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로우 Feb 05. 2024

배를 타고 홋카이도에서 혼슈로

일본종주 8일차 : 하코다테~아오모리

  드디어 홋카이도를 떠나는 날. 바람이 꽤 강하게 불었지만 걱정이 없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탈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정은 하코다테에서 배를 타고, 홋카이도를 떠나 혼슈의 북쪽 끝에 위치한 아오모리에 가는 것이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이번 종주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본격적인 혼슈 라이딩의 시작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날씨 예보였다. 이틀 뒤 3일간 연속 비가 예보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중 라이딩은 미끄러질 확률이 매우 높아 위험했다. 국토종주와는 다르게 짐도 훨씬 많다 보니 젖으면 곤란했다. 그래서 아오모리에서 하루 이동하여, 비가 오는 3일 동안 머무를 도시를 찾아야만 했다.




페리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카운터에 가서 아오모리로 가는 티켓을 사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작성해야 할 서류를 받았다. 어른 1명에 2200엔, 그리고 자전거를 싣는 비용이 추가로 810엔으로 총 3000엔 정도였다. 시간은 9시 반이었는데 가장 빠른 배가 11시 35분이어서 배를 타려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시간 좀 잘 알아보고 올 걸…


아침밥도 먹지 않고 페리에 타서도 4시간 동안 뭘 제대로 먹지 못할 텐데, 하지만 뭘 먹으러 가기엔 거리가 꽤 있어서 그냥 죽치고 앉아 페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은 금방금방 흘러갔다. 어느새 직원이 오더니 이제 타시면 된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바깥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끌고 페리를 향해 걸어가자, 또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페리에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늘어선 차들을 제치고 페리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맡기고 직원이 올라가도 된다고 말했다. 조금 걱정이 되어 직원이 밧줄로 자전거를 벽에 고정시키는 것을 보다가 계단으로 올라갔다.


배를 타는 것이 얼마만일까… 마지막으로 배를 탄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도시에 쭉 살았던 것도 아니라 초등학생 시절 거제도에 살아서 배를 자주 타곤 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배를 타는 막연한 상상만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배를 처음 탄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내부 공간은 손님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쉬는 널찍한 공간과 TV와 의자들이 있는 작은 로비, 그리고 화장실 등이 있었다. 샤워실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지만 자판기 음식 가격들이 사악해서 아오모리까지 가는 동안에도 까짓 거 굶기로 했다.


슬슬 멈춰있던 창 밖 풍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푹 자고 왔는데도 졸음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웃긴 것은 나를 포함한 승객들 모두가 하나같이 누워서 잠을 청한다는 것이었다. 배의 흔들림이 요람 같은 역할이라도 하는 것일까?


페리의 와이파이가 있었지만, 이용 시간은 30분에 총 4회만 접속할 수 있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30분마다 인터넷이 멈춰서 와이파이를 껐다가 켜서 재접속해야 했다.  아오모리까지 걸리는 시간이 4시간인데, 와이파이 이용은 2시간만 준다니… 너무 쩨쩨하군. 인터넷을 마구 쓰지 못하는 외국인이었던 나는 와이파이 이용시간을 다 써버리고는, 다시 자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배에는 일본 자위대의 군인들도 타고 있었다. 군복 색깔을 보니 해군인 듯했다. 나는 전역한 지 1달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이 매우 반가웠다. 입고 있는 옷도 ROKA 티셔츠였다. 저 사람들은 여기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로 가는 한 해협에서 한국 군인(이미 민간인이긴 하지만)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군대에서 들은 바로는 한국과 미국, 일본은 연합국이기 때문에 미국 군인을 만나도 원칙상 계급을 따라야 한다던데. 그렇다면 저 사람들도 내 상관이니까 원칙상 경례를 해야 하는 것인가? ROKA 티셔츠를 자위대들이 알아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내게로의 아무런 관심도 느끼진 못해서 내심 섭섭했다.


아오모리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아까 탑승할 때에는 보이지 않던 대형 화물트럭들이 한가득 배 내부를 꽉 채우고 있어 깜짝 놀랐다. 아마 내가 올라탄 후에 다 들어온 거겠지. 직원이 친절하게 고정되어 있던 자전거의 끈을 풀어주고, 배가 정박한 후 차량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서야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배를 빠져나왔다.


