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역시나 적응의 동물인건지, 처음엔 무섭고 차갑게만 느껴지던 런던이라는 도시도 그 속의 일원으로 꾸역꾸역 살게 되니 어느샌가 평안이 찾아왔고 이 평안은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의 만원 이층버스, 오프(off)날이면 책 한권을 들고 찾았던 동네의 펍과 공원 그리고 아침에 떠나 저녁에 돌아오는 혼자만의 런던 근교 여행. 이 모든 것이 감사한 일상이고 평안이었다.
플로리스트로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꽃은 늘 차고 넘쳐서 다듬고 다듬어도, 만들고 만들어도 거의 매일 새로운 꽃들이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어머니의날(Mother’s Day)등 정신없이 바쁜 시즌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틈에 스멀스멀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들이 있었다.
향수.
그간의 삶이 어렵고 불안정할 때는 그걸 느낄 새 조차 없었는데,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 간사하다. 이제 많은 것을 얻고 누리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음의 틈을 채우려 한다. 어느덧 런던에서의 생활이 해를 넘기고 영국에 온지 이 년쯤 되어가니 그러한 생각은 더욱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뭐랄까, 이건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얻고, 그 것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차지한 공허 그리고 타국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평안히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인터넷을 타고 전해지는 한국의 소식은 더욱 나를 초조하게 했다. 서울에서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하는 대형 플라워숍들과 어쩌면 런던 보다 화려하고 멋진 한국 호텔들의 꽃장식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안에서 시작된 나의 마음이 자꾸만 그러한 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답답하고 외로우면 한번이라도 한국에 다녀오면 나았으련만 그땐 비행기 삯이 왜 그렇게 비싸고 아깝게만 느껴졌는지 괜한 미련을 부렸다.
이러한 마음의 울림이 있을 때 마다 나를 다독여 주었던 건 다름아닌 사이먼이었다. 차갑고 사무적이라고만 느꼈던 그는 알고보니 더 없이 따뜻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츤데레! 어쩌면 총괄매니저라는 자리와 직책, 그가 맡은 책임이 그를 사무적이게 만들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이먼은 종종 한국에 관해 그리고 한국에 있을 친구와 나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을 물었다. 그리고 이것을 물은 날이면 퇴근 후 함께 밥을 먹었다. 한국 식당이었으면 좋으련만 아쉬운대로 근처의 일식이나 중식당, 아시안푸드점 등을 찾았다. 영국도 여느 서양 문화권과 다름 없이 일 이외에 사적인 것을 묻거나 퇴근 후 함께 밥을 먹는 다는건 흔한 일은 아니다. 글쎄, 사이먼이 한켠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였을 수도 있고 그 시간 역시 하급 직원의 복지(?) 차원에서 그가 희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나를 다독일 여유가 생겼다. 아직은 내가 여전히 이곳에 필요한 존재이며, 일원으로서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번쯤 사이먼과 저녁을 먹을 때였다. 식당을 나오던 그가 입을 떼었다. 그는 곧, 떠날거라고 했다. 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다른 동료들을 통해 전해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고, 그가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을 때 왠지 이 이야기를 꺼낼 것만 같았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원래 가드너(정원사)였던 사이먼은 상대적으로 비수기라 할 수 있는 겨울 동안 할 일을 찾았고 그때 우연히 꽃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미 꽃을 통해 충분한 만족을 누렸지만 이제 다시 정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선 초대장을 내밀었다. 한 달 후 자신의 집에서 굿바이 파티가 있으니 꼭 와달라고 했다. 초대장을 오른쪽 주머니에 소중히 넣은 채, 그날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는 동안 여러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모두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산다. 언젠가 떠나야 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중간중간 남아야할 이유와 좀 더 견뎌낼 이유를 찾곤 하지만 이 역시 유한할 뿐이다.
