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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Nov 10. 2023

[프롤로그] 한국 떠나 발효음식에 눈 뜨다

평생 할 취미, 여정의 시작

영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5개월 차, 남은 반년 간 제대로 발효음식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며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낯선 환경에 놓이니 문제를 해결하고 적응하기까지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우리 부부는 다른 덴 돈을 안 쓰더라도 먹는 덴 진심이어서 웬만하면 돈을 아끼지 않는데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비싼 외식 물가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외식은커녕 마트의 밀딜 세트(Meal deal; 메인, 사이드, 음료 세트로 약 3.5-5파운드)로 하루 한 끼니씩 때웠고 공장식으로 만들어진 마트의 콜드푸드가 맛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활하기를 거의 1달, 이제 좀 적응하고 나니 직접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에어비엔비 호스텔은 간이 주방만 있지 제대로 된 주방시설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새로 옮겨간 호스텔은 다행히도 집주인과 함께 주방을 공유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요리를 매일 하다 보니 새롭게 터득하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균형 잡힌 맛의 샐러드 소스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 카레 향신료 믹스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파스타 면을 어떻게 맛있게 삶고 소스와 버무리는지 등. 또 요리를 직접 해 먹는다는 건 삶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직접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모든 게 다 내 맘대로 안 돼도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을 건지는 스스로 계획하고 결과물까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러던 중 우리는 사이다(사과를 발효하여 만든 술)에 관심이 생겨 직접 사이다 메이커에게 1박 2일간 제조법을 배우러 다녀왔고, 그 뒤로 발효 식품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사이다 편에서 자세히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지냈을 때도 발효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었다. 한국은 식문화 자체가 발효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기본적으로 요리에 쓰이는 기본 베이스인 된장, 간장, 청국장, 액젓, 식초, 청 등이 모두 발효음식이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김치가 세계적인 발효음식인 건 말할 것도 없다. 어렸을 적부터 눈이 찡그릴 정도로 과하게 시어진 배추김치를 고구마와 함께 먹는 걸 좋아했고, 김치 만드는 걸 배워보겠다고 김장철에 친가 시골에 내려가 돕기도 했다. 무를 썰다가 손가락을 크게 베어 결국 구경꾼 신세로 전락했지만. 일본 여행 중에는 오이된장절임(츠케모노)에 빠져 매일 저녁 술안주로 곁들였다. 어느 날은 식품박람회에서 콤부차를 맛보고 구매해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탄산이 터져 가방을 다 버리는 일도 있었다. 서울의 '발효카페 큔'을 예약해 발효 음식이 메인인 저녁 정찬을 맛보고, 큔의 제철발효박스를 구입해 각종 조미료, 소스, 페스토, 반찬을 활용해 요리를 해보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신혼집에서 직접 고두밥을 져서 막걸리도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온도 조절에 실패하였는지 막걸리는 너무 시어져 기대보다 맛이 좋지 않았고, 그렇게 잠깐 타올랐던 관심은 금세 식어버렸다. 맛보고 즐기고자 하는 수동적인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만드는 호기심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마도 직장을 다녀서 수중에 돈이 있고 내가 시간을 내어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식재료와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필요성을 덜 느꼈던 거 아닐까. 반면에 지금은 일을 하지 않아 돈이 부족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맛과 품질 모두 떨어지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으니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진 거다.


나는 한 분야에 금방 관심을 가졌다가도 눈녹듯 사르르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음식은 다른 취미와 다르게 삶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기에 평생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될 수 있다. 이유가 뭐던 간에 지금 타오르는 관심의 불길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다. 사람 마음이 항상 활활 타오르게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잔잔하게라도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와 상관없이 한국에 돌아가도 특히 발효음식탐구를 계속하고 싶다. 발효음식의 매력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100%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이스트, 효모가 활동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결국 맛있는 발효음식을 만들어내는 건 자연이 하는 거다. 그러니까 매번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고 항상 새로우니까 질릴 일이 없다. 강의와 책으로 배우면서 직접 만든 발효 식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해보고, 결과가 성공이냐 실패냐 상관없이 그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럼 발효하는 타지생활의 여정이 시작되었으니, 사워도우 스타터부터 만들러 가볼까!


p.s. 발효하는 타지생활에서 '이런 발효음식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지, 이런 발효 식재료로는 어떤 레시피를 해볼 수 있을지' 제안이나 질문, 조언해 주실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댓글이나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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