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24일 차 : 교토~오사카 (80Km)
오사카의 숙소 예약을 마쳤다. 교토에서 오사카까지 거리는 약 50킬로. 정말 천천히 교토를 관광하고 출발해도 늦지 않을 거리였다. 그래도 관광지에 왔으니 바로 출발하기보다는 이전에 가지 못했던 곳들을 위주로 교토를 둘러보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어제 근처 마트에서 사 왔던 방어를 아침으로 구워 먹고 악몽의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와 근처에 있던 블루보틀 카페에 개장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카페도 둘러보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지 못했던 충전을 조금 하다가 갈 생각이었다. 근처의 ‘철학의 길’도 가고 싶었지만 위치나 스케줄로 보았을 때 철학의 길까지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뭐, 가봤자 그냥 단순한 길이겠지? 하고 쉽게 포기했다.
매장에 앉아 밀렸던 일기를 태블릿으로 썼다. 매일 일기를 쓰지 않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 일기를 쓰면 있었던 일 말고는 그날의 생생한 감정이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하지만 160킬로씩 달려버리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일기는 쓰기는커녕 기절해 버린다.
많은 서양인 관광객 손님과 함께 매장에는 유달리 매장 인테리어가 유명해서 그런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이 매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어떤 한 사람은 바리스타에게 드립 커피를 따르는 포즈 연출을 부탁하면서 그 모습을 찍기도 했다. 그 틈에 나도 같이 뒤에서 휴대폰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올 때, 사진을 찍던 사람이 야외석에 앉아있길래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었다.
“아까 사진 찍으시던데, 혹시 사진 인스타 같은 것을 하시나요?”
다행히 그는 반갑게 나를 맞으며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스태프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도 여기서 일하는 스태프였기 때문이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쉬는 날인 오늘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고 한다.
저는 지금 자전거로 일본 종주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아, 그분이셨군요?!”라고 하며 갑자기 카메라에서 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방금 주차해 둔 내 자전거 사진을 보고 신기해서 찍었다고 말했다. 본인도 자전거를 탄다고 말하던 그와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서는 인사를 한 뒤 카페를 나왔다. 내 스컬트라 100 옆에 있던 그의 자전거는 비앙키….
점심을 먹고 교토 시내를 지나가면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뜬금없이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했다. 뒤에서 나타난 경찰차는 나를 앞질러가더니 나를 가로막으며 멈추었다. 일본 경찰관들이 차례차례로 내리고는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왜? 뭘 잘못했지? 헬멧도 썼는데. 애초에 일본 사람들도 헬멧을 안 쓰잖아. 여기선 도로 끝차선으로 달리면 안 되는 건가? 뭐지?’
추방될 짓을 한 것도 없지만 외국인 경찰이다 보니 정말 머리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전거 위에 멈춰 선 채 경찰들에게 물었다.
“아, 뭐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일본 종주라고 되어 있길래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
라고 하고는 경찰들은 내 이름부터 직업, 사는 곳까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내게 사는 곳을 물었을 때, 일본에 사는 곳이 없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그제야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았던 것 같았다.
“여권 보여주세요.”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여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들은 잠시 여권을 들춰보더니, 일본 종주에 대해 어디서 출발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간단한 질문들을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가세요.”
그들은 감사합니다, 혹은 죄송합니다라는 인사치레도 없이 내게 허무하게 여권을 건넸다. 다소 황당한 기분과 함께 여권을 돌려받고 경찰들은 유유히 차에 탑승했다. 뭐지? 그냥 수상해 보여서 검문을 한 건가? 어디선가 듣기로‘일본 종주’라고 써붙이지 않으면 오히려 자전거에 주렁주렁 짐을 들고 다니는 게 수상해서 검문을 당할 수도 있으니 써 붙이고 다니는 게 좋다고 들었는데, 교토 경찰들은 ‘일본 종주’라고 쓰여 있어 검문을 했다고 하니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경찰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겠지만은, 막상 실제로 내가 당하는 입장에 서 보니 기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특히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와중에 경찰에게 조사당하는 것 자체가 꼭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교토 나들이를 마치고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교토에서 오사카까지는 요도가와 강으로 쭉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에도 도쿄에서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둑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 길만 쭉 밟고 달리면 오사카에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길을 헤매거나 지도를 볼 일이 없어 편했다.