한달 후에 찾은 사이먼의 집은 런던 외곽에서 떨어진 전형적인 영국식 주택이었다. 런던을 관광객에게 내어준 런더너들은 도시 중심에서 멀어지고 멀어져, 두어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감내하면서 까지 원래의 살던 모습을 지켰다. 사이먼의 집 또한 그랬다. 그의 손길로 만들어졌을 작은 정원과 좁은 복도로 이어진 2층, 그의 파트너 크리스토퍼와 함께 이루고 있는 그 공간은 그들에겐 더 없을 안식처였다.
평소라면 각각의 파트에서 뿔뿔히 흩어져 있을 모든 직원들이 이 안식처에 모였다. 제이크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모두 데려왔고 그외 많은 동료들도 가족이나 파트너들과 함께 왔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사이먼의 면면을 파헤치며(?) 밤 늦은 시간까지 영국 특유의 침침한 백열등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평온한 밤은 지났다.
사이먼의 빈자리는 컨트랙트팀의 매니저였던 이안이 맡았다. 컨트랙트팀은 우리 숍과 계약을 맺은 회사나 업체, 호텔 등에 주기적으로 꽃장식을 제공해 주는 일이었다. 나 또한 로라와 함께 팀을 이루기전 몇번 함께 했던 적이 있다.
신임 총괄매니저가 된 이안은 열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려했다. 공간을 바꾸고, 각 팀의 구성원들을 바꿔 배치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그의 의도와는 맞지 않게 여러 곳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갑작스런 변화에는 합리적인 이해의 시간들이 필요했을 테지만 어쩌면 그런 과정들이 너무 짧았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예전에 비해 플로리스트들간의 충돌이 잦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사이먼은 현명한 체스플레이어라는 생각이 든다. 플로리스트는 개성이 강한 이들이다. 솔직히, 타협하고 양보해서 하나의 결론에 닿기 보다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 하길 좋아한다. 실력과 성격이 비슷한 사람을 가까이 두기 보다는 서로의 다른 점이 서로에게 보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은 팀을 이루는 요소일 것이다. 사이먼은 각각의 체스 말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떨어질 말들은 떨어진 채로, 필요한 말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채로 두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 일터를 관통하며 흘렀던 큰 규칙이었고 그가 없고서야 이것들이 하나둘 깨어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리고 불똥은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이안이 학생비자를 가지고 풀타임으로 근무중인 나에 대해 문제 삼은 것이다.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될 부분이었다. 같은 점에서 사이먼은 이 점을 감수하고 나를 받아 주었다니, 그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커지는 우스운 상황이었다. 나뿐아니라 몇몇 동료들의 일신에 관한 것들도 문제 삼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덮어둔 채 외의 것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던 그는 더 큰 불만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한달 만에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다시 급하게 이 자리를 대신한 이는 제이미였다. 빠르게 상황들을 수습한 그는 나의 비자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으며 오히려 근무 기간이 길어질 수록 분명 숍에서 지원해 주는 점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 일은 분명 나에게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의 위치와 한계에 대해 인식하게 해 주는 계기 말이다. 영국은 내게 많은 기회와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떠날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이다. 물론 많은 어려움을 이겨낸 채 이곳에서 성공을 이루어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럴자신은 없었다. 그러한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곳에서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 즈음 인터넷을 통해 지원했던 서울의 어느 곳으로 부터 채용 통지를 받았다. 비록 이메일을 통해서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지만 런던에서의 근무 경력을 좋게 보아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때의 결정을 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후회를 했었다. 서울에서의 생활 역시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를 좀 더 다독여 런던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더 했어야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럴 때였나 보다. 영국에 오는 것도, 남는 것도, 떠나는 것도. 아니 어쩌면 무작정 첫 꽃집에 찾아가 꽃을 시작하게 된 것도 즉흥에 가까운 섣부른 결정들의 남발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음 한켠에선, 그러한 결정들이 지금의 결과들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라는 위안 담긴 생각도 가져본다.
어쨋든 나는 이곳과의 작별을 고하며 마지막 날의 분위기를 눈에 귀에 그리고 마음에 담는다. 꽃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으며 무엇보다, 더 나은 꽃쟁이가 될 수 있도록 성장시켜 준 곳.
안녕 영국, 고마웠어 그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