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이야기
내가 지켜온 그 사람이
오늘 베일 속으로 지었던 그 미소는
내 소망의 종말을 고했다
결혼식으로 분주해진
궁정 뜰을 지나면서
그곳에서 꽃을 바라보던
그 사람을 추억하곤
보이지 말아야 할 눈물이
투구 속으로 흐른다
밤새 이어진 전투에도
도시를 넘어가는 행군길에도
나는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검과 방패가 필요 없는
나의 공주님
나는 이제 무엇으로
이 갑옷의 무게를 견딜까요?
- 사랑했던 공주의 결혼식에 참석한 근위기사
기사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남자아이들 누구나 꿈꿔온 스토리일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나는 기사로 빙의한다. 사악한 마법사나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해내고 멋지게 공주와 결혼해 왕의 사위가 되고 호의호식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를 다들 한 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더 클래식의 동화 같은 노래 '마법의 성'도 이런 진부한 스토리로 구성된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을 하다가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낭만 가득하지 않은가?
전제군주제인 왕국은 신분이 엄격히 나뉜 계급사회로, 왕족인 공주가 기사와 결혼하는 전개는 안타깝게도 비현실적이다. 공주는 마땅히 이웃 왕자와의 정략결혼으로 왕족의 번영을 이끌어가야 할 운명을 지고 가게 된다. 이 시도 그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기사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멋진 근위 기사가 된 내가 아름다운 공주를 경호하다가 서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결혼도 하고 뭐, 그럴 수 있지 않은가? 내 어린 시절 여름 은하수 아래서의 공상은 항상 내 위주로 잘되는 그런 스토리였다. 팍팍한 현실 속에 살지만 공상의 세계에서는 누구라도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