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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Apr 12. 2024

오사카의 가라오케 바에서 만난 아저씨

일본종주 24일차 : 교토~오사카 (2)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교토 나들이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교토에서 오사카까지는 요도가와 강으로 쭉 이어지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제방길(どて)이 이곳도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것만 쭉 밟고 달리면 오사카에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길을 헤매거나 할 걱정이 없어서 굉장히 편했다.


하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10%, 5%로 점점 바닥이 나고 있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콘센트가 먹통이었던 탓에 보조배터리들도 충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충전을 할 수가 없었다. 오사카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인데…


결국 어쩔 수 없이 제방길 중간에 빠져서 근처의 히라카타라는 도시로 갔다. 그래도 히라카타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츠타야 서점의 1호 점이다. 정확히 지금은 1호점이 남아있진 않지만, 그 자리에 상징적으로 도쿄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과 같은 <츠타야 히라카타 T-SITE>가 들어서 있다. T-SITE는 쉽게 말해서 츠타야 서점뿐 아니라 마트 등 여러 가지 들이 모여 있는 복합 쇼핑몰이다.



스타벅스에서 숏커피 하나를 시키고 휴대폰 충전을 20여 분 정도 한 것 같다. 충전하는 동안에도 초조함에 안절부절못했다. 시간은 오후 4시, 거듭 지겹도록 이야기하지만 일본은 해가 미친 듯이 빨리 져서 그 20분조차도 늦었다가는 나중에 20분만큼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달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20퍼센트 정도 충전이 되자 얼른 다시 나와서 제방길을 계속해서 달렸다. 오늘도 느낌이 싸한 게 해가 지기 전에는 오사카에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특히 길이 뻥뻥 뚫려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자전거가 과속을 하지 못하도록 설치해 둔 통과대? 같은 것이 있어서 멈춰 서서 힘겹게 자전거를 통과시켜야만 했다. 거의 200m 단위로 설치되어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오사카로 가는 길, 지는 해와 함께 노을로 물든 분홍색 하늘이 정말 예뻤다. 곧바로 어두워질 것만 같은데도 강가에 있던 운동장에서는 수많은 일본의 학생들이 축구, 야구부터 러닝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야말로 청춘…


그 와중에 점점 시야 저편에서 수많은 번쩍이는 마천루들이 시야에서 모습을 점점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오사카에 도착했다는 것을 단번에 보고 알 수 있었다. 


오사카 시내까지 강가를 따라 자전거길이 쭉 이어져서 도쿄보다 더 한강 라이딩을 하는 기분으로 달릴 수 있었다. 나를 따라서 함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모두 퇴근하는 회사원들처럼 보였다. 하늘은 이미 깜깜해졌지만 도심지라 불이 밝아서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도톤보리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역시 예상대로 엄청난 인파가 도톤보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체감상으론 꼭 6년 전보다 더 사람이 많아진 것만 같다. 유명한 글리코상 전광판 앞에서 아이돌인지 지하아이돌인지 모를 마법천사 같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신세카이 근처에 잡았던 숙소는 호텔이었다. 1박에 2000엔대라서 ‘싱글룸인데 이렇게 싸다고?’라고 생각했지만, 방문을 열어보니 2000엔대라는 것에 수긍할 만한 컨디션이었다. 샤워도 공용 욕실을 사용해야만 했다. 



 샤워를 마치고 숙소 근처에 있던 가라오케 바(혹은 스낵바)에 갔다. 일본의 가라오케 바라고 하면, 가게의 주인인 ‘마마(엄마)’를 비롯한 점원들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게이다. 대체 가게 사장을 왜 엄마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전부터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또 일본 사람들 앞에서 일본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했고. 최근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가라오케 바가 나온다. 


반쯤 긴장한 상태로 <호시즈키(星月)>라는 이름의 가라오케 바 문을 열고 들어갔다. 40-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점원으로 계셨고, 50대로 보이는 남성 손님 두 분이 있었다. 내가 가운데 앉은 사이 마른 편의 한 아저씨는 왼쪽 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다른 분께서는 술에 이미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반쯤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야끼소바 하나와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아보았는지 한국인이냐는 질문과 함께, 말을 몇 마디 이어나갔다. 옆에 앉아있던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는 이 가게의 단골인지, 마마와 꽤 친해 보였다. 


남자 손님은 나이가 있었지만 꽤 잘 생기고 까무잡잡한 얼굴과 기분 좋은 호탕한 웃음이 특징이었다. 내게 계속 질문을 하면서 내가 일본 종주 이야기를 하면 항상 “와, 대단하네!”하면서 담배를 피우며 큰 리액션과 함께 내 이야기에 호응해 주었다. 나를 형씨(お兄さん)라고 불렀다. 


“여행 팁 하나 알려줄까? 상자를 하나 다이소 같은 데서 사서, 도톤보리에 가. 그리고 일본 종주라고 쓰고. 그러면 사람들이 돈 줄 거야. 그러면 돈도 벌고 종주도 하고. 일본 사람들은 착해서 다들 돈을 줄 거야. 나중에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값도 벌어갈 수 있을 걸? 어때?”


“맞아. 맞아.”하고 그 이야기에 마마까지 맞장구를 치자,


“정말요? 아, 저는 그 정도까지는 좀 부끄러워서 못 할 것 같은데…”


“아, 근데 빈 통이면 사람들이 돈 안 넣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 돈도 조금 넣고.”


옆에서 마마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나도 이야기하는 아저씨도 서로 빵 터졌다. 


“내일은 뭐 하려고?”


“내일은 오사카에 왔으니까 하루 정도 쉬면서 나라 공원도 가고 하려고…”


“뭐? 나라 공원을 자전거 타고 갈라고?”


“아, 아뇨. 자전거 타는 거 더는 힘들어서 나라 공원은 그냥 전철 타고 가려고요.”


“진짜 잘 생각했네. 나라로 자전거 타고 갔다간 죽어ㅋㅋㅋ 차로 가도 힘든 곳인데”


하고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내리 2시간 동안 오히려 점원 분이 아니라 아저씨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노래를 부르러 왔는데 이야기만 내내 했다. 알고 보니 가라오케 바에서는 자신이 돈을 직접 내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가격은 1곡당 100엔. 일부러 이 분들이 알 법한 체커즈의 <ジュリアに傷心>을 불렀는데 딱히 노래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기가 세 보이시는 분들 사이에 앉아있던 나는, 마마에게 한소리 들을까 봐서 가게 내부는 찍지는 못하고 먹었던 음식들만 사진으로 남겼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권했다면 친절하게 응하셨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쉽다.


어쨌든 가게를 나가는 마지막까지도 상냥하게 내 손을 꼭 붙잡고선 응원을 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항상 응원을 받을 때마다 이게 뭐라고, 나는 그저 내 돈 들여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을 뿐인데 대단한 일이라고 응원을 해주시는지 하면서 속으로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전거 여행을 해야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하며 그저 페달을 밟고 나갈 뿐이었다.






블로그에서도 더 많은 사진과 함께 제 일본 종주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ywhfrv/223299679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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