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체를 찾아 나서다
*붕우 강습(朋友講習) : 벗기리 모여서 학문을 연구함
보통 사람들의 사회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간관계는 '학교' 또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더 나아가 결혼과 육아로 인해 다양하게 형성될 것 같지만 그 또한 '학교'와 '같은 동네'가 고작이다.
다들 겪고 있는 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토로하는 말들 중 "예전에는 그 친구(혹은 남편)가 안 그랬는데, 나이 먹고(혹은 아이 낳고) 변한 거 같아", "알고 보니 결이 다르더라고" 등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로 그 사람이 변한 걸까?
나와 친했던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타 도시로 대학을 가고 서로 만남이 뜸해지면서 주변 친구들이 "걔 좀 변했더라"라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같은 반 '친구이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연히 인연이 된 것이다. 즉, 내가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 굳이 찾지 않아도 학교 안에서든 회사 안에서든 우리 모두는 관계의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상대방에 제공해주는 정보 몇 개와 내가 상대를 평가하는 정보 몇 개로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어떤 존재가 내 인생에 들어오는 희한한 경험을 어릴 때부터 쭉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년생 삼 남매를 낳고 가정보육을 오랫동안 하면서 인생의 '비전'이 생겼는데, 그 비전을 공유하고 발전시킬만한 관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었다. 그렇게 내성적 기질에 반사회적 동물로 살아왔던 내가, 두 발로 인연을 찾기 시작했다.
1) 그림책 수업
첫째 아이가 3살 무렵, 소위 '책의 바다'의 시기에 빠졌었다. 매 순간 책을 놓지 않고, "또 읽어줘, 또"를 반복하는 시기였는데, 한글도 못 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거실에서 함께 잠이 들고, 새벽 1시가 넘도록 책을 읽어주다 보니 살이 쏙쏙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다 문득 '이왕이면, 그림책을 제대로 읽어줘야겠다'라고 생각하여, 지역 내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그림책 수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수업에서 국내외 다양한 그림책을 다뤘지만, 한국에서 유명한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그림책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거나 전달하고자 했던 숨은 의미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대한 그림책은 어른들의 마음도 치유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와, 두 작가의 일생을 다룬 책도 찾아 읽으며 깊게 교감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닌 어른인 '나'를 위한 그림책도 찾아보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단순히 글밥을 읽어주며 권수를 채우는 '책 읽어주기'가 아니라, '그림 한 장면'을 세밀히 관찰하고 숨은 그림 찾기도 해 보며 '그림을 읽어가는' 연습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이는 그림책을 볼 때면, 앞면과 뒷면을 활짝 펼쳐서 그림을 연결해보고 어떤 내용일지를 추측해본다. 나와 아이는 이렇게 조금씩 '그림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소통을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기를 원한다. 또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내용에 대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후 그림책과 관련된 단순 놀이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9세 이전에 엄마가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주고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엄마가 읽어줘야 할 그림책은 따로 있다> by 심정민
2) 언니공동체
사실, 나의 비전은 별거 없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돼주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엄마란 무엇인지?, 좋은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그들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열심히 찾다가 오소희 작가가 제안하여 운영되는 '언니공동체'를 발견하였다. 그때가 2019년도였는데, 지역별로 공동체를 운영하며 '나'를 키워보자는 비전이 나를 홀렸었다. '그래, 좋은 엄마란 우선 나를 성장시켜야겠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용기 내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언니공동체'를 같이 만들어보자는 글을 올렸고 무려 8명이나 되는 엄마들이 동참해주었다.
가치가 물렁할 때는 쑥스러워서 망설였을 일도 가치가 단단해지면 용감하게 도전해볼 수 있어요.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되는 과정, 활동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나'는 훨씬 더 과감하고 의미 있는 '우리'가 됩니다.
<엄마의 20년> by 오소희
첫 모임에 전업맘, 직장맘이라는 개별적인 시간을 조율하여 4명이 모이게 되었는데, 의미 있는 만남의 출발이 되고자 그때 당시 태풍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을 위해 '장난감, 옷, 책'들을 준비해와서 우편으로 보육원에 전달해드렸다. 나와 같이 다른 분들도 이런 만남 자체가 처음이라 낯설고 어색하였지만, '나'를 성장시켜보겠다는 같은 비전 하나로 참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대부분의 소모임들이 좋지 않은 결말에 이르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크기의 모임이든 일단 세 명이상 모이면 그곳에서는 집단 심리가 발현되는 것 같았다. 소모임은 저마다의 내면에 있는 초기 가족 경험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유아기에 억압해 둔 부정적 감정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오도록 하는 듯했다.
<만 가지 행동> by 김형경
하지만, 2번의 모임 해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2022년 현재는 나를 포함하여 3명의 엄마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독서모임, 밴드 결성 등을 통해 비전을 계속 공유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경우에는 오프라인으로 8명의 만남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온라인을 활용해보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또한 다들 이러한 모임이 처음이니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자율성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모임이다 보니 시간의 제한을 두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든다.
3) 새벽 낭송
나의 세 번째 공동체 활동은 바로 '새벽 낭송'이었다. 이를 택한 이유는 '게으른' 나의 생활 습관을 바꾸고 싶었고 무엇보다 '신장'쪽이 약했기에 밑져야 본전이다는 마음으로 건강을 되찾아보고 싶었다.
