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나를 선뜻 도와준 일본 사람들
짧다면 짧은 3일이었지만 정든 히로사키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이곳 작은 히로사키라는 도시에서 머무르며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참지 못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왜 이렇게 아쉬울까. 느긋하게 좀 더 여유를 즐기며 쉬어갈걸.
게스트하우스 정문을 열고 하늘을 보자, 비가 갠 하늘 위로 한 줄 무지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29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무지개를 본 적이 없었다. 그 후 30살에 간 군대에서 무지개를 인생 처음으로 보았는데, 이렇게 일본에 와서 두 번째 무지개를 바로 보게 되다니. 3일 만에 다시 출발하는 라이딩, 출발부터 기운이 좋았다.
아키타를 100킬로 남겨둔 시점에 기타아키타라는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산길을 지나고 있었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없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오늘 이 정도면 저번 홋카이도처럼 160킬로를 거뜬히 달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에 오르막에도 되려 힘이 나서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맑았지만, 3일간의 호우 탓에 도로 갓길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차도가 아닌 인도 위로 산길을 올랐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에서 속도가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그때였다.
그 순간, 자전거가 붕 뜬것만 같았다. 앞바퀴가 꼭 바나나 껍질을 밟은 것처럼 쓱 미끄러지더니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아, 낙차구나.’ 그 생각을 하던 순간만큼은 시간이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흘렀다. 마치 영화에서 기절했다가 눈을 떴을 때의 연출처럼, 정신을 차리자 흙탕물이 고인 시꺼먼 도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아앗….”
처음 3초 간은 정신이 아득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몸을 처박은 채 가만히 있었다. 도로 위 지나가는 차들은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쳐 갔다. 조금만 더 차도로 튕겨 나갔더라면 앞에서 오는 차량과 충돌했을 수도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구나….’라는 막연한 원망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어차피 내가 주행을 잘못해서 사고가 난 것이었지만, 그저 막연히 누군가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머리가 반사적으로 외치는 일종의 절규였다.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 커다란 해일이 밀려오듯 고통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얼얼하다 못해 사지가 마비가 될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먼저 다친 부위를 확인했다. 오른쪽 팔꿈치와 오른쪽 다리의 살점이 뜯겨나간 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물웅덩이에 처박힌 온몸이 얼굴부터 다리까지, 마치 절반으로 나뉜 듯 흙탕물에 젖어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휴대폰은 왼쪽 주머니에 있었다. 몸이 다친 와중에도 전자기기를 더 소중히 살펴보고 있다니….
넘어진 자전거를 천천히 일으켰다. 인도 위는 젖은 나뭇잎과 썩은 나뭇가지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아마도 내리막에서 속도가 가해지면서 미끌거리는 썩은 나뭇가지에 자전거가 중심을 잃은 것 같았다. 아침에 무지개를 보며 오늘은 운수가 좋다 했더니만… 어쨌든 3,000킬로씩이나 달리는 데 낙차 사고 한 번쯤은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역시 사고에는 경황이 없었다. 사고에 적응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사태를 수습하던 도중 갑자기 나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던, 한 차선 건너편에 있던 검은 차량 한 대가 속도를 늦추더니 차창을 내리고는 내게 외쳤다.
“괜찮아요?! 많이 안 다치셨어요?”
“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 순간만큼은 강한 척이라도 하려는 듯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갑자기 차는 U턴까지 하고서 내 쪽으로 와서는 정차했다. 50대로 보이던 남성과 동승하고 있던 여성 두 명이 내렸다. 비틀대며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많이 안 다쳤어요?”
“차에 휴지 좀 있는지 보고 갖다 줘.”
“아, 저는 정말 괜찮은데… 가셔도 돼요. 정말이에요.”
그런 내 말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성은 차로 급히 다시 돌아가더니, 차에 있는 휴지란 휴지는 전부 다 가져온 것처럼 두 손 잔뜩 가지고 와서 내게 건넸다. 연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일단 받았던 휴지로 팔다리에 묻은 흙들과 피를 닦아냈다.
“갈 수 있겠어요? 자전거도 고장 난 거 아닌가?”
