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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20. 2022

사투 (死鬪)






잔인한 승자 독식

살기 위해

너를 넘는다


쓰러진 너를 밟고

뛰어 올라

승리를 쟁취한 나도

온몸에 상처 투성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불편한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너와 나를 보고 있는

수많은 시선들이

이 비루한 싸움을 지켜보며

비웃고 있었음을






인생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합의 연속 같습니다.

패배의 쓰라린 경험도 짜릿한 승리의 경험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돌아보면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승리가 더 많았다면 서 있는 위치가 다른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욕심이 머리끝에서 새어 나옵니다.


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쟁 위에 놓이고

싫든 좋든 그 처절한 현장 위에서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려야 합니다.

아니 가리라고 요구합니다.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이 노예의 신분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누구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누구는 짜릿한 쾌감을 소비하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합니다.


풍요와 평등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모두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공정이라는 가치는 누군가 그어 놓은 선 위에서만 유효합니다.

그 아래 놓인 이들은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오롯이 오늘을 버려야 합니다.

한 순간 삐끗하기라도 하면 죽음과 같은 현실로 끌려들어 가야 하는 삶,

모두가 비참한 삶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사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거나 죽을힘을 대하는 싸움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는 말이지만 그 말속에 죽고 싶어서 싸운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도리어 살기 위해 싸운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모습,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걸까요?

이 지루한 싸움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누군가 싸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겨두고

등을 밀어 치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나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가 되고, 누가 쓰러져도 함께 일으켜 줄 수 있는 세상,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유토피아라 불릴지라도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누군가는 그런 행복 속에서 살았다고 고백하며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에서 만난 따뜻한 대사 한 마디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만드는 행복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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