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내가 말했었지.
다시 부산으로 이사 가면서,
너와 멀어지는 게 가장 큰 마음의 짐이라고,
다른 건 미련 없다고.
너의 집, 차로 1시간 거리.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는데,
부산으로 내려오고 보니,
왜 자주 못 갔었나 싶다.
아기가 어릴 땐,
너도 한 번쯤 와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늦게 알게 된 너의 어려움.
너는 말하지 않는, 입이 무거운 어른이 되었지.
대학 때, 수업시간에도 옆사람과 쉼 없이 수다 떨던 너.
'베트콩, 그만 떠들어'
이 교수님께 혼나도 아랑곳 않던 너는 어딜 가고..
너의 아픔을 입 밖으로 뱉지 않고,
그냥 삼키는 낯선 어른이 되었지.
고난은.. 이리도 다른 사람을 낳아버린다.
아산병원 중환자실.
내가 온 지도 모르고, 눈조차 뜨지 못하고,
호흡기만을 의지한 채 가만히 누운, 낯선 너의 모습.
그때부터 낯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구나.
그게 시작이었구나.
몇 달을 중환자실에 있었을까..
근육이 다 빠진, 앙상한 뼈만 남은 몸.
사라진 기억들.
그 앞에 눈 뜬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커다란 벽.
사방이 하이얀.
끝이 보이지 않는 벽 앞에 선. 느낌이었을까.
눈을 떴을 때 펼쳐진 낯선 광경에,
얼마나 무너졌을까.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야말로, 벼랑의 끝에서.
일어나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몸도, 기억도, 마음도 무너졌던. 너는.
그때 나는.
네가 눈을 떠서, 의식이 돌아와서.
살아줘서 다행이란 생각만 했다.
네가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서,
그 생각을.. 거기서 멈춰두고 지냈었다.
그때의 너와 나.
너는 절망 앞에
나는 희망 앞에 서 있었구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와 통화도 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이야길 했지.
너의 절망을 듣고, 난 무슨 말을 했었던가..
진실로 널 위로해 줬을까?
그냥 네가 살아있단 안도. 그 마음이 커서.
네가 진정 원하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나의 큰 마음만 보느라,
너의 절실한 작은 말을 듣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혹시나 니가 말을 줄이고, 침묵을 선택하기까지
나도 한몫을 한 게 아닐까..
말은 줄었지만,
기억은 서서히 되살아났고,
몸도 조금씩 회복했고..
너의 아이가 9살,
나의 아이가 4살.
느리지만 빠른 시간들이 우리를 건너갔지.
그렇게 10년.
우리는 카페에 앉아 예전 그 병원얘길 했지.
나는 눈물 콧물 범벅.
너는 담담한 듯.. 듣고 있었지.
고난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나 보다.
마음도. 단단해서,
다른 사람이 그 안을 보기가 힘들다.
너무 단단해서,
다른 것들이 스며들기도 힘들어진 걸까.
나는 너의 침묵과 단단함이 가슴 아프다.
너의 20대를 아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수다 떨며 배시시 웃던 니가.
그 단단함에 갇혀버린 듯해서.
하지만,
내가 알고 있음을, 잊지 않고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