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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Apr 11. 2024

교토에서 당한 일본 경찰의 불심검문

일본종주 24일차 : 교토~오사카

  오사카의 숙소 예약을 마쳤다. 교토에서 오사카까지 거리는 약 50km. 정말 여유롭게 교토를 둘러보고 출발해도 늦지 않을 거리였다. 그래도 관광지에 왔는데, 바로 출발하기 보다는 이전에 가지 못했던 곳들을 위주로 교토를 둘러보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어제 근처 마트에서 사 왔던 방어를 아침으로 구워 먹고(회가 아닌 구워 먹는 방어는 완전히 고등어와 같은 맛이었다) 악몽의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끙끙대며 트렁크백을 매달고 있 자전거를 보더니, 일본 종주를 하고 있냐고 물으면서 응원과 함께 작은 과자를 나누어주었던 남자 스태프 덕분에 그나마 게스트하우스를 향한 짜증이 살짝 풀리기는 했다.


시내버스들이 차도에 즐비해 있어 인도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어떤 일본 아줌마가 날 뒤에서 불렀다.


“저기, 일본 일주 분.”


“네?”


자전거를 멈추고 내가 돌아보자,


“아니, 여기 인도에서 자전거 타시면 안 돼요.”


하고서는 심드렁한 표정과 함께 내게 쏘아붙이듯 그녀는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사실 어이가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한 후 차도로 빠져나왔다. 아니, 다른 일본인들도 마마챠리(ママチャリ)로 인도 위에서 잘만 타고 다니는데 왜? 아니면 이 인도만 특별히 자전거가 다니면 안 되는 길인가?




먼저 근처에 있던 교토 블루보틀의 9시 개장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카페도 둘러보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지 못했던 충전을 조금 하다가 갈 생각이었다. 근처의 ‘철학의 길’도 가고 싶었지만 위치나 스케줄로 보았을 때 철학의 길까지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뭐, 가봤자 그냥 단순한 길이겠지? 하고 쉽게 포기했다.


블루보틀 매장에 앉아서, 어제 게스트하우스의 충전 먹통으로 쓰지 못하고 밀렸던 일기를 태블릿으로 썼다. 일기는 제때제때 써야만 한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그날을 떠올리면서 일기를 쓰려면 있었던 일의 나열 말고는 그다지 적을 게 없다. 매일 그날 써야지 당시의 감정을 생생히 남길 수 있다. 근데 160km씩 달려버리면 숙소에 가면 일기는 커녕 그냥 기절해 버린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이제는 여유롭게 달리면서 이렇게 쉴 때마다 일기를 남기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대체로 서양인 관광객 손님과 함께, 일본 전통 건물에 만들어진 교토 블루보틀 매장에는 유달리 미러리스 카메라 같은 전문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이 매장을 촬영하곤 했다. 요즘 자주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사진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들일까? 


어떤 한 사람은 점원에게 드립 커피를 따르는 포즈 연출을 이야기하면서 그 모습을 찍기도 했다. 그 틈에 나도 같이 뒤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올 때, 사진을 찍던 사람이 야외석에 앉아있길래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었다. "아까 사진 찍으시던데, 혹시 사진 인스타 같은 것이 있으세요?" 다행히 반갑게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면서 인스타그램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스태프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도 여기에 일을 하는 스태프였기 때문이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고, 쉬는 날인 오늘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고 한다.


나는 지금 자전거로 일본 종주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깜짝 놀라더니 자기도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일본 종주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면서, 호들갑을 떨며 사진기를 켜서 보여주었다. 정말 내 자전거 사진이 찍혀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자전거는 비앙키였지만...



교토 블루보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교세라 미술관에 도착했다. 헤이안 신궁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우연히 알게 된 MUCA 전시를 보러 왔는데, 교토와 오이타, 그리고 도쿄 총 3군데에서 번갈아 진행하는 전시라고 한다. 마침 내가 교토에 왔을 때에 MUCA전이 교세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사실 뱅크시 말고는 대부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작가들이었다. 뭐, 뱅크시가 가장 유명하기도 하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전시 역시 삼분의 일 정도가 뱅크시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전시가 그렇게 크고 길지는 않았지만, 여러 작품들을 동선별로 길고 넓게 배치한 것이 아니라 꼭꼭 눌러 담아서 전시해 둔 것만 같아 눈요기할 작품들은 많았다.


