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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Apr 08. 2024

비와호 라이딩

일본종주 23일차 : 비와호~교토

비와호에서 새벽 내내 추위에 벌벌 떨다가 동이 틀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뭐, 결국 캠핑을 하자고 선택한 나의 책임이다. 서둘러 라이딩을 출발하기 위해 날이 밝아지기만을 기다렸다. 추위에 떠느니 페달이라도 밟으면 춥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텐트도 정리하고 어제 먹고 남은 쓰레기들도 봉지에 담아서 정리했다. 어서 빨리 출발하고 싶어 거의 동이 트자마자 새벽 5시 반부터 텐트를 부산스럽게 정리했다. 사부작대는 소리에 옆 텐트 분이 깼을까 봐 괜히 미안해졌다. 정리를 마칠 때 즈음 옆 텐트 분도 잠에서 깨셨는지 일어나서 정리를 시작했다. 서로의 여행을 향해 응원의 한 마디와 함께 나는 캠핑장(사실상 공터이지만)을 빠져나왔다.




시즈오카~하마마쓰에서 보았던 일본 종주 코스와 같이, 비와호도 일본이 지정한 사이클링 코스였기에 비와호 주변을 따라 파란 선으로 코스가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확실히 지도앱을 일일이 보지 않고 파란 선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라이딩하기가 편했다. 오늘은 그렇게 내내 비와호를 따라서 이동하다가 교토에서 끝마칠 계획이었다.


서울시의 면적보다 넓다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 비와호. 하지만 ‘가장 크다’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비와호임에도 막상 비와호도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은 없었다.


홋카이도에서 보았던 시코쓰호의 충격적인 인상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서 그런 걸까…. 너무 일찍 나오기도 했고, 약간은 구름이 낀 날씨 탓도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잔잔한 호수의 수면과 심심한 풍경들, 호수 주변을 따라 군데군데 작은 마을들 뿐이었다.


역시나 유명한 라이딩 코스여서 그런지 아침부터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비와호 주변에서 유일하게 오늘 들르기 위해 향했던 곳은 <라 코리나 오미하치만>이다. SNS에서 언뜻 보았는데 아름다워서 예전에 가고 싶은 곳으로 저장해 두었던 곳이다. 이름이나, 사실 사진만 보아도 무얼 하는 곳인지는 감이 잡히질 않았다.


사실 단순하게 바움쿠헨을 파는 과자 전문점이다. 하지만 넓은 부지에 동화나 소설에서 나올 것만 같은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을 쓴 건물과, 꽃밭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마치 꼭 테마파크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안으로 들어가자 다양한 바움쿠헨을 비롯한 디저트들이 곳곳의 매대에서


오늘 교토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꽤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역시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한국인 관광객은 눈 씻고 찾아보기가, 한국어는 귀를 씻고 들어보기도 어려웠다. 다만 신기한 것은 중국인들이 많았다.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서양인 관광객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인 관광객 - 정말 일본 어딜 가나 있음. 여기에도 있다고? 싶을 정도의 깊숙한 시골 마을에도 있음.


서양인 관광객 - 교토, 히로시마와 같은 ’일본스러운’, 혹은 ‘역사적인’ 곳에 몰려있음.


한국인 관광객 - 특정 한국인 혹은 SNS에 유명한 장소에만 몰려 있음. 예를 들어 시부야 스카이.



바움쿠헨을 직접 만들고 있는 제조공정도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여기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바움쿠헨 공장’을 테마파크처럼 만들어 둔 곳이다. 사실 오히려 갓 만들었다는 바움쿠헨보다는 ‘바움 사블레’라는 버터링처럼 생긴 비스킷이 훨씬 맛있었다. 정말 진한 버터 향이 돌고 굉장히 고소했다. 맛있어서 한 개 사 먹고 나중에 나갈 때 또 사 먹었다.