하지만 결국 오늘도 해가 지기 전에는 오사카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특히 길이 뻥뻥 뚫려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자전거가 과속을 하지 못하도록 설치해 둔 통과대 같은 것이 있어 멈춰야만 했다. 거의 200미터 단위로 설치되어 있는 수준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통과대가 익숙한 듯, 그 좁은 틈 사이를 스무스하게 지나갔지만 나는 낑낑대며 자전거를 통과시켜야만 했다.
오사카로 가는 둑길, 지는 해와 함께 노을로 물들어가던 분홍색 하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곧바로 어두워질 것만 같은데도 강가에 있던 수많은 운동장에서는 일본 학생들이 축구, 야구부터 러닝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야말로 청춘의 낭만이었다. 뒤늦게서야 운동에 취미를 붙였던 나는 그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페달을 밟았다.
오사카에서의 숙소는 호텔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이라 호텔이라곤 하지만 공용 샤워실에, 방은 교도소 독방처럼 좁고 허름했다. 샤워를 마치고 숙소 근처에 있던 가라오케 바에 가보기로 했다. 일본의 가라오케 바라고 하면, 가게의 주인인 ‘마마(엄마)’를 비롯한 점원들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 그대로 노래방(가라오케) 기계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게이다. 대체 가게 사장을 왜 엄마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이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반쯤 긴장한 상태로 ‘호시즈키(星月)’라고 쓰인 간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명은 40대, 한 명은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의 점원이 있었다. 손님석에는 50대로 보이는 남성 손님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미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반쯤 인사불성이 된 채 점원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야키소바 하나와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생소한 풍경에 아무 말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아보았는지, 마마는 내게 한국인이냐는 질문과 함께, 간단하게 말을 몇 마디 이어나갔다.
내 왼쪽 좌석에 앉아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던 아저씨는 이 가게의 단골인지 마마와 꽤 친한 듯해 보였다. 그는 나이가 있었지만 꽤 소싯적에 잘 생겼을 것 같은 까무잡잡한 얼굴과, 기분 좋은 호탕한 웃음이 특징이었다. 그도 함께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대답을 할 때마다 항상 “와, 대단하네!”라고 하며 큰 리액션과 함께 내 이야기에 호응해 주는 그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는 나를 ‘형씨(お兄さん)’라고 불렀다.
“여행 팁 하나 알려줄까? 상자를 하나 다이소 같은 데서 사서, 도톤보리에 가. 그리고 일본 종주라고 쓰고. 그러면 사람들이 돈 줄 거야. 그러면 돈도 벌고 종주도 하고. 일본 사람들은 착해서 다들 돈을 줄 거야. 나중에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값도 벌어갈 수 있을 걸? 어때?”
“정말요? 아, 저는 그 정도까지는 좀 부끄러워서 못 할 것 같은데….”
“근데 빈 통이면 사람들이 돈 안 넣을지도 모르니까 너 돈도 조금 넣어.”
한 술 더 떠서 옆에서 마마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내일은 뭘 하려고?”
“내일은 오사카에 왔으니까 하루 정도 쉬면서 나라 공원도 가고 하려고요.”
“뭐? 나라 공원을 자전거 타고 갈려고?”
“아, 아뇨. 자전거 타는 거 더는 힘들어서 나라 공원은 그냥 전철 타고 가려고요.”
“진짜 잘 생각했네. 나라로 자전거 타고 갔다간 죽어. 차로 가도 힘든 곳인데.”
내리 2시간 동안, 마마가 아니라 그 아저씨와 대부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래를 부르러 왔는데 이야기만 내내 했다. 알고 보니 가라오케 바에서는 가라오케가 무료가 아니라, 돈을 내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가격은 1곡당 100엔. 한국의 코인 노래방이면 4곡인데. 일부러 체커즈의 <ジュリアに傷心>(한국에서는 컨츄리꼬꼬의 <Oh My Julia>로 유명한)을 불렀지만, 내가 쇼와 시절 유명한 일본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 대해서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혹시나 촬영금지일까 봐 가게는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먹었던 음식들만 사진으로 남겼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면 친절하게 응하셨을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너무 아쉽다. 추억도 용기가 있어야 사진첩에 남길 수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가게를 나가는 마지막까지도 상냥하게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붙들고선, 다치지 말고 끝까지 잘 완주하라고 응원을 해주셨다. 항상 응원을 받을 때마다 이게 뭐라고, 그저 내 돈 들여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을 뿐인데 뭔 대단한 일이라고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남아 있는 오사카 가라오케 바에서의 추억. 지금 다시 그 가라오케 바에 가도 그분은 거기에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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