일본에 오면 항상 신기한 것은 대체로 전시나 미술관에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많이 오신다는 점이었다. 20-30대들이 사진을 열심히 찍어 담고 있는 한국 전시의 모습에 반해 대체로 일본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작품 설명을 열심히 읽고, 듣고, 작품을 눈에 담고 계셨다.



역시나 전시에 대한 이해는 하지 못한 채 거의 사진만 찍다시피 하고 나온 후, 뭘 점심으로 먹을지 고민하던 와중에 지도앱에서 우연히 근처에 교토대학교가 있어 이번에도 학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홋카이도에서는 홋카이도대학, 도쿄에서는 도쿄대학, 그리고 교토대학까지 가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고야대학도 갈걸. 종주 동안 모든 구 제국대학을 들러볼 걸 그랬다(어떻게 보면 내가 다니는 대학도 제국대학이니까...).


교토대학교 학생식당
자전거의 왕국답게 대학교에 갈 때마다 엄청나게 자전거가 많다. 


교토대에서 기분 좋게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나오는 길에, 뜬금없이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했다. 교토 시내 도로 끝을 달리는 와중에 갑자기 경찰차가 나를 앞질러가더니 차가 내 앞에서 멈추었다. 일본 경찰관들이 차례차례로 내리고는 나를 불러 세웠다.


‘대체 왜? 뭘 잘못했지? 헬멧도 썼는데. 애초에 일본 사람들도 헬멧을 안 쓰잖아. 여기선 도로 끝차선으로 달리면 안 되는 건가? 뭐지?’ 추방될 짓을 한 것도 없지만 외국인 경찰이다 보니 정말 머리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침착한 척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 위에 멈춰 선 나는 경찰들에게 물었다.


“아, 뭐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일본종주라고 되어 있길래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


라고 하고는 경찰들은 내 이름부터 직업, 사는 곳까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내게 사는 곳을 물었을 때, 일본에 사는 곳이 없는 한국인이라고 내가 말하자 그제야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러자 여권을 보여달라고 경찰은 요구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여권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네. 알겠습니다. 가세요.”


하고는 내게 허무하게 여권을 건넸다. 나는 다소 황당한 기분과 함께 표정으로 여권을 받았고 경찰들은 유유히 차에 탑승했다. 뭐지? 그냥 수상해 보여서 검문을 한 건가? 어디선가 듣기로‘일본 종주’라고 써붙히지 않으면 오히려 자전거에 주렁주렁 짐을 들고 다니는 게 수상해서 검문을 당할 수도 있으니 써 붙이고 다니는 게 좋다고 들었는데, 교토 경찰들은 ‘일본 종주’라고 쓰여 있어서 검문을 했다고 하니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경찰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겠지만은, 막상 실제로 내가 당하는 입장에 서 보니 기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특히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그곳에서 경찰에게 걸려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꼭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미국의 흑인들이 차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지 이제야 알 것만 같기도…






다음으로 향한 곳은 금각사와 료안지였다. 역시나 교토는 어딜 가든 서양인들과 수학여행을 온 일본 초, 중, 고등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실제 금각사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나중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니, 사진이 정말 예쁘게 나온다 정도? 



다음으로는 고산수식 정원으로 유명한 료안지로 향했다. 유명한 카레산스이 정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루 위에 걸터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와 모래로 만든 우주를 상징한다는 정원이다.


'음, 역시 료안지야. 금각사와는 다르게 료안지 정원을 바라보니 차분하고 경건한 느낌이 마음속에서 느껴져...'라고 느꼈던 생각은, 사실상 그저 금각사보다 덜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없었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우스운 이유를 떠올렸다.



(오사카까지의 라이딩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블로그에서도 더 많은 사진과 함께 일본 종주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ywhfrv/22329864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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