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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Jan 17. 2023

결혼식 전날,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1.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2021년 9월 10일,

전화 한 통으로 나의 결혼이 끝났다.


다음날인 9월 11일은 코로나로 2년이 미뤄진

우리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돌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고

아이와 함께 친정에 미리 와 있던 내게

매일 아침과 같이 출근 전 그의 전화가 걸려왔다.

무엇이 시작이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 떠올려보니 별 것 아닌 일이 발단이었던 것 같기도

실은 그 속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것들이 터진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스물셋의 나&스물일곱의 그,

우리는 서로를 믿고 무작정 혼인신고부터 하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와 양가에 알렸다.

막 훈련소를 나와 특기학교로 갔던 그는

자신이 서울에 오는 주말에도 신고가 가능한

서초구청을 알아오는 열성을 보였었다.


그해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나는

모든 꿈을 접어두고 그를 따라

그가 장교로 첫 부임을 한 부산 관사로 향했다.


반년이 넘는 신혼생활 중 아이가 찾아왔고

그렇게 나는 스물넷에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싸움이 잦아졌다.

그는 직업군인이었지만 지극히 성실한 성격 탓에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6시에 출근했고 동시에 나의 독박육아도 시작되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까지

그와 나는 군대와 집안에서 각개전투 중이었다.


신생아를 갓 졸업한 아이는

12시까지 밤잠을 자지 않았고

우리는 늦은 밤까지 함께 아이를 돌봐야 했다.

신혼시절부터 퇴근 후 늘 함께 산책을 가고 스트레칭을 하며

잠들기 전까지 수다를 떨던 20대 부부는

어느새 입을 다물고 육아와 일이 전부인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군부대 옆 관사는 네이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외진 곳에 있었고

서울과 가장 동떨어진 부산에 사는 동안

내게는 부모님도, 친구도 아무도 곁에 없었다.

그가 퇴근하기 전까지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20년 서울토박이가 타지에서 신혼생활이라니'

내가 못 견디게 외롭고 힘들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었다.



결혼 후 2년 만에 맞춘 결혼반지는 고작 한 달 밖에 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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