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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Apr 01. 2024

나고야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종주 21일차 : 하마마쓰~나고야

  자전거를 던져버리고 싶었던 초속 9m의 강풍을 견뎌낸 어제 하루가 지나고, 오늘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 아침이라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 새벽 4시였다. 매번 넷카페에서 자면 잠자리가 불편해서인지 알람 소리 없이도 새벽에 눈을 뜬다. 부스 좌석이라 천장은 뻥 뚫려 있고, 옆 자리의 코 고는 소리, 매장에서 상시로 켜 둔 이상야릇한 음악소리까지 들려온다. 


아침에 먹으려고 어제 사 온 신라면 컵라면에 라면수프를 넣은 후 물을 받으려고 넷카페를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뜨거운 물이 보이지 않았다. 무인 카운터라서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막 출근해서 손님들이 사용하고 간 컵이나 담요를 정리하고 있던 점원을 겨우 발견해 뜨거운 물을 받을 곳이 있냐고 물었더니, 점원도 그 사실을 생각해 본 적 조차 없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어… 뜨거운 물이요…?”라고 내게 되물었다. 아니, 사실상 일본의 PC방인데 뜨거운 물 받는 곳이 없다고? 결국 컵라면을 생으로 버리고 왔다. 당연히 정수기에 받아서 먹으면 되겠지,라고 사 왔는데 ‘여기 일본에선 그런 상식은 통하지 않습니다만’ 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오늘의 풍속은 초속 4m. 꽤 부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하늘에 감사하고 절을 해야 할 수준이었다. 나고야로 가려면 쭉 북서쪽으로 향해야 했지만 바다를 보고 싶어서 태평양 쪽으로 향했다. 벤텐지마해변공원을 잠시 들러서 구경하고 갈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 벤텐지마해변공원에 도착하자, 나처럼 해변을 구경하러 온 사람보다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만 몇몇 보일 뿐이었다. 알록달록한 주변 맨션 건물들의 디자인도 그렇고 야자수가 쭉 열식 되어 있는 풍경은 마치 일본보다는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다 건너 보이는 빨간 토리이는 구글에서 보았던 사진보다 훨씬 멀고 작아 보여서 아쉬웠다.


해변에 웬 애니메이션 여자 캐릭터 등신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유루캠>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장소라고 한다. 누군가 내 사진을 보고 “와, 유루캠!”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뭔데 씹덕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나중에 유루캠을 몇 화 보았는데 정말 잔잔한 캠핑 애니메이션으로 각 일본의 유명 캠핑 명소들이 에피소드마다 나온다. 이 만화를 보고 왔었더라면 더 캠핑하러 가고 싶은 장소들을 많이 알아보고 왔을 텐데, 하고 오히려 약간 후회했다.


얼떨결에 유루캠 성지순례
벤텐지마해변공원




국도 1번을 따라 나고야를 향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풍속은 그렇다 치고, 하마마쓰에서 나고야로 북서쪽으로 가고 있는데 예보는 북서풍을 가리키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3일째 내가 가는 방향대로 반대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전 10시 반쯤 토요하시라는 도시를 지났는데, 점심을 먹을까 하고 검색해 보니 명물로 카레우동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카레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동이라니… 카레 혹은 우동이라면 먹어 볼 요량이었겠지만 카레우동이라고 하니 썩 내키지 않아서 그냥 편의점에서 오므라이스 도시락을 사 먹었다.


가끔 가다가 국도변에 미치노에키(휴게소)가 들어가면 들어가서 이것저것 둘러보곤 한다. 사실 미치노에키는 주로 그 지역의 과일이나 채소 같은 특산물을 위주로 팔기 때문에 내가 살만한 것은 딱히 없었다. 그나마 기념품 가게에서는 미치노에키의 간판을 그대로 본뜬 키링이나, 국도 번호 키링이 있었는데 홋카이도에서부터 계속 사서 모을 걸 하고 아쉬워했다. 홋카이도 시작점에서부터 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가방에 달아두기도 애매하고 결국 사지 않았다.



나고야 직전 도시인 오카자키에서는 쉬엄쉬엄 움직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이 보여서, 강 쪽으로 자전거를 몰고 유유하게 라이딩을 하곤 했다. 강 표면으로 잔잔한 물결이 햇빛에 비치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윤슬 아래로, 검은 잉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좀 징그럽다 싶을 정도였지만.