바다를 건너 아오모리에 도착하자 뭔가 날씨도 분위기도 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인가? 도시의 이름처럼 파란 하늘이 혼슈에 도착한 나를 맞이했다(숲 대신 바다였지만). 예약해 둔 호텔과 들르고 싶은 곳들은 모두 시내 쪽에 몰려 있어서 페달을 밟았다. 음, 여기 근처가 내가 찾던 곳 같은데… 여기다. 노란 글씨로 크게 ‘AOMORI’라고 쓰인 도시를 상징하는 포토스팟과, 사과로 유명한 아오모리 특산품들을 판다는 에이팩토리 건물이 있는 해변공원이었다.



뭔가 ‘예술적으로’ 지어진, 빨간 건축물 하나가 에이팩토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건물마저 빨간색이 사과를 상징하는 것일까?라는 아오모리에 온 관광객다운 생각을 해 보았다. 알고 보니 <네부타 박물관 와랏세>라는 곳이다. 네부타는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거대한 탈, 인형 등을 대표로 하는 아오모리의 축제 이름이라고 한다.

에이팩토리에는 당연하겠지만 온갖 종류의 사과로 만들어진 제품을 팔고 있었다. 사과주스, 사과주와 사과잼은 기본. 사과 아이스크림, 사과젤리, 사과 모형… 그래도 아오모리까지 왔는데, 적당히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것들 위주로 몇몇을 바구니에 담아서 계산하고 나왔다.


아오모리의 에이팩토리


아까는 한적했던 해변공원에 사람들이 금세 꽤 늘어 있었다. 평화로운 분위기다. 나는 자전거 드롭바에 에이팩토리에 산 먹을 것들이 담긴 봉지를 걸은 채 다시 이동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체크인할 생각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온 곳은 아오모리 중심 상점가에 있던 ‘오사나이’라는 가정식 가게였다. 리뷰에는 웨이팅이 있다고 했지만 다행히 내가 갔을 때는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쭉 안내를 받아 걸어가면서 잠시 테이블을 둘러본다. 음, 외국인은 아예 보이질 않고 모두 일본인 같다. 이곳은 믿고 먹을만한 맛집인 것 같다.


나는 호타테 정식을 주문했다. 사실 리뷰에서 말하던 ‘호타테’라는 것이 당최 뭔지를-사실 그냥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모른 채 맛있다는 리뷰를 읽고 단순하게 주문한 것이었다. 호타테는 알고 보니 가리비의 일본어였다. 에이 뭐야, 알고 나자 뭔가 싱거워졌다. 계란찜 같은 요리가 밥, 작은 반찬들과 함께 쟁반에 담겨 나왔다. 그러고 보니 요리가 담겨 있는 그릇이 이제야 가리비 모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이게… 무슨 요리지? 가리비 계란찜? 잡탕 같은 건가? 수저를 들고 한 숟갈 떠먹어 보았는데, 굉장히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맛이었다. 마치 가정식이라는 단어보다는… 그냥 ‘일반 가정’에서 버섯이랑 조갯살, 그리고 계란을 풀고 우당탕탕 만든 것 같은, 내가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일본에 온 지 1주일이 넘었지만 아직 로컬 일본인들의 입맛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나와 늘 하던 대로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호텔은 정말 고시원만큼이나 좁았다. 책상도 있는 걸 보니 뭔가 비즈니스 전용 호텔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로비에서 정장 차림의 일본 남성들을 몇 명 보았다. 방에 깔린 무거운 정적을 깨려고 TV를 켰다. ‘곰은 왜 도심지에?’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송이 나왔다. 아니, TV를 틀어도 곰 소식이라니. 홋카이도를 벗어나도 또 곰이라니. 온 일본이 곰이다. 한국에 사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감사한 것이었을 줄이야…(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데… 한국도 과연 안전할까?).


숙소 어플을 켜서 지도에서 다음 숙소를 살펴보았다. 모레부터 3일 연속 비 예보였기에 내일은 어디에서 가다가 멈추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일본에 오기 전, 라이딩이 끝나면 침대에 누워 평화를 만끽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현실은 다음 날 이동 동선과 숙소 등을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히려 생각을 안 해도 되는 라이딩이 더 나은 것만 같았다.


근처 히로사키라는 도시에 값싼 호스텔이 있었다. 히로사키보다 아래로 내려가면 100km 이상 더 이상 도시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 히로사키는 하루 라이딩치 고는 아오모리에서 40km라서 너무 가까웠다. 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누군가는 계획이 틀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도 여행의 묘미라고 하던데. 하지만 묘미라고 하기엔 당사자인 나는 너무 괴롭다. 그 결론은 항상 ‘에라 모르겠다’로 귀결된다. 잠이나 자야겠다.


아오모리에서 묵었던 스마일 호텔
어딜 가나 곰 이야기가 나오는 일본


이전 10화 홋카이도 종주의 마지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