어쨌든 다시 비와호로 돌아와 둘레를 따라서 라이딩을 계속 했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비와호는 정말 훨씬 넓고 ‘바다 같다’라는 말이 

오전 11시 즈음 '비와호 모뉴먼트'에 도착했다. 한 여성 라이더가 자전거와 함께 이유는 알 수 없다만 이상한 요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상과 함께 아래에는 ‘비와호, 사이클리스트의 성지’라고 쓰여 있었다. 쫄쫄이를 입은 소위 자덕들 보다는 대체로 주변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놀러 나온 것만 같은 사람들이 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옆에는 흰색 글씨로 ‘BIWAKO’라는 포토스팟도 있다. 당연히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비와호 주변에는 여태껏 내가 일본을 쏘다니며 캠핑장을 찾아 헤맸던 노력과 무색하게 정말 텐트들이 즐비한 캠핑장이 많았다.


점심부터 뭔가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높은 적란운 사이로 심심찮게 으르렁대는 천둥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소나기가 쏟아지려나? 저마다 다른 색깔로 물들어 있는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마치 수채화로 그려낸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 주차장의 아스팔트 바닥에 나동그라져서 어제 마트에서 샀던 바나나와 귤을 점심으로 먹었다. 갑자기 정말 몸을 반사적으로 들썩일 정도로 천둥소리가 크게 내리쳤다. 반대편에서 차에서 내려, 어딘가로 걸어가시던 한 할머니 분께서도 “아이고야!”하면서 크게 소리치실 정도였다.



출발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1분도 안 되어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하필 이럴 때 비를 피할 지붕조차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겨우 비를 면할 정도로 좁은 한 구조물 아래에 잠시 몸을 피해서 비의 기세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내 옆에 있던 풀숱에서 뭔가 팟! 하더니 튀어나와서는 도로 쪽으로 뛰쳐나왔다. 긴 꼬리를 달랑거리며 쏜살같이 움직이는, 바로 여우였다. 얘도 비를 피할 곳을 찾으려고 갑자기 뛰쳐나온 걸까? 여우를 실제로 보긴 처음이었기에 그 순간 넋을 잠시 놓고 무단횡단 중인 여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내 바로 2m 앞에 있었는데, 아차, 하고 뒤늦게 휴대폰을 꺼냈지만 이미 먼 곳까지 가버린 여우가 풀숲으로 종적을 감춰버리는 순간밖에 찍지 못했다.


20여 분이 지나도 비의 기세는 그다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좁아서 불편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비를 맞으면서도 다시 출발했다. 가던 도중 다행히 넓은 다리 아래로 피신했는데, 그곳에 나와 같이 라이더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50대 정도의 아주머니나 아저씨 위주의 모임인 것 같았다. “일본 종주라고? 대단해! 이 사람, 홋카이도에서 왔대.” 아주머니 한 분께서 나의 푯말을 보시고는 호들갑 한 스푼을 얹은 응원의 한마디를 던져 주셨다.


비는 오랜 시간 내리지 않았지만 강도가 워낙 셌던 탓인지 그 짧은 시간에도 길바닥에는 물웅덩이들이 곳곳에 고여 있었다. 비와호의 끝자락에 있는 오쓰 시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다시 1번 국도를 따라서 산지만 넘게 되면 교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진 않았던 오쓰-교토 넘어가는 부근


교토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 3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 교차로에 도착하자 정말 갑자기 뜬금없이 많이 보이는 서양인들, 그리고 한국어가 정말 오랜만에 귀에 들려오자 단박에 여기가 교토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절대 얼리 체크인은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일단 밖에서 조금 돌아다니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카모 강을 따라서 자전거를 밟았다. 카모 강 라이딩, 교토에 살 일은 없겠지만 이것도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까 전과 다르게 은은한 햇살과 함께 카모 강과 강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항상 카모 강은 볼때마다 화려하진 않지만 평화롭고 잔잔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 평화로움도 잠시, 기온 거리에 도착하자 엄청난 인파에 맥을 못 출 지경이었다. 게다가 쫄쫄이 복장에 뒤에는 큼지막하게 ‘일본 종주’ 푯말까지 달고 있으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닐 지경이었다. 도쿄와 인파는 비슷한데 교토는 거리가 작고 좁아서 훨씬 더 붐비는 느낌이었다. 이래선 자전거와 함께는 절대 못 이동하겠다, 싶어서 얼른 체크인을 하러 숙소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



게스트하우스의 로비에는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 여성이 카운터를 맡고 있었다. 근데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본어가 심하게 서투르고 답답할 정도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역시나 체크인은 오후 4시부터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거의 남질 않아 숙소 로비에 있던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았는데, 충전이 되질 않았다. 다른 곳에 꽂아도 마찬가지였다. 충전 표시가 1초마다 깜빡거리면서 되었다 안되기를 반복했다.


