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없다.

거친 세상 속에서 찾아낸 '좋은 사람'의 의미

by Ryan Choi

나의 첫 직장은 LG였다. 군 복무기간을 제외하곤 휴학 한번 하지 않고 내달려,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 들어간 곳이었다. 26살 어린 나이에 입사했던 첫 직장, 많은 것이 서툴렀지만 뭐든 잘해보려 애를 썼었다.


그곳의 사내 업무 시스템에는 개인별 웹페이지가 있었고, 본인의 직급과 소속 부서, 팀에 대한 정보 외에도 지금의 카톡 프로필처럼 한 문장 정도 본인현재 상태에 대해 적을 수 있는 메뉴가 존재했다.


지금 생각하면 밤새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럽지만, 나는 당시에 그 상태 표시줄 같은 곳에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사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비슷한 문구였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니. 이제는 헛웃음이 날 정도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의 마음은 순수했고 열정도 가득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해서는 안될 행동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려면 그 시선이 남을 향해서만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진실된 모습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자신의 이익이나 건강, 행복을 희생해야 할 때가 많다. 이것은 장기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본인에게도 득 될 것이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이 상대방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사람마다의 기대치와 가치관이 서로 다를 수 있기에 내가 생각한 좋은 행동이 남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간혹 누군가가 그 사람은 별로라고 평가했던 사람이었는데, 실제로 대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았던 사람이었을 수 있지만, 나와는 잘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해도, 나의 의도가 항상 정확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오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렇기에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기는 어렵다.




결국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없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의 가치관과 원칙을 지키면서,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이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때로는 거절도 하고, 내 의견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며, 건강한 경계선을 그을 줄 아는 사람. 그렇게 진정성 있게 살다 보면 나와 맞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다.


이것이 바로 첫 직장 시절의 순수했던 내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진정한 '좋은 사람'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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