오늘 하마마쓰에서 출발해 나고야까지는 110km. 사실 내가 160km를 탔던 날 때문에 100km만 달릴 때면 자괴감이 든다는 부작용을 여러 차례 글에서 이야길 했지만, 사실 정말 이제 100km 라이딩이 내게는 쉬운 일이 돼버렸다는 느낌도 든다. 160km면 쉬지 않고 밟아야 하지만, 100km 거리라면 이렇게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보고 다녀도 저녁 안에는 힘들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나 체력이 성장한 것이었다.


끝없는 국도를 달리다 보니 어느덧 여느 도시에 가까워질 때와 마찬가지로 큰 건물들이 점점 많아지고, 차량들이 도로에 점점 들어차고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저녁 5시쯤 목적지인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차들이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옆에서 더 빨리 달리며 차들을 추월해서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확히 저녁 5시 반에 나고야의 중심지이자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이 위치해 있는 오쓰 상점가에 도착했다. 상점가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막대한 인파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상점가 사이를 지나며 쫄쫄이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 쪽팔림은 덤이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 하루동안 흘렸던 땀을 씻어내고 침대에 몸을 던지듯 풀썩 드러누웠다. 너무 행복했다. 오랜만에 자유다. 내일은 쉴 수 있다. 


나고야의 오쓰 상점가


저녁도 먹을 겸 여유롭게 슬리퍼를 끌고 나와서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다른 도시와 달리 눈에 띄는 건 나고야에는 인터넷에서 ‘일본의 특이한 자판기’로 소개될 법한 특이한 자판기들이 많이 보였다. 쓰리라차 자판기, 담배 자판기… 아니, 근데 담배 자판기는 미성년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지 않을까? (나중에 자판기에서 구입할 때에도 신분증을 스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괜한 걱정임을 깨달았다)



저녁으로 먹은 것은 나고야의 명물이라는 미소카츠. 그중 유명하다는 프랜차이즈인 야마톤의 본점에 왔다. 가게가 5층은 되어 보였는데, 그런지 몰라도 회전율이 빨라서 웨이팅을 오래 하지 않고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미소카츠의 맛은 정말 익숙한 맛이었다. 이건 미소된장이 아니라… 짜장 맛에 굉장히 가까웠다. 꼭 짜장소스에 돈카츠와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짜장카츠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간식거리를 사 오고는 호스텔로 돌아와 글을 쓰기 위해 로비에 앉아 있는데, 신기하게 여기에서도 40-50대 정도로 보이는 듯한 한국인들이 보였다. 로비에서 술판을 거나하게 벌이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프랑스 남자 3명과 말을 섞게 되었다. 


이후 한국인 남자들이 어딘가로 술자리를 옮기자고 하는데, 아무래도 프랑스 남자가 여자를 꼬시고 여자도 프랑스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에 푹 빠져서 “일단 먼저 가”라고 가지 않고 뻐팅기는 모양새였고, 한국인 남자들은 여자를 보채면서 끌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꼭 헌팅포차나 클럽에서 볼법한 광경을 나고야의 한 작은 호스텔 로비에서 보고 있다니. 



일본 종주의 큼지막한 포인트 도시들을 꼽자면 삿포로-도쿄-나고야-오사카-후쿠오카인데, 사실 나고야에서 오사카까지는 정말 가까워서 하루이틀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그래서 오늘 나고야라는 도시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이제 여행의 2/3 지점인 오사카에 거의 다 왔구나,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남다른 감흥이 있었던 것 같다. 


변명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종주하는 내내 매일 빠짐없이 숙소에서 캠핑할 장소를 찾아보았지만 갈 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지나가는 루트인 비와호 주변에 무료 캠핑장들이 검색 결과에 나온 것이다. 드디어 캠핑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무조건 캠핑을 해야만 한다. 나중에 글을 적기에도 민망하고, 지금까지 이 많은 캠핑 장비를 달고 라이딩을 한 내 다리에게 미안해서라도 말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비와호를 바라보며 캠핑하면 얼마나 낭만적일까. 오늘도 고생 전에 김칫국이라도 마셔 본다. 뭐,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다음 날 나고야 TV타워 앞에서 찍은 인증샷





블로그에서도 더 많은 사진과 함께 일본종주 여행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ywhfrv/223292966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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