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6일 차 : 시라오이~도야호 (93Km)
시라오이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반바지와 반팔티를 벗고 오늘도 불편한 빕숏과 자전거 져지로 힘겹게 갈아입었다. 짐을 챙기고 나왔을 때, 로비 문 앞에는 어제 보았던 일본인 대학생들과 서양인 여행객이 모여 있었다. 다 같이 바다를 보러 나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정말 서양인의 붙임성은 대단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건넨 말은 그들이 가로막고 있던 출입구를 지나가기 위해 내뱉은 시니컬한 “실례합니다.”뿐이었다.
자전거에 트렁크백을 매는 동안, 사람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게스트하우스를 유유히 떠났다. 남아있던 사람은 퇴근을 준비하는 야간 점원과 출근하는 오전 근무자, 그리고 내 쓸쓸함뿐이었다. 그래도 출발하면 다 잊히겠지.
며칠 전부터 왼쪽 오금이 쓰라려서 검색해 보니, 안장 높이의 문제라고 나왔다.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공구를 꺼내 안장 나사를 풀었던 그 순간,
“앗.”
하필 안장 나사가 나무바닥과 지면 틈새 사이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빗대어보면 에어팟이 하수구로 빠진 상황 급이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 조그마한 나사를 저기서 어떻게 꺼내지? 꺼내지 못하면 출발조차 할 수 없었다. 점원에게 손전등을 빌려 몸을 수그린 채 나무바닥 아래의 공간을 비추었다. 천만 다행히도 흙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던 작은 안장 나사가 보였다.
문제는 어떻게 꺼내느냐였다. 나뒹굴고 있던 기다란 나뭇가지를 찾아서 좁은 틈새 사이로 쑤셔 넣었다. 그렇게 30여 분의 사투 끝에, 조금씩 조금씩 손이 들어갈 수 있는 위치까지 이동시켜서 간신히 기적적으로 나사를 흙바닥에서 건져 올릴 수 있었다.
‘라이딩만으로도 벅찬데 왜 자꾸 제게 이런 혹독한 시련을 주시나요….’
여정 곳곳에서 온갖 불운이 맹수처럼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만 같았다. 한숨과 함께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붙잡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왔다. 오늘도 영 시작부터 일진이 사납다. 출발이 1시간 늦어졌지만 어쨌든 페달은 밟아야 한다….
먼저 시라오이에서 가까운, 유명 관광지인 노보리베츠로 향했다. 노보리베츠는 홋카이도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특히 ‘지옥온천’으로 대표되는 온천 관광이 유명한 곳이다. 관광지답게 근처에 도착하자, 곳곳에는 온천을 겸한 호텔들과 주차되어 있는 대형 관광버스가 자주 보였다. ‘얼마나 지옥 같길래 지옥온천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라는 기대를 안고, 입구에 도착하고 자전거를 세워둔 뒤 지옥온천으로 걸어갔다.
흐린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유황연기들과 함께, 지옥온천은 마치 벌채나 광석 채취를 위해 깎아지른듯한 광산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어제 방문을 목적으로 검색을 하면서 ‘꼭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다.’라는 리뷰를 읽었는데, 정말 지옥에 왔다는 색다른 기분은… 커녕 그저 썩은 계란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화구들 한가운데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걷는 동안 익숙한 한국어가 굉장히 많이 들려왔다. 감흥은 없지만 오늘날의 현대인답게 강박적으로 휴대폰을 꺼내서 지옥온천을 찍어 담았다. 해야 하는 일을 다 했다는 듯 구경을 마치고 바로 옆의 ‘오유누마 연못’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지옥온천보다 덜 유명하지만 오히려 부글부글 끓고 있던 오묘한 파스텔 빛깔의 오유누마 연못이 내게는 더욱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온천에 발을 담가볼 수 있다는 족탕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내려가자, 계곡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발을 담그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는 굉장히 뜨거울 것 같았지만, 막상 발을 담가보니 너무 미지근해서 적지 않게 실망했다. 라이딩 피로가 싹 가실 정도의 뜨끈한 온천수를 기대했는데. 다른 사람은 하루를 잡아서 와서 놀다 가는 곳을, 2시간 동안 초스피드로 노보리베츠 관광을 마쳤다. 여유를 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나의 여행 방식은 항상 그래왔다.
구글 지도를 보면 일본에는 노란색의 국도와 하얀색의 현도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최우선으로 삼았던 점은 되도록 외진 현도보다는 통행량이 많은 노란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보리베츠에서 내려가는 길은 국도를 타면 왔던 길을 빙 돌아 뒤로 가야 했기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현도를 타기로 했다. 뭐 5킬로 정도야.
