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홋카이도에서 혼슈로

일본종주 8일 차 : 하코다테~아오모리 (0Km)

by 루로우

오늘로써 홋카이도를 떠난다. 바람이 꽤 강하게 불었지만, 오늘은 자전거를 타지 않기에 걱정할 일이 없었다. 페리 터미널로 가서 하코다테에서 혼슈 최북단의 도시, 아오모리로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이 오늘 일정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이번 종주 일정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혼슈 라이딩의 시작이었다. 다만 시작부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틀 뒤에 3일간 연속으로 비 예보가 있었던 것이다. 국토종주 때 비를 맞으며 라이딩하다가 여러 번 자전거가 미끄러진 적이 있었다. 비 오는 길은 정말 미끄럽다. 게다가 장거리 여행이라 짐도 훨씬 많아 비에 젖으면 곤란한 물건도 많았고, 해외에서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한국보다 더욱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일 어디까지 가서 3일 동안 머물지를 정해야만 했다.




아침 9시 반에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터미널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창구에 가서 아오모리로 가는 티켓을 사고 싶다고 직원에게 이야기하자 작성해야 할 서류를 건네받아 작성했다. 가장 빠른 배가 11시 35분이어서 배를 타려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아침 9시 배는 이미 떠났다. 조금 더 일찍 오면 오자마자 출발할 수 있었을 텐데.


아침도 먹지 않았고 페리에 타서도 4시간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지만, 다시 식당을 찾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그냥 터미널에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여행기를 쓰다 보면 시간은 금방금방 흘러간다. 혼자 앉아 있던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직원이 직접 다가와서는 이제 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자전거를 끌고 페리를 향해 걸어가자 배 앞에 서 있던 또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고 줄 선 차량을 제치고 먼저 페리에 올라탔다. 점원이 밧줄로 자전거를 선박 벽에 고정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큰 배를 타는 것이 얼마 만일까? 마지막으로 배를 탄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거제도에 살아서 배를 자주 타곤 했었는데도 말이다. 추억이 아니라 배를 타는 막연한 상상만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치 어린아이가 배를 처음 탄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배 안에는 신발을 벗고 쉴 수 있는 넓은 공간과 TV, 의자가 있는 작은 로비,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배 안에 샤워실이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지만, 배에 있는 자판기 음식 가격이 사악해서 그냥 아오모리까지 굶기로 했다.


멈춰 있던 창밖 풍경이 서서히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푹 자고 왔는데도, 졸음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승객 모두가 하나같이 짜기라도 한 듯 누워서 잠을 청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웃겼다. 배의 흔들림이 요람 역할이라도 하는 것일까?


와이파이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용 가능 시간은 30분, 총 4회만 접속할 수 있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30분마다 와이파이가 멈추다 보니 번거롭게 재접속을 반복했다. 아오모리까지 4시간인데 와이파이는 2시간밖에 이용하지 못한다니. 너무 쩨쩨하다. 인터넷을 막 쓰지 못하는 외국인이었던 나는 이용 시간을 다 써버린 뒤 자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눈을 뜨자 도착할 시간이 되어 자전거를 가지러 아래로 내려갔다. 아까 탑승할 때는 보이지 않던 대형 화물 트럭이 한가득 배에 승선하고 있어서 놀랐다. 아마 내가 올라탄 후에 다 들어온 차량일 것이다. 직원이 친절하게 고정되어 있던 자전거의 끈을 풀어주었다. 배가 정박한 후에는 차량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서야 자전거를 타고 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바다를 건너 혼슈에 발을 딛자, 기분 탓인지 뭔가 날씨도 분위기도 달라진 것만 같았다. 예약해 둔 호텔과 들르고 싶은 곳은 모두 시내 쪽에 몰려 있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시내 쪽으로 향했다.


사과로 유명한 아오모리 현의 특산품을 판다는 ‘에이팩토리(A-Factory)’가 위치한 아오모리 해변공원에 도착했다. 에이팩토리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온갖 종류의 사과로 만들어진 제품을 팔고 있었다. 사과주스, 사과주, 사과잼뿐만 아니라 사과 아이스크림, 사과젤리, 사과 모형까지… 그래도 아오모리까지 왔으니 적당히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특산품을 위주로 몇 개 바구니에 담아서 계산하고 나왔다.


아까는 한적했던 해변공원에 사람들이 꽤 늘어나 있었다. 선선한 바닷바람과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장소였다. 시내에 예약해 둔 ‘Smile Hotel Aomori’이라는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한 뒤,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 호텔은 정말 고시원만큼이나 좁았다. 방에는 꼭 사무를 볼 수 있는 책상도 있었고, 로비에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보였는데 아마 비즈니스호텔인 듯했다.


적막한 방의 무거운 정적을 깨고자 리모컨을 집어 TV를 켰다. ‘곰은 왜 도심지에?’라는 주제를 다루는 시사 방송이 나왔다. TV를 틀어도 곰 소식이라니. 홋카이도를 벗어나도 또 곰이라고? 온 일본이 곰이다. 한국에 사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감사한 것이었을 줄이야(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데… 한국도 과연 안전할까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숙박 앱을 켜서 내일 머무를 숙소를 살펴보았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모레부터 3일 연속 비 예보였기에 내일은 어디에서 가다가 멈추어야 할지가 최대의 고민이었다. 일본 종주를 오기 전에는 라이딩이 끝나면 평화를 만끽하며 도시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 현실은 피곤에 쩔어 나가지도 못하고 다음 날 이동 동선과 숙소 등을 알아보느라 골머리를 싸매야만 했다.


근처 히로사키라는 도시에 값싼 게스트하우스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100킬로 이상 더 이상 도시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다만 하루 라이딩 거리로는 히로사키에서 아오모리까지의 40킬로는 너무 짧았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40킬로를 달리거나, 180킬로를 달리거나였다. 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군가는 계획이 틀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도 여행의 묘미라고 하던데. 하지만 묘미라고 하기엔 당사자인 나는 너무 괴로웠다. 결국 항상 ‘에라 모르겠다’로 결론이 난다. 일단 내일 결정하기로 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어딜 가나 곰 이야기가 나오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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