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그야말로 원초적인 공부법이다. 낭송이 지닌 미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먼저, 노래와 춤은 호흡이 가빠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할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낭송은 날마다, 장시간씩 지속해도 무방하다. 아니, 낭송이야말로 신체를 단련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소리의 뿌리는 신장에 있고, 신장은 뼈를 만든다. 그래서 소리 훈련을 하면 신장과 뼈를 단단히 할 수 있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by 고미숙
처음에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비몽사몽인 정신상태로 '새벽 낭송' 수업에 참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특히 나의 생활패턴은 '올빼미'형으로 육아를 마치고 홀로 있는 자유시간을 저녁에 갖으며 지냈기에 새벽 기상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 되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성장하는데 보탬이 되는 모든 활동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게으르고,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을 가진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새벽 낭송 또한 그러하였다. 낭송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책을 가지고, 수업료를 내고, 서로의 낭송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올라왔었다.
우선 내 나이 30대 후반이 되니 비슷한 연령대의 관계가 대부분이었는데, 새벽 낭송에 참여하는 다양한 연령대, 즉 MZ세대라 일컫는 20대부터 60대까지를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다 보니, 내가 24시간, 365일,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육아'라는 생각에 대해 빈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관계의 그물망이 촘촘해지는 기분이었다.
새벽 낭송을 통해 무엇보다 '세대'의 힘을 믿게 된 지금은, 육아에 지칠 때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꺼내 읽는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워본 선배맘이 아니라, 자식을 다 키워놓고 손주들을 보면서 '지나고 보니,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이 참으로 좋았었다'라고 말해주는 우리네 엄마, 즉 할머니들 말이다.
미숙했던 엄마의 뒤늦은 후회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난 젊은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간곡히 당부한다. 이만큼 살아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더라. 인생에 그토록 재미있고 보람찬 시간은 또다시 오지 않는 것 같더라. 그러니 그렇게 비장한 자세를 잡지 말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그 일을 즐겨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by 박혜란
4) 비폭력대화(NVC)
내가 2022년 한 해 동안 가장 열심히 참여했던 수업은 '비폭력대화(NVC)'일 것이다.
비폭력이란 오늘 쓰고 내일 버리는 수단도 아니고, 사람들을 온순하고 다루기 쉽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다. 비폭력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비폭력대화> by 마셜 B. 로젠버그
어느 날, 핸드폰 카메라 동영상 버튼이 눌러진 채로 아이를 훈육하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 사진첩에 저장된 영상을 클릭하다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적이 있다. 분명 내 목소리가 맞는데도 듣기가 싫었다. 그 이유는 아이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아이를 평가하고, 인상 쓰고 한숨을 내쉬는 등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내 모습이 TV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하여 '잔소리 많은 엄마'로 지적받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그러한 행동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가짐에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폭력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이것은 우리가 폭력 그 자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폭력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곧 싸우고, 죽이고, 때리고, 전쟁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 by 마셜 B. 로젠버그
그렇게 해서 내가 찾게 된 해결방법은 '비폭력대화(NVC)' 수업을 통한 사고 전환의 필요성이었다. 내가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평가를 하며 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지 쓰다 보니 A4용지 한 장을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너 왜 이렇게 게으르니?', '너 왜 그렇게 못해?' 등 상대방에 대한 비난도 있었지만, 자기 비난도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이타심의 대명사로 '연민'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타인 비난에서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와 자신이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구를 찾는 프로세스를 거치다 보니 최종적으로 '연민'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다다를 때는 나를 포함한 많은 수강생들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타인)을 돌봐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과 '사실은, 자신(타인)을 너무나 돌봐주고 싶었던 따뜻함'을 만나기 때문이다.
NVC강사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싫어하는 나를 많이 안을수록 자기 연민이 커지게 돼요". 나를 안아준다는 것, 언뜻 어렵고 힘들어 보이지만, 의식적으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것', 될 때까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물어봐 줄 것'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기쁨으로 이어진 것이 태괘이다. 사람이 홀로 있으면 그 상태에 안주하기 쉬우니, 발전을 위해서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좋다. 벗들끼리 서로 독려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글을 배우기 위하여 벗을 모으고, 벗들은 서로 진리에 나아가도록 돕는다"라고 했다. '붕우끼리 강습한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주역 강설> by 이기동 역해
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생활이 맞지 않아서 재택근무를 하든, 프리랜서를 하든 그 모든 활동은 결국은 관계 속에서 돈도 들어오고 성장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 '좋아요'와 '구독 수'에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 또한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좋은 사람을 찾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도 후회와 실수와 반성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이 주는 심오한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에서 지정해준 '우정'의 범위를 넘어보고자, 스스로 찾아보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애씀과 노력에 뭉클하기도 한다.
하여, 우정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 주는지, 얼마나 존재의 심연을 뒤흔들 수 있는지를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근대 이전만 해도 우정이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삼국지'와 '수호지'와 '임꺽정'등 고전들의 테마는 하나같이 우정과 의리였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by 고미숙
흔하게 듣는 말 중에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거다'라는 말이 있다. 10대에는 노력으로 친구를 사귀었고, 20대에는 우정과 사랑의 줄타기에 친구가 떨어져 나갔고, 30대에는 직장과 육아의 멀티플레이로 시간이 없어 친구를 못 만났고, 40대가 접어드니 도대체 친구란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후회와 성찰의 단계를 거치다 보니, 내 인생에도 '붕우 강습(朋友講習)' 들이 쌓여가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타지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치며 성장하고 있는 그녀와 내가 울면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그녀들, 그리고 네가 내 옆에 남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의 우정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