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종주의 마지막

일본종주 7일 차 : 도야호~하코다테

by 루로우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늦은 것이 아니라 으스스하고 음습한 숙소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듯 숙소에서 나오자, 눈앞에는 푸른 하늘과 숙소를 둘러싼 자연과 숲이 펼쳐졌다. 그 순간 잔잔한 바람과 함께 청아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처마에 매달려 있던 풍경이 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화에서 나올 법한 숲 속의 작은 나무집을 내가 무서워했다니.


어젯밤 어두워지기 전 보았던 도야호는 아침에도 묵묵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수 주변을 따라서 돌아가자 오리배를 타는 선착장도 보이고, 주변에는 온천 마을도 있었다. 하지만 시코쓰호의 강렬한 인상이 너무 커서, 도야호는 내게는 잔잔함 그 자체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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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호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와 이제 해안선을 따라 즐겁게 달릴 수 있는가 싶었는데, 연달아 터널이 나오기 시작했다. 터널을 지나면 또 터널, 또 터널, 또 멀리 보이는 터널… 말 그대로 터널 지옥이었다.


게다가 작은 터널이면 인도와 갓길조차 없어서 차도로 달려야만 했다.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어두운 터널 갓길에서의 라이딩은 마치 목숨을 내놓고 달리는 일 같았다. 터널 입구에서 멈춰 서서는, 바람을 휘몰아치며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어떻게 터널을 지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차량들은 일정한 흐름으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에 따라 한꺼번에 몰려왔다가 한동안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마지막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순간을 노려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아 여러 터널을 통과했다.


게다가 어찌나 오르막이 나오는지. 페달을 세게 밟자 이전부터 아프던 왼쪽 오금의 통증이 다시 재발했다. 하지만 참고 달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주변 시야엔 온통 산을 뒤덮고 있는 숲뿐이었다. 이따금 바다가 산을 끼고 내려다보였지만 경치를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너무 힘들다.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자꾸만 불평불만만 내뱉다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까 그나마 수많은 터널이 뚫려 있던 덕분에 그냥 쭉 올라가기만 할 수 있었구나. 만약 터널이 없었더라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낙타등을 따라 달려야만 했겠지?’ 바로 터널에게 감사하기였다. 지형지물에 감사해 보는 것은 군대에서 억지로 감사일기를 적을 때 빼고는 처음이었다. 휴대폰에게 감사하다, 안경에게 감사하다, 날씨가 맑아서 감사하다… 어쨌든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경사로를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내리막이 나왔다. 오르막은 지옥 같았지만, 내리막을 내지르며 지나가는 차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는 기분은 정말 천국 같다. 오르막을 지나던 시간에 비하면 정말 짧은 찰나같이 끝나지만.


오르막과 터널 구간이 끝나자 이번에는 푹푹 찌는 더위가 나를 괴롭혔다. 10월의 홋카이도인데 아직 이렇게 덥다니. 이른 오전 7시부터 라이딩을 시작했기에, 정말 많이 밟은 것 같은데도 정오밖에 되지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라이딩을 하거나, 지나가다가 가끔 보이는 편의점에 들러 씹을 거리와 에너지 보충을 위한 음료를 사서 그대로 편의점 주차장에 쭈그리고 앉아 쉬곤 했다.


일본 국도를 달리다 보면 정말 많이 보이는 문구 중 하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표어다. 일본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깨끗한 거리인데, 일본의 국도 길가에도 쓰레기들이 정말 많이 버려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주로 음료수 페트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일반쓰레기처럼 봉지째 버려진 쓰레기들도 많았다. 한국이 더 더럽냐, 일본이 더러운 척을 안 하는 것이냐. 그런 쓸데없는 논쟁은 접어두고 인간으로서 이렇게 쓰레기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을 보니 참 안타까웠다.

점점 도로 위에 차량이 많아지고 차선도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어졌다. 시야 저편에 오늘 내내 보았던 나무 숲이 아닌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건물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도착할 것이라는 설렘과 함께 움직이는 두 다리를 독려했다. 정확히 오후 6시, 홋카이도의 마지막 종착점인 하코다테 역에 드디어 도착했다. 일본 종주의 첫 파트라고 할 수 있는 홋카이도 종주가 끝난 것이다.


