서

2023년 겨울에는 플로깅을 할 엄두를 못 냈지만

2024년, 따스한 봄부터는 다시금 시작해 봐야겠다.


아이들이 더 자라서

엄마의 품을 떠날 려고 준비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함께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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