확실히 현도는 국도에 비해 통행량이 매우 적어서 자유롭게 라이딩을 하기에 좋았다. 5분에 한 대 정도 차량이 지나다녔다. 가던 도중 곰 주의문 표지판이 보였다. 오늘이 며칠이지? 9월 30일. 그리고 표지판에 있는 목격 날짜는 9월 21일.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사진 찍고 한가하게 시간을 지체를 할 게 아니었다. 차량 하나 없는 현도의 정적은, 나 홀로 넓은 도로를 신나게 라이딩할 수 있도록 깔아 둔 배경음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노보리베츠에서는 무려 4차례나 곰 주의 표지판을 보았다. 외진 길도 아니고 민가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곳에서도 주의문이 있기도 했다. 노보리베츠는 곰이 일상인가? 대체 노보리베츠의 시민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다행히 곰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야 당연한 것이 곰과 마주쳤더라면 아마도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현도가 끝나고 다시 바닷가를 따라가는 국도로 합류했다. 얼마 가지 않아 무로란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무로란에서 한 일이라곤 오금 통증 때문에 드러그스토어에서 파스를 사고 스시를 먹은 게 전부였다.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서 달렸다. 맑던 어제와 다르게 을씨년스러운 흐린 날씨였다. 바다 멀리에 우뚝 솟아있는 커다란 산이 보였다. 며칠 전 오로론 라인에서 보았던 리시리 산이 떠올랐다. 저것도 섬일까? 앱을 켜서 보니 섬이 아니라 내가 내일 가야 할 곳이었다. 섬이 아니라 쭉 육지로 이어져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까마득하게 멀어 보이는데 과연 내가 저기 내일까지 갈 수는 있긴 한 걸까.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도야호로 향했다. 시코쓰호에 너무 감동받은 나머지, 홋카이도에서 유명하다는 또 다른 호수인 도야호도 보고 가자는 마음에 숙소 위치를 도야호 근처로 결정했다. 화구호면 산 위에 있을 테니 힘든 오르막을 올라야 할 것 같아 또 걱정했지만… 도야호로 가는 길은 평지라고 느껴질 정도로 경사가 완만해서 라이딩 중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
어둑어둑해질 때 즈음 도착한 기대했던 도야호는, 시코쓰호와는 달리 아무런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파도가 치고 있던 시코쓰호와는 다르게 잔잔한 도야호의 표면은 어둑해진 저녁 하늘을 흐리멍덩하게 반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예쁘겠지, 하고 얼른 페달을 밟아 2,100엔이라는 가격에 예약했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숙소 위치에는 정말 낡은 나무집 하나가 있었다. 산속에 사는 자연인이 살 법한 숙소의 모습에, 앞에 두고도 ‘도대체 숙소가 어디야?’ 라며 반신반의했는데, ‘INN’이라는 영어단어를 보고 그제야 이곳이 내가 머무를 숙소라는 것을 알았다. 문을 열자 적막한 좁은 복도가 나를 반겼다. 이윽고 주인이 나오더니 조용하게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꼭 침대도 제대로 된 침대가 아니라 병실에서 쓰는 간이침대처럼 생겼는데, 방은 불을 껴도 꽤 어두운 편이었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없고 산 위라서 그런지 인터넷조차 거의 잘 터지지가 않았다.
“그럼 편히 쉬다 가세요.”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해도 모르겠군….’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그런 심정이었다. 음침한 숙소, 터지지 않는 전파, 나 말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손님… 겨우 전파가 터질 때 어머니에게 숙소 위치를 전송했다. 사실 걱정을 하실까 봐서 매일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숙소를 카카오톡으로 한 번씩 보냈었는데, 지금만큼은 꼭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안심이었던 것은 샤워를 하러 가는 도중 주방에서 한 서양인 여성 숙박객과 마주쳤다. 서양인 여성은 남자친구와 함께 온 듯해 보였다. 샤워실 불이 켜지지 않아서 어떻게 켜는지 아는지 간단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엄… 두유 노… 하우 투 턴 온… 라이트?”
1년 공부한 일본어보다 정규교육과정 12년 내내 공부한 영어가 더 입에서 안 나온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들어가기 전 보일러 스위치를 눌러서 물을 데워야만 했고, 샤워실은 콘크리트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들어가서 옷을 벗고 양말을 벗으려는 순간, 샤워실에 있던 뭔가를 밟았다. 발바닥을 보니 양말에 통통한 붉은 실지렁이가 반쯤 내 발에 으깨진 채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으….”
최대한 빨리 샤워를 마치고 나서 쏜살같이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 바깥에는 마치 암막 커튼으로 가려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매일 저녁에 도야호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하는데… 도저히 불꽃놀이를 보러 나갈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전파가 터지지 않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오프라인 저장해 둔 넷플릭스의 영상을 보는 것뿐이었다. 일본으로 올 때 저장해 두었던 드라마 <하츠코이>를 켰다. 10여 분 정도를 봤을까, 시간이 8시인데도 금세 잠이 솔솔 밀려왔다. 그래,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자자. 하지만 불은 무서워서 그대로 켠 채 잠을 청했다. 뭐, 다른 고객도 있는데 자는 동안 아무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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