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씨

4. 어린 왕자 카페

by 조안

무심(無心)씨


4. 어린 왕자 카페


사람들은 무심씨에 관심이 없다.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하루에 몇 끼를 어떻게 먹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 보다 더 관심이 없는 이가 있으니. 바로 무심씨다.

무심씨는 본인이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던 사람인지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분명한 건 무심씨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왔고 누구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무엇이 무심씨를 이토록 구석진 외진 곳에 버려뒀는지…


초여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어느 날 수납장 정리를 하다 작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인생 사진관’이란 빛바랜 종이봉투에 사진이 여럿 들어있었다. 무심씨 고등학교 때 다락에 물이 차서 사진들이 온전히 남은 게 없다. 모퉁이가 잘려있고 가족사진인데 몇 명이 없고 대략 그렇다. 무심씨는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넘기며 웃음이 난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사진 한 장, 짧은 청치마에 청자켓, 뽀글뽀글 파마한 머리는 높다랗게 묶어 올리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좋다고 웃고 있는 모습에 잠시 무언가 머릿속에서 로딩이 되길 시작했다.


무심씨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무심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내가 대학교 입학금 및 첫 학기 등록금을 내주었으니 앞으로는 네가 벌어 공부해라”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너도 성인이고 고등학교 때처럼 밤늦게 끝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으니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라는 거지”

“아니, 이제 막 대학 들어갔는데 아르바이트? 말이되?”
“이렇게 따지는 건 말이 되고? 난 네 나이 때 벌써 돈 벌어 집에 보탰어”


무심씨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들의 ‘라테’ 사랑은 변함없는 진리인 듯싶다. 무심씨 아버지는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이 등록금에 모자라면 그 부분만큼만 보태주시기로 하셨다. 물론 등록금의 60% 이상을 무심씨가 모와 놨을 때 이야기다.


무심씨는 그때부터 친구들, 선배들 주변인들의 조언 아닌 조언을 참고하여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신촌 근처에 살았던 터라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 등 아르바이트 꺼리는 적지는 않았다. 물론 과외가 돈벌이가 좋기는 하지만 부모님들이 선호하는 대학도 아니었고 특히나 또다시 국영수 책을 펼 만큼 배짱이 좋지도 않았다.


무심씨는 친구 한 명과 신촌 골목골목을 돌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 어린 왕자 카페 / 저녁 7시~시간 조정 / 최고 시급 / 여성만 지원 가능 / 25세 이하 >


무심씨는 이거다 싶었다. 7시면 학교 끝나고 오기도 부담 없고 시간도 조정 가능하고 최고 시급? 25세 이하? 무심 씨만을 위한 아르바이트 자리 같았다. 서둘러 공고장을 떼어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집에 와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전화를 한 끝에 통화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네, 지금 나이가?

“네스무 살입니다. 대학교 1학년이요”

“시간은 7시 가능하고요?”

“네네, 가능합니다.”

“그럼 내일 저녁 7시에 면접 가능할까요? “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력서 가져가야 하나요?”

“하하하, 아니요 그냥 오세요”

“네, 낼 뵙겠습니다”


무심씨는 생애 첫 직장?을 구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무심씨는 옷장을 열어 가장 뽐낼 수 있는 옷을 골라 입었다. 어울리지 않는 레이스 블라우스에 살짝 물 빠진 청바지, 파마머리는 높다랗게 묶고 책상에서 가장 빨간 립스틱을 골라 발랐다.


“무심아? 오늘 좀 특별해 보이는데? 미팅 가니?”

“아니, 면접, 아르바이트 면접”

“정말? 대단하다.”


친구들의 칭찬에? 무심씨는 자신감까지 장전했다. 전투적으로 보일 정도로 당당하게 그리고 어설프게 어린 왕자 카페로 향했다. 전날 낮엔 꺼져 있던 카페에 발그레한 불빛이 켜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 면접 왔는데요?”

“잠시만, 거기 좀 앉아 기다려요”

어색한 미소를 잔뜩 머금고 무심씨는 불빛 속에서 걸어오는 아름다운 사장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기? 학생인가? 어제 전화 한?”

“네, 안녕하세요? 무심이라고 합니다.”

사장님은 알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담배 한 까치에 불을 붙였다.


“학생? 아니 무심씨? 좀 일어나 볼래요?”

무심씨는 자신 있게 일어나 사장님 앞에 섰다. 그때서야 사장님은 무심씨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더니 웃기 시작했다.



“학생? 아니 무심씨? 음, 있잖아 탈락이야. 그리고 우리 같은 카페에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열심히 공부를 더 해봐, 알았지?”

“아참, 그리고 밤에만 문 여는 카페는 아무나 아르바이트 하는게 아니야”

“아니, 사장님, 저 열심히 할 수 있어요”

“하하하, 내가 안 되겠어. 얼른 집에가서 공부해, 그리고 요즘에 그 빨간, 립 컬러, 유행 아니야, 좀 촌스러”


무심씨는 처참히 까이고 나왔다. 한동안은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사진을 보니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무심씨는 아르바이트의 신이 되어갔다. 한 학기의 휴학도 없이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돈을 벌었다.


“무심아? 여자는 예쁘면 인생의 90%를 먹고 들어가”

“선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참나”

“네가 힘들게 사는 건 나머지 10%에 목숨 걸고 살기 때문이야”


그때는 몰랐다. 선배의 그 말이

그런데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인 거 같다.


무심씨는 무심하게 사진들을 다시 차곡차곡 챙겨 상자에 담아 수납장 가장 높은, 구석진 곳에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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