자전거는 충격으로 체인이 빠져 있었다. 남성은 망설임 없이 맨손으로 검은 기름 범벅인 체인을 만졌다. 그의 손이 순식간에 시꺼먼 기름으로 더러워졌고, 나는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지만, 남성은 아랑곳 않고 자전거를 고쳐주었다.
“한국 사람이세요? 괜찮아요?”
한 여성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는 한국어로 물어보았다.
“덕분에 정말 괜찮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연락처라도 물어볼 걸 그랬지만, 사실 일본에서 전화를 못해서 그냥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내가 보답한 것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일본 번호든 코스타리카 번호든지 어떻게 알고만 있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안부와 감사의 문자라도, 혹은 선물이라도 보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기타아키타의 7번 국도 한가운데에서, 쌩쌩 지나가는 차들 사이에서 선뜻 차까지 돌려서 세워가며 자전거를 타던 한 이방인을 도와준 세 명의 은인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언젠가 인연이 닿을 일이 있을까….
일단은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근처에 있던 휴게소로 급히 향했다. 일단은 약도 없었고 밴드도 없었기에 사서 응급처치라도 하기 위해서 점원에게 다가가, “혹시 여기 밴드는 안 파나요?”라고 물었지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휴게소 내부의 마트에는 농산물이나 과일 따위만 팔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화장실로 가서 휴지를 잔뜩 뽑아 흐르는 물에 팔에 있던 상처를 씻어냈다. 휴지로 톡톡 파우더로 두드리듯이 피와 남은 흙먼지들을 닦아냈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은 참 암담하고 불쌍해 보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뒤 휴게소 로비의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역 주민들 혹은 여행 중 잠시 들른 가족들인 듯한 많은 사람들이 하하 호호 즐겁게 휴게소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걸어 나올 때, 실내를 뛰어다니는 신난 아이들과 그를 잡으려는 부모의 모습. 이곳에서 나 혼자만 이 세상 고통과 슬픔을 다 짊어진 것만 같았다.
바깥에는 갑자기 다시 소나기가 퍼부었다. 다치지 않았더라면 비를 맞았겠구나. 그나마 다친 덕분에 비를 피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멍하니 앉아 있던 도중 한 젊은 남성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하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괜찮으세요? 혹시 이거 필요하신 거 아니신가요?”
그의 손에 있던 것은 휴게소에 상비된 듯한 응급처치키트 상자였다. 휴게소 직원인 듯했다. 그런 휴게소에 있던 응급처치키트를 사용하려면 거의 다리가 절단된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나, 나 같은 타박상 정도 따위가…라는 생각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괜찮습니다. 그거 쓰면 안 되지 않나요?”라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크게 다치신 거 아닌가요? 써도 괜찮습니다!”라며 응급상자를 급히 열기 시작했다.
상자에는 약과 밴드뿐만이 아니라 작은 흰 수건도 있었다. 그는 내게 피를 닦으라고 수건을 건넸다. “피가 묻으면 더러워질 텐데 괜찮습니다.” “아뇨, 그냥 가지셔도 괜찮아요.”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이가 꽤 있어 보이던 할머니 두 분도 담소를 멈추시고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아이고, 학생. 많이 다쳤는가?”
휴게소 직원이 상자에서 꺼낸 약을 보고서는 약을 이렇게 사용하는 거라며, 할머니들은 직접 나서서 내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한국인이야?” “네. 한국인입니다.” 내 억양만 들어도 일본인들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맞히고는 했다.
“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간단한 회화 수준의 일본어로 내가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보답은 그저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라는 말 뿐이었다. 자리를 뜨면서 할머니들에게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까지도 그분들은 환한 미소로 힘내라면서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주었다.
휴게소를 나가자 아까 퍼붓던 소나기는 그치고, 새파란 하늘을 마주하고 있었다. 달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잖아? 다리의 빨간 상처들은 모두 하얀 반창고로, 지친 마음은 따스한 일본인들의 친절한 도움으로 금세 회복되어 있었다. 다시 달려야 했기에 안장에 올라탔다. 다쳤든 말든, 오늘 안에 아키타에 도착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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