기요미즈데라를 보러 가려고 했는데 이대로 충전이 되질 않는다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수건 역시 제공되지 않았다. 대여만 200엔이길래 차라리 100엔 숍에서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벌써 이때부터 라이딩으로 인해 쌓인 피로에 더해져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결국 꺼진 휴대폰과 함께 고프로를 사진 촬영 대용으로 들고서는 숙소 바로 옆에 있던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도떼기시장 수준으로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마디로 관광객 천국이었다. 도쿄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국인들도 정말 많고 특히 서양인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한국인, 중국인과 서양인들이 채운 거리의 나머지 빈자리는 일본의 중, 고등학생이 가득 메웠다. 모두 수학여행을 온 것 같았다.




어쨌든 겨우 기요미즈데라로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5년 전에 교토에 두 번씩이나 왔지만, 당시에 기요미즈데라는 공사 중이었기에 출입할 수 없었다.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와 일본어를 비롯해 사람들의 말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인파를 겨우 헤치고 저물어가는 석양을 찍기에 바빴을 뿐이다. 사진을 찍고 나니 현타가 밀려왔다.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무슨 사진 찍으러 여행 왔어? 여유가 없이 항상 급하게 발걸음을 다그치다 보니, 여행지를 즐기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지나가게 된다.


기온 거리로 다시 나오자,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사람 때문에 제대로 지나갈 수도 없었고 그저 밀려 지나가는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휴대폰도 안 되고, 사람도 너무 많고. 어차피 이러면 맛집을 가도 웨이팅은 기본이겠구나,라는 생각에 알아봐 둔 곳을 가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그냥 눈에 보이는 사이제리야로 발걸음을 직행했다. 역시나 종업원에게 충전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았지만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잠깐 들러 내일 아침 먹을거리들을 샀다. 돌아왔을 때 로비뿐만 아니라 침실에서도 충전은 여전히 되지 않았다. 내 충전기가 문제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어제까지만 해도 다른 숙소에서는 잘만 충전이 되었다. 휴대폰이 문제인가? 휴대폰이 문제라기에 태블릿조차 충전이 되지 않았다. 오늘 비를 맞아서 그런가…? 나는 한숨을 쉬고는 일단 먼저 세탁실로 내려가 돈을 넣고 빨래를 돌렸다.


그냥 충전은 포기하고 내일 일찍 일어나 충전이 가능한 카페 같은 곳에 가서 하자,라고 단념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머무는 도미토리 룸은 엘리베이터 없는 4층에 있고, 각종 주방이나 샤워실은 모두 2층에 있어서 계속 올라갔다 내려와야만 했다. 라이딩 후에 계단을 올라가면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계단마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어뒀는지 모를 지압매트가 있어서 발이 너무 아팠다. 2층 침대에 배정받은 내 자리는 천장이 뚫려 있어 불을 꺼도 너무 밝고 최소한의 방음조차 되지 않았다. 매트는 빨래를 제대로 한 건지 오물자국들이 묻어 있고,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폭주족의 배기음 소리가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최악의 숙소다.




세탁기에 돌렸던 옷들은 꺼내자 온통 하얀 휴지범벅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휴지를 넣고 돌린 것 같다.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숙소 로비에 문의를 하러 내려가자 호스트인 듯 한 사람과 직원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로비에서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세탁비는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 숙소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나의 뒤통수 뒤로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현듯 교토도 이렇게 관광객이 넘치다 못해 쏟아져 내리는데, 내일 오사카에 도착해서도 도톤보리에서의 인증샷은 기대도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제발 얼른 이 인간 지옥 교토를 탈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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