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20일 차 : 요시다~하마마쓰 (69Km)
TV에서 오늘부터 내일까지 나고야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나고야까지 가고 싶었지만, 어제에 이은 강풍 소식에 오늘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함께 목적지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호텔을 빠져나왔다. 꼭 라이딩이 내 인생만 같았다. 벌써 30살이 넘었는데 아직도 대학을 졸업 못하고, 계획은 항상 틀어지고, 생각은 항상 바뀌고. 안정된 직장도, 미래에 뭘 할지도 아직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내 인생….
예보를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밖에는 미친 듯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제는 남서쪽으로 가는데 정확히 남서풍이 불었고, 오늘은 서쪽으로 향하는데 초속 8미터의 서풍이었다. 이쯤 되면 신이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이 아닐까?
날씨는 따스했지만 바람을 뚫다시피 힘겹게 페달질을 이어갔다. 10킬로도 가지 않았는데 벌써 쉬고 싶어졌다. 요시다 부근은 녹차로 유명한지, 짙은 초록 빛깔의 녹차밭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녹차밭의 바람개비들이 팽이처럼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녹차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 같았다.
시마다에서 오르막을 오른 이후 옆 도시인 가케가와까지 쭉 내리막이 이어졌다. 맞바람이 얼마나 거세냐면 과장을 보태서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는데 오르막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고 하는데, 내가 이날 몇 번이나 혼잣말로 욕을 뱉었을까? 그나마 지친 내게 웃음을 주었던 것은 식당가에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가 하나같이 바람에 모두 넘어져 있던 모습이었다.
맞바람에 체력소모가 심해 금방 배가 고파졌다. 가는 길에 ‘사와야카(Sawayaka)’라는 클래식한 느낌의 간판이 보였다. 미리 검색하고 찾아온 곳이 아니었는데도 리뷰가 1,000개가 넘어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사와야카는 일본 전국 중 이곳, 시즈오카 현에만 있는 유명한 함박스테이크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4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는 점원의 말에, 보통 같았으면 그냥 나왔겠지만 식사 후 조금이라도 바람이 잦아들길 바라면서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정말 가족들이 기념일에 올 것만 같은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일본에 오고 나서부터 혼밥 레벨 7인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연이어 클리어했다. 뭐, 생각해 보면 이자카야에서 혼자 술도 마시는데.
사와야카에서는 점원이 철판에 담긴 함박스테이크를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잘라준다. 이때 기름이 엄청나게 튀는데, 깔려 있던 종이를 손으로 들어서 튀는 기름을 막는 매뉴얼이 있다. 함박스테이크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맛이 특출 난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신선하다고 할 수 있는 비주얼과 맛이었다.
맛있는 점심도 먹었으니 힘을 내자, 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으나 조금도 바람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풍속은 더 거세졌다.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아직 나고야까지는 120킬로 이상 남아 있었다. 결국 이곳에서부터 16킬로 떨어져 있던 하마마쓰에서 라이딩을 끝내자고 결정했다. 하마마쓰도 어제의 목적지였는데, 이틀에 걸쳐서 오늘 도착하게 되었구나….
목적지를 앞당겼기에 하마마쓰에는 해가 지기도 전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 호텔에서 잤으니 오늘도 호텔에서 자는 것은 사치였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아직 시간이 6시도 채 되지 않아서, 이대로 체크인을 했다가는 금액이 꽤 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넷카페 앞에 있던 맥도날드에 들렀다.
양심도 없이 120엔짜리 콜라 하나를 준비하고 밤 10시까지 죽치고 앉아서 글이나 쓰려고 했는데… 하지만 막상 가서 주문하고 앉자, 와이파이가 되질 않았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점원과 몇 마디를 나누는가 싶더니, “아, 죄송합니다. 손님. 와이파이가 안 되네요….”라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만 돌아왔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저녁 7시에 넷카페에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다리에 드러그스토어에서 사 온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언제까지 이런 여행을 해야 하는 걸까? 좁은 넷카페 부스에서, 남들이 돌려 쓰는 공용 담요를 깔고 궁상맞게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니 갑자기 현타가 왔다. 누가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건 “와, 일본 종주라고? 대단해”라기보다는, “불쌍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종주 대신 집에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이렇게 나는 부정적인 걸까. 아니야, 바람 때문에 살짝 지쳐서 그럴 뿐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나마 안주를 감자칩으로 곁들여, 근처 드러그스토어에서 사 온 에비스 맥주는 기가 막히도록 맛있었다. 맥주 한 캔의 기운을 빌려 스트레스를 잊고는 잠을 청했다. 내일은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나고야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큰 도시이지만 나고야에서는 관광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쉴 생각이었다. 도쿄에서처럼 돌아다녔다가는 피로만 더 쌓일 뿐이었다. 나고야에게는 미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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