오늘 라이딩 거리는 160km, 지금까지 달린 날 중 가장 긴 거리였다. 홋카이도 종주 기록을 합산해 보니 무려 760킬로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 거리도 663킬로인데, 한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국토가 넓다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호텔은 저렴한 것 치고 굉장히 깨끗하고 만족스러웠다. 자전거를 아래에 세워두고 2층 로비로 올라가서 체크인을 한 후, 자전거를 어디다 둬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점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굳이 나를 따라 1층까지 내려왔다. “정말 죄송하지만 5층 로비에 두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니, 죄송하다뇨. 건물 안에 들일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절을 하고 감사할 일이었다. 일본 특유의 좁은 엘리베이터에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대며 세로로 세우다시피 해서 올라가야 했지만.


5층의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땀범벅이 된 몸을 먼저 깨끗이 씻었다. 까끌한 호텔 이불에 몸을 파묻고 이대로 쓰러져 있고 싶었다. 하지만 여정 첫 장의 마무리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지, 홋카이도에서 삿포로 다음으로 유명한 도시인 하코다테까지 왔는데. 슬리퍼를 신고 반팔과 반바지를 펄럭이며 호텔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코다테에 가면 꼭 가서 먹어야 한다는 ‘럭키삐에로’는 하코다테에만 있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라고 한다. 일본은 뭔가 홋카이도에만 있는 세이코마트라던지 그 지역에만 있는 지역 한정 프랜차이즈들이 어딜 가든 존재한다. 일부러 타 지역까지 확장하지 않는 건 마케팅의 일환인 걸까?


어쨌든 호텔에서 제일 가까운 지점으로 갔다. 2층에 있는 가게에 올라가자 사람들이 가게 입구까지 줄을 서 있었다. 관광객들이 뒤섞인 줄 끝에 선 로카티와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조차 군대 슬리퍼 차림의 한 남자… 한국인 남자가 내 모습을 보았다면 완전 영락없는 탈영룩이다. 버거는 마치 한국의 흔한 닭강정이 패티로 들어간 것 같은 맛이었다. 감자튀김은 희한하게 도자기 컵에 담겨서 나온다. 음료로는 우롱차가 나오는데, 콜라가 마시고 싶어 종업원에게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니,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우롱차와 치즈 감자튀김, 그리고 닭강정 맛의 버거.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지?


마치 ‘음식을 먹는다’라는 행위 하나에 집중하듯, 담소를 나누며 햄버거를 먹는 손님들 중에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햄버거를 먹어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160킬로나 달려서 그런지 햄버거 세트를 먹었는 데에도 배가 차질 않는 느낌이었다. 다음으로 ‘야키토리벤또’를 먹으러 하세가와 스토어로 향했다. 하코다테의 명물인 야키토리벤또를 파는 하세가와 스토어 역시 하코다테에만 존재하는 프랜차이즈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는 신기하게도 이자카야처럼 따로 야키토리를 굽는 매대가 있었다. 함께 마실 반주도 함께 구입해 호텔로 돌아갔다. 열어보니 흰쌀밥 위에 김 하나가 덮여 있고, 그 위에 흔히 아는 야키토리가 세 개 올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특별함 없이 평범했지만 맛은 꽤 맛있었다. 야키토리면 보통 맥주와 함께 먹는 술안주다 보니 마치 치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어제의 게스트하우스와는 딴판으로 배부르고 등따시게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한국에서는 휴대폰을 보느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지만, 매일 자전거를 타자 밤 10시가 되면 저절로 졸음이 쏟아졌다. 사실 내 몸은 매일 자전거 100킬로 정도의 칼로리는 소모해야 정상적인 사이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전거를 추천해 본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자전거를 매일 타지 않더라도 자전거 종주만큼의 에너지를 쏟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아침에 보았던 도야호



하세가와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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